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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May 08. 2021

몰입의 기쁨과 확장, 독서

달빛 아래에서 그림책 ④ - 오드리 니페네거의 <심야 이동도서관>

책마다 추억이 담겨 있었다.

한 권의 책은 몇 시간 혹은 며칠의 쾌락이기도 했고

언어에 몰입한 경험이었으며

단단히 고인 기억이었다.

- <심야 이동도서관> 중에서 -






손으로 만져지는 종이의 촉감, 책장을 넘기는 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속에서 나와 책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책을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생각해보면 어떤 특별한 계기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냥 책이 좋았다. 책 속의 문장들로 멈춰있던 상상계를 자극하는 순간들이 좋았고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나와 책이 하나가 되어 몰입된 시간들은 설렘과 기쁨으로 충만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사준 '위인전'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흥미로웠다. 한 가지 추억이 있다면 그 당시 표지는 인물들을 수채화로 표현했는데 그것을 따라 그린 그림들을 친구들한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림들을 사진 찍어 보관을 했었는데 지금 보니 너무 허접한 수준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물했던 이유를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좋아했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위로받던 시절, 고전문학은 버겁고 어려운 숙제 같은 존재였다. 처음으로 도전했던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은 문학이라는 장르에 빠져든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에 나오는 아래의 문장을 발견하고 너무 공감돼서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철학은 오직 진리에 관계된 것 같아 보이지만 환상만을 말하는 듯하고, 문학은 오직 환상에 관계된 것 같아 보이지만 진리를 말하는 듯하다고 페레이라는 말했다."


학창 시절, 추천 도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성인이 되어 방황하고 있던 나에게 신세계로 다가오며 위로를 주었다. 보이지 않은 권력의 비극적인 지배를 비판했던 조지 오웰의 <1984>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해줬다. 실존의 문제와 부조리한 세계를 비판했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의 작품들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 문학은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고 읽고 싶은 충동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예쁜 그림에 반해서 사거나 그림들을 참고하려고 한 권 한 권 모았던 '그림책'들을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독립서점과 중고 책방에 들러 숨어 있는 그림책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는 그림책을 '시를 닮은 그림의 언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그림책'은 또 다른 언어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 편식에 가까웠던 독서 습관은 다양한 분야로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확장되는 순간만큼, 삶의 의미와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의 <심야 이동도서관>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라의 삶에도 책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알렉산드라는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 환하게 밝힌 캠핑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말런의 '아이 샷 더 셰리프(I shot the sheriff)'를 듣게 된다. 캠핑카를 개조하여 만든 곳은 '심야 이동도서관'이었고 그곳에서 노신사인 오픈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책장에 꽂아 있는 책들을 둘러본다. 그런데 모든 책들이 낯익다. 알고 보니 그녀가 읽은 모든 책들이 꽂아있었고 이곳은 이용자가 읽은 책을 빠짐없이 모두 모아 둔 곳이었다. 하지만 이동도서관의 이용 시간은 저물녘부터 동틀 녘까지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했고 그 후 그녀는 심야 이동도서관을 볼 수 없었다. 그 후 그녀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그녀가 읽은 책이 이동도서관 서가에서 다시 만나기를, 오픈쇼가 알아주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동도서관은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이동도서관에서 위안을 찾았다. 책장에 꽂아 있는 책들은 고스란히 그녀의 삶이 스며든 것들이다.  그녀는 이동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싶었지만 오픈쇼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말만 할 뿐이다. 그는 알렉산드라에게 일반 사서를 제안하고 그녀는 문헌정보학 석사 과정에 등록한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공립도서관의 사서로 즐겁게 일하게 된다. 그녀는 책을 읽을 때마다 불어나는 심야 이동도서관의 서가를 상상한다. 그 후 이동도서관과 다시 마주했을 때 무수히 많은 책들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이동도서관에서 일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오픈쇼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말만 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책으로 가득한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책을 위해 포기한 모든 것을 돌이켜보았다.






개인적으로 예상과 다른 결말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심야 이동도서관>에서 이후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사후 세계이고 '이동도서관'은 천국이었다. 그녀는 책을 통해 무엇을 갈망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녀의 선택에서 책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나에게 책을 읽는 순간은 작가의 사유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느 한쪽이 막혀있던 길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길을 걸어가는 확장의 순간은 몰입의 시간이 되며 그 몰입은 설렘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설렘과 기쁨 속에서 마주한 글들은 '온전한 나'와 함께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요동쳤던 마음의 소리로 혼란스러웠을 때 붙잡아 주었던 책 속의 언어들은 좌절 속에서 희망, 용기, 도전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책은 '나'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영역을 넓혀주었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짓들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은밀한 내면 속의 또 다른 자신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는 현재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다.


이렇듯 온전한 '나'를 만나는 책 속은 또 다른 천국이 아니었을까?


인생에는 진짜로 여겨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많고, 반대로 알려주지 않는 진짜 다이아몬드 역시 수없이 많다고  타거 제이의 말처럼 나는 독서를 통해서 인생의 진짜 다이아몬드를 찾아가는 중이다.





달빛 아래에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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