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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 flyboy chef Jun 12. 2020

향신료; 그 색다른 향과 맛 2

 향신료(spices)와 그 역사

이 신흥 군사강국 유럽인들은 그들의 지중해 동쪽의 선생님들보다 더 빠르게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들의 힘을 팽창시키기 시작했다.
거기엔 그들의 엄청난 양의 후추와 여러가지 향신료의 소비도 포함되어있어서 주변의 갈리아인들(뭐 먹는데는 이친구들 따라갈 사람이 없는듯하다;현 프랑스지방) 이베리아 반도의 스파냐드들(이사람들도 먹는거 알아주는 사람들이고;현 스페인지방) 도 이 무지막지한 로마 리조니어(로마군단) 방패와 창 뿐만이 아니라 이들의식문화도 같이 들어왔다.
 
뭐 이 로마인들의 이야기는 나보다 더 잘아시고 있는분들도 많고 자칫 너무 지루해 질수도 있으니 일단 다시 전체적인 메인 스트림을 다시 타고 가기로 하자.
 
이런 용감무쌍한 로마인들의 덕분으로 소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음식에 뿌려먹을줄 모르던 유럽인들이 후추, 정향 같은 향기로운 것들을 맛본 이후로는 이런 향신료의 수급에 더욱더 열을 올리게 되었다.
이런 한 시대를 완전히 도미네잇 하던 로마제국의 멸망이후에도 이 값진 향신료의 공급은 유럽지역의 엄청난 인구 증가로 동방의 부지런한 상인들과 그들사이의 동로마 제국이 열심히 서쪽의 미개인들에게 공급을 해줘서 그나마 간신히 폭동이 날정도의 소비량을 아주 감질나게 만족을 시키고 있었는데, 이 동방의 상인들의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아주 배아파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소비자, 유럽인들 이었다.


 
이런 서쪽의 유럽인들과 동쪽의 유럽인들의 형제라고 볼수있는 동로마인들의 후예 비잔틴 왕국 인들은 그들 동쪽의 과학과 문화, 그리고 교역으로 부유한 이 동방 상인들(아랍인들)이 점점 그들의 세력을 서쪽으로  뻗치는 것에 불안을 느끼다가 결국은 그들의 형제라고 믿고있던 서쪽의 교황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양쪽 종교의 중요한 성지인 예루살렘의 문제로 불어져서 10세기말에서 12세기 말까지의 200년에 걸친 피투성이 전쟁의 시작이 되는데 지금까지도 이때의 문제가 해결이 않되서 매일 뉴스에 일면을 장식 하고있다.
 
어쨋든 많은 사람들의 십자군 원정을 유럽인들의 인구팽창과 중,하급 귀족들의 영토에 대한 욕심때문이라고 보고있고 그 영토에 대한 욕심중의 중요한 이유는 값진 향신료가 나는곳을 손에 넣던가 아니면 그 향신료가 다니는 통로를 장악 하던가 였다고 생각할수 있겠다.


 
이런 십자군 원정후 유럽의 식탁위의 음식문화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졌고 마지막 십자군 원정 이후에보물을 찾아나선 마르코 폴로 라는 이탈리아 여행가도 물론 향신료를 찾아 동쪽으로 떠난 사람중에 하나였다.
그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유럽인들은 점점 그들의 기호에 맞는 이 향신료를 중간의 한번 제거하려다 실패한 적들로부터 아주~~비싸게 사는것에 신물이 나서 그 직접적인 산지 거래를 위한 위험천만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니 그게 바로 대항해 시대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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