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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 flyboy chef Jun 13. 2020

향신료; 그 색다른 향과 맛 3

향신료(spices)와 그 역사

오늘은 대항해 시대부터 그 이후의 향신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이후의 유럽인들은 더이상 지중해만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결과 그들은 다루기 힘든 한손엔 칼 한손엔 코란을 들고 향신료가격을 자기들 멋대로 오르락 내르락 하는(뭐 내르락은 전혀 없었던듯 싶다...계속 비싸게 팔았던듯 싶으니) 중간 상인들없이 산지 직송의 묘미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항해기술로 아프리카를 돌아서 인도로 가는길을 직접 개척하고 뭐 이탈리아 출신의 쬐끔 비정상적인 돌아이 취급을 받던 2류항해사 콜롬부스라는 좀 '사'자 냄새를 마구 풍기는 자가 느닷없이 서쪽으로 돌면 지구가 둥그니까 인도에 닿을수 있을거란 신념으로 지금의 산살바도르에서 죽을때까지 그곳이 인도라고 믿다못해 지금도 서인도 제도(전형적인 무식의 소치)라고 불리는 지역을 찾아내고 우리 한국인들이 없으면 절~~대로 못사는, 멀쩡한 사람을 밤먹고나면 불뿜는 용으로 변신 시키는 고추라는 향신료를 세계에 전파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후 유럽 세계의 모든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고 그 바로 대서양의 끝단에 있던 스페인, 포르투갈이 정신없이 신대륙에서 약탈을 하던 중에 그들 보다 북쪽에 위치한 대서양의 북서쪽 끝의 맨날 비내리는 섬에서 민트소스에 삶은양고기만 먹고살던 친구들도 이런 상황이 점점 배가 아파서 자기들도 이런 향신료와 식민지 쟁탈을 뒤에서 구경만 하고싶어하지 않았다.
 
이 우중충한 날씨의 섬에 사는 앵글로 색슨족의 후예들은 감히 혼자서는 강력한 스파냐드들을 맞서싸우지 못할듯 싶어 스파냐드들의 오랜 지배에서 막 벋어나서 스페인 이란 말만들어도 치를 떠는 물보다 낮은 땅에 살고있는 터프한 구드쇠들인 네덜랜드 인들을 꼬드겨서 조금씩 포르투갈,스페인 기득권 층의 부를 넘보기 시작했고 그들이 벌써 탄탄한 발판을 다진 남아메리카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 그들의 눈에서 조금벗어난 인도, 인도네시아 지역과 북아메리카 지역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그후 기적같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후에는 아주 대놓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독점 향신료 무역을 이 두 신흥 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해 들어갔다.
 
그러다 결국은 이 짠돌이, 물보다 낮은땅 사는 더치들과 그보다 한수아래라면 짜증내는 유럽의 변방 섬나라 축구훌리건 사람들의 연합은 결국 향신료 가격과 세금문제 때문에 박살이 나고 동인도 회사(English East India. Co)는 영국의 자본으로 인도에서 향신료 무역의 대표자가 되었고 그것은 그이후 19세기 초반까지 인도지역의 향신료 무역 독점을 즐기다가 영국 정부의 제제로 향신료 무역이 다원화(그래봐야 또다른 영국회사...) 될때 까지 초국가적인 힘을 가졌었다.
 
향신료는 이런 사람들의 삶과 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없어서는 않될 중요한 필수 사치품 이었는데 이런 영국의 독점에 항거해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다른 유럽 국가들은 동인도 제도(인도네시아) 와 아프리카, 인도차이나에 자기들만의 향신료 생산지역을 개척하게 되었고 바로 이것이 정신없이 세상이 미쳐돌아가던 서양강대국의 식민지 쟁탈전의 발화휴즈 였다.
 
이런 목숨걸고 차지하려던 이 향신료의 영향에서 우리 동북아 지역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특히 중국과 일본은 이런 사막에서도 우산 팔아먹을만한 동인도 회사의 세일즈맨드의 방문을 받게 되고 이 덕분에 중국은 자신의 남쪽 조그만 항구를 영국이라는 향신료 세일즈 왕국에 넘겨주고 100년 동안 통치를 허락하게 된다.
그러나 약싹 빠른 일본인들은 그런 서양열강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자신들의 힘을 키워서 이런 미쳐돌아가던 세상에서 동쪽끝 변방 주인공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그두 나라사이에 끼어 조용히 지내던 자칭 고요한 아침의 왕국은 동인도 회사의 열혈 세일즈맨 들의 방문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중국을 통해서 조금씩 들어오던 후추등의 향신료는 주상전하나 드시던 고급물건이라 뭐 향신료 라는게 있으나 없으나 그닥 별 필요성을 못느껴서 지금도 이 향신료의 사용에 많이 인색하고 당황해 하는듯하다.
 
뭐 2차세계대전 이후 이 향신료는 어느정도 생산의 안정( 농기술의 발달과 물류이동의 도움으로)이 왔고 이제는 더이상 이것을두고 국가끼리의 집단 패사움을 않해도 될정도가 되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웬만한 마트에 가면 한병에 5천원 이하면 구입할수있는 넛멕, 시나몬, 정향(클로브) 등이 불과 200년 전에는 나귀등에 실려, 범선을 타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8~10개월에 걸치는 대장정 끝에 당신의 식탁에 오른다는것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점심에 인도식 커리나 노리끼리한 한국식 카레를 먹는다면 이게 어떤 기구한 역사를 가진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당신 식탁에 올라왔는지 다시한번 생각을 해볼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에게 식사중 흥미거리 하나가 식탁위의 또다른 반찬으로 오르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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