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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Jan 10. 2021

삶이란 소소하고 기이한 것

문학아! 너라면? ① - 빌헬름 게나치노 <이날을 위한 우산>

오늘도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마는 하찮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교육만 많이 받은 아웃사이더'이자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현대판 거지'로 표현한다. 


부정기적으로 구두 테스터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이마저도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는 회사에서 받은 구두를 들고 벼룩시장에 나가 판매를 한다. 그는 자신의 느낌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리고 정신병과 죽음 중 어떤 것이 자신에게 먼저 오는지를 생각한다. 잠시 그는 벼룩시장에서 상인으로 일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평소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모임 자리에서 그는 농담 삼아 자신이 '기억 연구소'를 운영한다고 말한다. 그 모임의 한 부인은 연구소에서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는지 묻는다. 그는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온다"라고 대답한다.





어떤 한 남자가 바바리코트를 입고 한 손엔 작고 낡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심히 뚫어지게 바라본다. 물론 행인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 열심히 적어 내려간다.


소설 <이날을 위한 우산>의 저자가 왠지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찮을 정도로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작가, 빌헬름 게나치노. 그의 소설은 무척이나 세밀하며 무척이나 웃음이 나고 무척이나 슬프기도 하다.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기이하며 하찮은 존재들을 끄집어냈다.


주인공은 현실에 적응하며 돈을 많이 벌 생각도 좋은 직장을 꿈꾸지도 않는다. 여느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심한 주변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치지는 일상의 공상들이 소설을 완성해 나간다.


평생 자신의 생각을 말한 적 없고 무기력과 권태로움에 빠진 어느 부인, 한 여자는 연극배우를, 한 남자는 사진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노숙자, 장애인 등 사회의 주류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삶은 기이한 하루를 이룬다. 그 기이한 하루를 그는 치열하게 생각하고 느끼지만 겉으로는 담담하게 살아간다. 그는 시니컬한 세상을 바라볼 때는 자신을 자만심 가득한 사람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는 한없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하찮고 소소한 것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기이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른다. 무의미한 하루를 주인공처럼 의미를 부여할 때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며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의 삶. 그 옛날의 나는 '의미를 부여하며 사물을 바라봐야 했던 첫 번째 희생자'로 말한 주인공이 무척이나 애틋하다. 그의 순수한 영혼이 때 묻은 먼지투성이인 세상을 향해 겉으론 침묵하지만 속으론 끊임없이 외치는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를 받는다.





문학아! 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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