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화줍줍 Dec 28. 2021

한류와 번역

콘텐츠 수출의 시대, 한류 웹 언어 사전의 필요성

국내 콘텐츠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는 뉴스는 이제 옛날만큼 충격적이거나 신선하지 않다. 콘텐츠 수출의 시대, 좋은 콘텐츠를 해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 전환, 번역이 필수적이다. 콘텐츠가 음식이라면 그것을 담는 그릇은 언어이다. 국내 콘텐츠가 해외의 이목을 끄는 사례가 늘어나는 요즘, 좋은 품질의 음식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그릇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콘텐츠와 언어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2000년대 초중반 국내 시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작품의 원어를 이해하기 위해 제2 외국어로 일본어의 수요가 급증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타국의 매력적인 콘텐츠는 해당 국가의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한류가 거세질수록 한국어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한다. 해외에서 한국어 학습을 담당하는 문체부 산하 기관인 세종학당 홈페이지 공시자료에 따르면 2007년 13개소이던 세종학당은 2021년 기준 234개소로 한류 열풍에 따라 그 수가 대폭 증가했다. 한류에 따른 해외에서의 한국어 열풍을 실감하게 한다. 

출처: MBC, 아무튼 출근 


최근 들어 급속히 퍼진 한국어 열풍의 8할은 BTS의 한국어 노랫말 번역에 있다. 한국어로 된 가사를 이해하고 흥얼거리기 위해 수많은 해외 팬들은 생소한 한국어 단어를 분석하고 공부하여 본인의 문화로 만들었다. 이러한 팬심이 모여 집단지성을 이뤄낸 사례가 바로 '팬 번역'이다. 아마추어 번역이지만 팬 번역은 '즉시성'과 '집단지성'이라는 두 가지 강점을 내세워 수많은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지는데 크게 일조했다. 한류 4.0 혹은 신한류의 중심인 BTS가 생산해내는 한국어 콘텐츠들이 전 세계의 팬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가 된 것은 각국 팬들의 참여를 통한 '팬 번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음악 이외에도 우리에겐 유수의 콘텐츠들이 많다. 콘텐츠 강국인 우리가 이러한 '팬 번역'에 만족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시점이다. 


적합한 번역(proper translation)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번역이 최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팬 번역'이 BTS 노랫말의 의미 확산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아마추어 번역의 한계로 지적되는 품질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되었던 것은 BTS의 지민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발표한 '크리스마스 러브(Christmas Love)'라는 곡에 등장한 '소복소복'이라는 한국어 표현이다. 소복소복이라 의태어를 번역하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falling falling(내린다 내린다)'으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에게 '소복소복'과 'falling falling'은 굉장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falling falling'은 '소복소복'이라는 지극히 한국스러운 표현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이에 '소복소복'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해외 팬들의 트윗 댓글이 1만 개를 넘길 만큼 이슈가 되었는데, 소복소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해외 팬들도 답답하겠지만, 좋은 콘텐츠(가사)를 두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상황 역시 답답하게 느껴졌다. 


대중가요 이외의 드라마, 영화 등도 끊임없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주요한 한류 콘텐츠이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에 대한 호감도를 저해시키는 요인으로서 번역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이는 한류 콘텐츠의 확산 과정에서 완성도 있는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제로 과거 훌륭한 국내 콘텐츠가 훌륭한 번역을 만나 국제무대에서 시너지를 발산한 케이스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0년대는 이른바 출판 한류의 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문학작품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지대했다. 2016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2019년 27개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된 김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 해외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작품 자체의 퀄리티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번역의 역량 또한 우수했기 때문이라 평가받는다. 언어의 한계로 국제사회에 덜 알려졌던 우리 문학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 의미가 깊다.


이러한 긍정적 사례들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부의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유수의 전문 번역인력이 한류 콘텐츠 번역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면 한류 콘텐츠의 전 분야에서 보다 높은 퀄리티의 번역 품질을 제공할 수 있다. 아마추어 번역으로 비롯되는 모호한 의미 전달 역시 급격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도 문체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을 선두로 한국문학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전문 번역인을 양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매우 작고 문학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며, 시설 및 교수진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정부에서 전문 번역인력을 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미 한국외대, 이화여대, 중앙대, 서울외대 등 주요 통번역대학원을 주축으로 전문 번역인을 양성하는 교육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전문 번역인력을 직접 양성하기보다는 전문기관으로 하여금 전문 번역인력의 양성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문화예술 번역의 경우 단기속성과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으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란 생활양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이를 나타내는 언어도 그 맥을 따라 섬세하게 변화한다. 이와 같은 변화를 반영한 직접 데이터가 축적되면, 그 자체로 그 어느 국가의 문화자산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소복소복'사례에서도 만약 이때 전문 번역가들이 직접 축적한 데이터가 있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소복소복'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어 콘텐츠(가사)의 의미를 더욱 확실히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직접 데이터 축적을 위해서는 먼저 클라우드형 집적 데이터 프로그램인 캣툴(Cat Tool)의 보급화가 필요하다. 기존 번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캣툴인 트라도스(Trados)의 경우 컴퓨터 1대당 60만 원 수준으로, 개인이 온전히 부담하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다. 


통번역대학원과 같은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대상으로 캣툴 인터페이스 교육 및 프로그램 구매 지원과 함께 한류 분야 내 한국어-외국어 간 등가 표현 시스템을 구축하면 유수의 번역가들의 한류 콘텐츠에 대한 집적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수집할 수 있다. 


데이터 프로그램을 한번 설치해놓으면 이를 활성화 및 보완시키는 역할은 번역가의 역할이기에 추가적인 지원은 필요 없으며 정기적인 관리만으로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한류 콘텐츠 수출을 위한 유수의 직접 데이터가 완성된다. 한국어 콘텐츠를 접한 외국인이 그 의미를 알고 싶을 때 해당 사이트로 접속하여 언어를 선택하면, 전문 번역가들이 완성해놓은 직접 데이터가 나오는 형식이다.


이른바 한류 웹 언어 사전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한류 웹 언어 사전이 전문 번역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표현이 적합한 번역인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담론은 언어별, 분야별, 주제별로 나뉘어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니는 거대한 지식 창고로 변모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대중음악 노랫말 번역뿐 아닌 문학,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한류 콘텐츠를 번역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증가하는 한국문화예술 콘텐츠의 수요를 문학번역원의 문학 번역아카데미 단독으로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배출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번역 역량에 있다는 해석 역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전문 번역인력 양성기관에 대한 지원 없이 현재의 인공지능이 수집한 데이터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축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구글 번역, 파파고 등 기계번역이 내놓은 결과물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쓸만하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번역의 영역에 한정된다. 


콘텐츠 수출을 위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전문 번역은 해당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한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전문영역이다. 


1990년대 우연히 시작된 듯한 한류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한류', '한류 4기'라는 명칭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부정할 수 없는 콘텐츠 강국이다.


문화예술 주관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신한류 진흥정책 추진계획'에도 유수의 콘텐츠 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콘텐츠 수출은 국정과제임이 틀림없다. 


이제 스스로 콘텐츠 강국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 강점을 활용시킬 방안으로 좋은 콘텐츠의 좋은 번역을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유수의 콘텐츠를 창작하여 수출하는 것은 민간의 영역에 포함되지만 그에 대한 사전 준비 및 사후관리를 정부에서 지원한다면,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적합하게 수출할 수 있다. 민간의 영역에서 콘텐츠를 잘 수출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박소영(2019), 이베로아메리카 한류와 번역-방탄소년단 콘텐츠의 스페인어 팬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언어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