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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겨리
Jul 05. 2024
소 풍
-요양원 길-
눈부신 햇살, 습기 없는
바람이
시원하다.
상록수역 앞에서 출발하여 30분쯤 달렸을까.
화성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니 깔끔하고 산뜻하게 지어진 건물이 녹음 짙은 나무들에 둘려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한층 더 맑고 청아하게 들린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방문을 반기 듯 불어 오는데, 정갈하게 다듬어진 텃밭에는 붉게 물들기 시작한 방울토마토가 올망졸망 달려 있다.
싱그러운 자연과 요양원의 주변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창문으로 빼꼼 내다보며 환하게 웃는 사람, 이곳 요양원의 원장이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맵시있게 묶고 우아한 검정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정말 요양원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우리들의 눈에는.
학생 상담자 입문 동기로서 벌써 십 일 년 차 모임의 막내가 요양원 원장이 되었다. 우리 중 제일 젊고 행동이 민첩하며 에너지 만땅의 상큼한 사람이다. 웬 요양원? 지난 모임에서 명함을 받아 든 선생님들마다 고개를 갸우뚱? 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양원 원장은 왠지 나이와 함께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분들이 하는 것 같았고, 그런 기준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다음 모임의 장소를 논의 중 요양원으로 놀러오라는 말에 모두 흔쾌히 찬성했다. 집집마다 거의 노인이 계신 연배
이다 보니 언제쯤일까 막연하게라도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요양원을 탐방해 볼 기회이고
또 동료의 새로운 사업에 대한 격려쯤으로 방문의 의미를 붙였다.
요양원 시설을 둘러보며 2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는 두 분 할아버지께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어르신, 너무 많이 드시면 안되는 거 아시지요?”
들고간 과자 봉지를 뜯어
건네 드리며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원장의 모습과, 이쁜 딸을 보듯이 빙그레 웃으시는 할아버지. 낯선 여인네들의 방문에도 미소로 반겨 주신다.
바로 옆방에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
이 비스듬히 앉아 방문객들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보낸다.
예쁜 원장은 앉은 자세를 고쳐 드리며 입가의 침까지 닦아 드리는데 그 손길이 정겹고 너무 자연스럽다.
요양원 근무를 하며 자신이 그렇게 노인분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새롭게 알았다는 그녀, 근무하는 몇 개월 동안 벌써
몇분이 하늘로 가셨다고 한다.
저녁식사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퇴근했는데 그날 밤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그곳에
근무하며
인생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에 우리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전, 갑자기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와서 요양 재활병원에 입원하신 우리 어머니는 열심히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받고 계시지만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93세, 남은 삶 마지막까지 가족의 숨결이 남아있는 당신 집에 머물고
싶어하
지만
간절한 마음 뿐이고 몸의 상태는
심상치가
않
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을 보며 우리 어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언제쯤이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머지 않아 마주하게 될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수십 년쯤 지나고 오직 마음만 자유로운 시절이 오면 과연 나는 어떤 생각으로 이 시간의 거리를 지나고 있을까.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에서 인생을 소풍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겠다는 시인. 어디 시인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기나 긴 인생길을 스쳐 온 요양원의 노인들도 시인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
소풍이라는 단어
,
왠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문득 누워계신 할머니의 침대에 걸터앉아 소풍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설렜던 시간을 꼽아보면 몇가지나 되실까.
어린시절의 동심과 풋풋했던 소녀시대를 지나는 소풍은 아름다웠으리라. 때론 길을 잃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찾는 보물찾기에 지칠 수 있어도 소풍은 즐거운 것이다.
요양원을 나서며
이곳에서
의 생활이
어쩌면
어르신들의 마지막 소풍길
이라는 생각이 드니,
예쁜
원장님과 이 곳에 초대받은 우리들의 숙제가 떠오른다.
이분들의 소풍 길,
참
아름다웠더라는 고백의 詩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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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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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지도를 하며 글을 씁니다. 살면서 마음에 남는 생각들을 브런치를 통해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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