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인 여행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삶은 준비된 자가 더 많은 것을 누린다고 생각했고 맨땅의 헤딩은 저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시간은 준비와 계획으로 대다수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안정된 삶을 가져왔다 확신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 나의 것인 것만 같던 시간은 송두리째 아이의 소유로 넘어갔다. 마치 삼십 평생을 내 집인지 알고 살다가 한 순간에 "이 집은 당신의 집이 아니니 내가 하라는 대로 당신은 해야 하오"라는 말을 들은 느낌이었다.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준비와 계획을 할 수 있는 시간은커녕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아이와 같이 자고 같이 깨다 보니 깨어있는 시간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눈을 뜸과 동시에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얼굴을 씻기고 똥 치우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허기졌던 배를 채운다. 이내 나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를 데리고 집 밖 산책. 체력과 날씨가 허락하는 날은 공원에 가서 뛰어놀 수 있지만 체력과 날씨 하나라도 허락하지 않는 날에는 유모차에 태우고 낮잠이 들 때까지 뺑뺑이. 그리고 아이 낮잠 자는 시간이 찾아오면 아이 점심을 준비하고 나도 제대로 된 점심 한 끼 한다. 아이의 낮잠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아이가 깨어나면 그때부터 또다시 요이땅! 아이와 조금 놀아주다 점심 먹이기. 또 한 번 씻기고 다시 놀아주고 아침에 못했던 집안일을 잠깐 하다 또 나가자는 아이를 데리고 바깥행. 갈 곳은 역시 공원이다(집 앞 공원이 없었다면 아주 난감했을 일이다). 공원에서 신나게 놀고 나면 둘 다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이제는 저녁시간. 아이 저녁 먹이고 이때쯤이면 남편이 와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때부터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저녁 준비 타임.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 목욕시키고 로션 바르고 이리저리 놀아주다 보면 아이의 수면 의식 시작. 보통 육아전은 9~10시에 마무리된다. 이후에 내일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나면 이미 나의 체력은 바닥을 드러낸다.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지만 내일의 육아전을 위해 체력을 보충하려면 아이가 자는 시간에 나도 자주어야 한다. 이런 하루하루의 반복이 더없이 무력하고 끌려다니는 삶 같아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 삶은 내가 주관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에 이러한 일상이 나에게 폭력적으로 까지 느껴졌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는 없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사람은 평생을 배우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이는 시간의 대부분은 '배움'을 위한 것이었고 배우기 전과 배움 이후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는 삶의 큰 원동력이자 동기부여였다. 그럼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가? 답은 Yes! 그 어느 때보다 더 진하고 더 강렬하게 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는 다음날을 계획하지 않아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가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계획한 하루보다 더 알뜰히 열심히 살아간다. 이전에 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계획되지 않은 하루는 있을 수 없었고 무엇을 할지 몰라 멀뚱멀뚱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그때 할 일을 찾아내고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생각치도 못한 여유시간도 종종 찾아온다(아 꿀맛이다). 이제는 즉흥적인 여행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너비가 생겼다. 이때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하루하루의 소중함도 더해졌다. 미래를 위한 오늘이 아닌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고 싶어 졌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 삶에 가장 큰 원동력은 내 시간들이 모여서 아이와 나를 동시에 조금씩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시간이지 않은가!
"아이는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많은 육아지식도, 윤택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아니었다. 바로 '시간'이었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모자라도 아이에게 시간을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아이의 시간은 분명 엄마의 시간과는 다르다. 하지만 아이의 시간이 내 삶에 스며드는 순간 내 테두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깨우쳐주고 변화시켜 주며 내 시간을 더 빛나게 해 줌에 오늘도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