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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Aug 15. 2023

이야기 보따리

-오래 된 동네-

  햇살이 눈부시게 퍼지는 아침,

G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만지고 다독이는 수업,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상담인데, 이렇게 학생들을 만난지 어느 덧 십 년이 되었다.


이번 학기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되어서  걸어 갈 수 있고 조금 일찍 여유롭게

출발하니 왠지 마음도 넉넉해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동네 풍경과 그 속에 얽힌

추억이 꼬리를 물고 피어 오른다. 


우리 동네에서 참 오래 살았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살았으니 이 동네 변천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아파트 상가를 지나며 문방구,

수퍼마켓이었던 자리를 둘러본다. 어린 우리딸이 수 없이 드나들었던 문방구, 늘 빙그레 웃는 얼굴이었던 아주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학교 준비물들을 바로 사갈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해 놓고, 미처 돈을 준비해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우선 챙겨가도록 배려해 주셨던 분이다.


문구점 옆에 상가의 유일했던 상점,

꼬마였던  우리 아들과 범퍼카를 몰고 과자를

사러 다녔던 수퍼마켓도 생각난다.  


 “꼬마야, 그 자동차 우리 아기에게 물려 줄래?”


수퍼마켓에 갈 때마다  부탁했던 아주머니,

범퍼카를 손자에게 물려 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미안하게도 동네의 다른 동생에게 물려주게 되어 한 동안 그 수퍼마켓을 못갔던 기억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종탑이 높은

교회를 본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남편과 갔던 곳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 분위기와는 달라서

딱 한번만 참석했던 교회이다. 그 앞을 항상 지나 다녔는데 오늘따라 오래 전 첫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것은 말랑말랑해진 아침의 마음여유 때문일까.


처음 서울에서 이사 온 우리에게

한 없이 낯설기만 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던 그 때,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그 교회가 지금은 쭉쭉 올라간 주변 상가 건물에 묻혀서 종탑만 보이는 것이 세월을 느끼게 한다. 


느린 걸음으로 만난 아침시간의 여유는

추억을 소환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게 한다. 내 기억의 페이지와 닿아 있는 담이 긴 건물을 지난다.


저마다의 독특한 꿈을 키워가는 고등학교다.

학교 담밑을 지나며 동네에서 함께 키운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예쁜 교복과 다채로운 표정들,

장난스런 몸짓들과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시공을 넘어와 귓가에 맴돈다. 


 오래 된 건물은 내가 지나 온 세월의 수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를 보면 그곳을 거쳐 자라며 어른이 되어가는 동네 아이들 모습이 그려진다.


가까이 지내 온 그들의 성장기 또한 이야기 보따리가 다양하다. 유아시절로부터 청소년 시기를 거쳐 이제 한 어른이 되고 또 부모가 되어가는 삶의 이야기가 오래 된 우리동네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 소소한 이야기들을 호젓이 걸으며 기억을 소환해 펼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리에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졸린 눈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학생,


아슬아슬하게 짧은 교복이 불안하면서도

한없이 예쁘기만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신기하기만 하다.


짧은 교복에 얽힌 우리 딸내미와의 스토리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의 교복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인데 치마길이에 왜 그리 목숨걸고 민감하게 굴었는지 참 우리딸도 엄마 때문에 마음고생 많았다.


이웃 집 딸내미의 교복 해프닝도 기억난다.

집에서 나갈 때는 분명히 멀쩡한 길이의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전철역 화장실에서 짧은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다가 퇴근길 언니에게 딱 걸렸다는 이야기에 한바탕 웃었던 사건, 긴 시간너머의 딸내미들 성장기 해프닝이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의 여러가지 성장 스토리를 듬뿍 담고 있다. 학교 건물앞에 잠깐 서서 생각한다. 이 건물이 들려주는 소곤소곤 비밀 이야기들...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의 기쁨과 슬픔, 갈등과 수많은 번민들. 이러한 경험들이 잘 소화되고 숙성되어 멋지고 건강한 사람으로 길러지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아침 시간, 동네 거리를 지나며 들었던 생각들이

참 긴 시간을 오갔다. 


오래 된 건물마다 그 세월에 깃든 스토리가

새삼 가까이 다가왔고 그 시간의 거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스토리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그립다 그 이름들이.

기억되는 이름마다 소록소록 그 이야기 보따리가 쌓여 있음을 느낀다. 가끔 알록 달록 그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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