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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대 없어도 맛은 최고였어! 울 엄마표 김치김밥

김밥을 말며 떠올리는 그리운 가족들

by 인지니

지금은 김밥집에 너무 다양한 김밥들이 있다. 그냥 야채김밥에서 참치 김밥, 소고기 김밥, 참치 마요김밥, 매운 고추 김밥에 멸치 김밥까지······. 김밥 한 가지로도 영양이나 입맛을 모두 사로잡을 만큼 다양한 김밥의 종류와 가격을 보면서 세상 참 먹을거리가 다양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땐 집에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가스레인지도 없었다. 그날그날 가진 돈으로 집 근처 시장에 가서 그날 먹을 식재료들을 사고 요리를 하면 그날이나 다음날 아침엔 그 음식들을 다 소진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음식이 상해서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음식이 지천이라 음식쓰레기를 고민하고 음식쓰레기 처리기를 사네, 마네 할 정도로 음식이 넘쳐나는 시기지만 그때만 해도 재료를 손질한 음식쓰레기는 있어도 먹다 남겨 버리는 음식쓰레기는 많지 않을 정도로 아끼고 절약하던 시절이었다.


쓴 글에서도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무명화가셨다. 그렇다 보니 큰돈을 벌지 못하셨다.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보낼 그림들을 그리셨지만 나름 개인 그림을 그리려고 시간을 많이 쓰시다 보니 더욱 집에 가져다주는 돈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늘 없는 돈에 가족의 끼니를 챙겨주려고 애를 쓰셨을 것이다. 그나마 아빠가 한 푼도 가져다주지 않는 날엔 장을 보러 갈 돈도 없었을 테고, 지금처럼 냉장고 정리를 해서 볶음밥이고 잡탕찌개고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테니 엄마의 고민이 꽤 컸을 것이다. 그땐 식재료가 정말 똑 떨어지면 쌀과 기본양념들 말곤 재료가 없었을 테니 뭘 어떻게 먹을까? 하는 고민이 더 크셨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집들도 그랬겠지만 3끼 식사 외엔 간식도 풍족하지 않았기에 우리 남매에게는 오늘은 엄마가 뭘 해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대였다. 반면 엄마는 목을 빼고 앉은 자식들을 보며 고민이 컸 것이다.


그나마 지금처럼 김치 냉장고는 없었어도 엄마의 맛있는 김치가 늘 마당 장독에 있었기에 하얀 쌀밥만 따끈하게 지어 주셨어도 싹싹 두 그릇은 뚝딱 해치우던 나였다. 하지만 동생이 그때 입이 짧았어서 그랬는지 엄만 그냥 밥과 김치만 떡하니 내주시는 일이 많지 않았다. 흰 밥에 간장과 마가린을 넣어 비벼서 주시거나, 간장에 노른자를 올려 비벼 주시기도 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간장에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쓱쓱 비빈 흰쌀밥을 마른김에 넓게 펴서 엄마가 담근 김치를 쭉쭉 찢어서 올리고 둘둘 말아서 손에 쥐어주시는 막 김밥이었다. 지금의 김치 김밥과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그 맛은 지금의 김치김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특별한 간식이 없으니 늘 고봉밥을 먹는 자식들이 쌀밥은 떨어지지 않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땅부자셨던 외할아버지께서 힘들게 사는 둘째 딸에게 종종 보내주셨던 쌀 덕분이었다. 그러나 당신과 결혼을 반대한 처갓집의 도움을 싫어하시던 우리 아빠의 자존심에 결국 엄마는 친정의 지원도 거절을 해야 했다. 그런 뒤부터는 시장에서 한 되씩 파는 쌀을 사다 먹었고 먹성 좋은 자식들ㅡ나 말이다^^;ㅡ 덕에 그 쌀은 금세 똑 떨어졌다. 그러면 아빠가 어찌어찌 쌀을 구해오는 게 아니라 엄마가 이 집 저 집에서 쌀을 빌려다 먹었다. 사실 그때는 그런 사실들을 전혀 몰랐지만 지금 와서 주인집에서 한 바가지 쌀을 가져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엄마의 모습들을 여러 번 봤기에 그게 쌀을 빌려먹은 것이구나! 이해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 매일 속 타고 속상했을 엄마가 참 안쓰러워진다.

아무튼 엄마의 막 김밥은 동생과 내가 엄마옆에 턱 받치고 앉아 하나를 둘둘 말아 손에 쥐어주면 주시는 순서대로 각자 김밥을 들고 우거우걱 먹는 맛이 있었다. 김밥이란 원래 싸는 족족 먹어치 우는 맛이 있질 않은가?

엄마는 제일 먼저 아빠를 싸드리고, 다음 나를 싸주셨다. 다음 동생이 먹을 김밥을 싸서 동생에게 줄 때가 되면 나는 개눈 감추듯 내 몫을 다 먹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엄마의 손만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이 김밥을 받아 들고 먹기 시작하면 엄마는 또 아빠 몫의 김밥을 말기 시작하셨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 나 다 먹었어! 나 더 줘!”

“야! 이 눔 계집애야! 아빠부터 드려야지! 좀 기다려!”


그러면 옆에서 아빠는 말씀하셨다.


“애들 줘! 난 이거 하나면 됐어!”

“아빠 안 먹는데, 나 나부터 줘!”

“어이구, 이년은 지 입밖에 몰라 그냥!”


욕쟁이 엄마는 나를 타박하면서도 굵직하게 김밥을 말아 김밥 밑동이 터질까 꾹꾹 눌러 잡고는 내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여기 밑에 잡고 천천히 먹어! 체한다.”


나는 엄마가 전해주는 김밥의 꽁다리를 두 손으로 꼭 쥐고는 터진 윗부분에서 밥풀이 떨어질 세라 얼른 입으로 틀어막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진짜 최고야! 나는 파는 김밥보다 엄마가 싸주는 김치김밥이 더 맛있어! 엄마, 우리 김치김밥 장사하자!”

“누가 이런 김치 넣은 김밥을 먹니? 너나 맛있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뿌듯하게 웃으시며 다음 순서로 다시 아빠가 드실 김밥을 싸고, 동생 김밥을 싸 놓으면 천천히 먹는 동생이 자기 몫을 먹기 전에 내가 먼저 그 김밥을 들고 먹어버렸다. 그럼 영락없이 울음보를 터트리며 제 몫을 내가 먹어버렸다고 우는 동생.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이 멈추고 엄만 나를 나무라셨다.


“네 거 지금 싸고 있잖아! 빨리 동생 줘!”

“에퉤퉤! 벌써 먹어버렸는데?”

“으앙~ 엄마 누나가 내 김밥에 침 뱉었어!”

“어이구 이 눔 계집애가 그냥!”


결국 나는 엄마에게 꿀밤한대 쥐어 박히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우걱우걱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김밥이 동생에게 가면 또 침을 꼴깍 거리며 다시 김밥이 싸지기를 기다렸다. 양푼에 비벼놓은 밥은 벌써 동이 나고 마지막 김밥을 말고 있는데, 엄마는 아직 한 줄도 드시지 못했음에도 기꺼이 내게 그 김밥을 주셨고, 동생이 자긴 없다고 울면 아빠는 드시던 김밥을 잘라서 동생에게 주셨다.

나도 예전에 가족을 이루고 살 때 가끔 엄마의 김치 막 김밥을 생각하며 남편에게 한 줄, 그때 다섯 살이던 아들에겐 씻은 김치를 넣어 김밥을 말아주곤 했다. 어린 아들이 조막만 한 손으로 김밥을 쥐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내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때 엄마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면서... 분명 엄마도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게 좋아서 말씀은 험하게 하셨어도 당신 배 고픈 건 생각도 안 하셨을 것이다.


내 아들도 남편도 나의 막 김밥을 좋아했다. 결혼 전 성당 청년부에서도 이 김밥을 싸서 친구들에게 한 개씩 들려줬을 때 인기 최고였을 만큼 호불호 없이 맛있는 김치김밥.


지금은 집에 먹을 게 없을 때도 거의 김밥을 말지 않는다. 혼자서 뭔가를 먹겠다고 사부작 거리느니 그냥 간단하게 어플을 켜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서 뭘 해 먹기도 싫고 배달 음식도 귀찮. 진짜 오랜만에 엄마의 김치 김밥을 떠올리며 김밥을 말았다. 이 김밥을 말고 있으면 혼자여도 그때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때 왜 엄마가 배 고플 거란 생각은 못 했을까? 먹을 게 없어서 김밥을 싸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고작 서른 살 전후의 엄마가 먹을 걱정 입을 걱정하며 매일을 전전긍긍했을 생각을 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욱 커진다. 내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어 쉰두 살이 되었음에도 그 옛날의 엄마가 말아 준 김밥의 맛, 사랑의 기억에는 아직도 열 살 어린아이가 들어있는 듯하다. 이제는 누가 오물거리며 맛나게 먹는 내 모습을 뿌듯하고 기쁘게 받아 줄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 나를 위해 엄마를 추억하며 김밥을 말아본다. 흰쌀밥이 아닌 잡곡밥에 김치뿐 아니라 참치도 좀 넣어 둘둘 말아서 손에 쥐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더 맛난 재료를 넣었어도 그때 그 맛을 따라갈 순 없지만 김밥을 마는 순간 뭉클하며 마음이 쓸쓸했다. 김밥을 몇 줄을 말아 놓았어도 혼자 먹으니 한 줄도 맛있지 않았다. 한 줄을 말고 아빠를 떠 올리고 두줄을 말면서 동생을 그리워했다. 세 번째 김밥을 말면서는 그때 그 시절 엄마에게 이 한 줄의 김밥을 건네줄 수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김밥을 쥐고 베어 물며 '오물오물' 나 토닥여 본다. 그런 시절이 있어서, 그 맛의 기억이 있어서, 오늘 쓸쓸한 식탁에서도 찡한 가슴을 달래며 한 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유독 쓸쓸해지는 날이면 옹기종기 엄마 곁에 모여 엄마가 싸주는 김치김밥의 맛을 떠올리게 된다. 그 어떤 화려한 재료의 김밥보다 더욱 맛났던 울 엄마표 김치김밥의 추억은 오늘도 외롭고 쓸쓸한 내 마음에 위로가 되어준다.


나는 계란을 풀어 계란국을 끓이고, 김치를 담아서 집에 돌아온 아들이 먹을 수 있게 김밥을 식탁 위에 올려 덮어두고 내일의 우리를 위해 일터로 나섰다. 그 옛날 울 엄마 김치김밥 같은 맛은 아니더라도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식탁에 놓인 이 엄마의 마음이 담긴 김밥이 내 아들에게도 어떤 추억이 남는 맛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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