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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언니 Sep 14. 2020

그녀는 어쩌다 존버(존중하며 버티기)할수 있었을까?

실은 나도 바람피운 적 있다

      


많은 직장인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개중에는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퇴사 후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계속 이 회사를 다니는 게 정말 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리라. 세상 직장인의 반 이상은 아마도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면서 출근과 퇴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시기는 언제일까? 회사의 끝, 회사생활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15년 전, 나는 나름대로 평범한 회사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별일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에서는 수많은 고민들이 쉬지 않고 피어오르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내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어린 시절부터 선망하던 내 꿈! 그건 다름 아닌 연예인이었다. 꿈 많은 소녀이던 시절의 나는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가슴 한구석에서 ‘난 언젠가 화려하게 데뷔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라며 여전히 혼자만의 외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 주변에 이런 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오히려 “그래, 까짓거 도전해보는 거지!” “야, 넌 잘할 거야!”라며 철없는 내 꿈을 격려해주는 사람들로만 가득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나는 기어코 내 꿈을 이루겠다는 그 시절 그 소녀의 목소리를 따라 혼자만의 희망찬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부푼 마음으로 도전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 나는 회사와는 전혀 다른 상상들로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기 학원부터 다녀야 하나?’ ‘아니지, 오디션부터 보는 거야.’ ‘비주얼은 이대로 괜찮으려나? 어디 손 좀 봐야 하나?’ 혼자만의 세상에 흠뻑 빠져 있던 그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TV에 나올 내 모습’이었다. ‘과연 내가 이 얼굴로 연기를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회사를 두고 나는 두근거리는 첫 바람을 피우게 되었다.     

‘새벽 6시까지 여의도 4번 출구로 집합.’     

평일을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낸 나는 주말이 되면 이른 새벽 첫차에 몸을 싣고 여의도로 향했다. 가끔은 나의 베스트 드라이버인 어머니가 운전해주시는 차로 이동하며, 그렇게 화려한 연예인이 될 그 날을 열정적으로 꿈꿨다. 평일은 회사로, 주말은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로 나는 정말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내 열정적인 노력과 달리 연예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금방 화면에 얼굴이 나오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는 매주 지나가는 사람으로만 나왔다. 그렇게 아쉬운 나날들을 견뎌내던 어느 날, 나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단역배우 한 분이 현장에 올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이 바로 하늘이 주신 기회다!’ 하는 생각으로 번쩍 손을 들며 “저요!”라고 소리쳤다. 기회를 잡은 나는 현장에서 급히 대사를 외우고 주연배우와 촬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정면 샷을 찍는 데 성공했다. 나는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 너무나 기뻤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일이 다시 나를 회사에 충실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 역시 내 ‘정면 샷’이 방송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얼굴이 TV에 나오는 ‘그날’이 왔다. 그렇게 처음으로 TV 속의 내 얼굴을 보게 된 순간!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들 모두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찐빵 같은 내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친구들은 “드라마 찍는다더니 개그 하러 간 거야?”라며 배꼽이 빠지게 웃어댔다. 그리고 나는 곧장 결심했다. ‘회사에 뼈를 묻어야겠다!’     

직장인으로서의 일과도 만만치 않지만 잠시 경험해본 방송 일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시간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힘들었다. 촬영이 시작되는 시간이 새벽이었는데 끝나는 시간도 새벽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대기하는 시간도 굉장히 길었다. 말 그대로 끝이 나기 전까지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 바로 촬영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규정상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 물론 어쩌다 이른 출근과 야근이라는 변수들이 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뒤집어버릴 정도는 아니다. 나는 ‘회사는 규칙적인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다시 충실한 직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바람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게 불어온 두 번째 바람은 ‘작곡가’였다. ‘음악을 좋아하니 작곡가가 되어보리라.’라는 꿈을 꾸며 유명한 음악학원에 등록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작곡가가 되는 일 역시 연예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피아노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악보 보는 법도 제대로 배워야 했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아, 내 노래는 내가 퇴사를 해도 만들어지지 못하겠구나….’ 게다가 뜻하지 않은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나는 작곡가의 꿈을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작곡가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나는 다시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삶에 충실하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현재 작곡가가 되어 있었을까? 솔직한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그 생각을 하며 입사하기 전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면접 보기 전 반드시 입사하고 싶은 마음에 회사 홈페이지의 회사소개와 연혁을 줄줄이 외우면서 잠자리에 들던 나.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말해서 점수를 딸까 밤새 고민했던 나. 이 회사 역시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다. 

그러나 ‘회사원으로 살 것인가’를 놓고 했던 두 번의 방황에는 미련이 없다. 왜냐고? 회사생활을 통해 프로가 되는 것도 나의 꿈이며, 그 꿈을 이루고 싶은 내 마음을 확인했으니까. 물론 그 길 역시 배우나 작곡가가 되는 만큼 힘든 과정이 따르겠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방황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썩어들어가는 속과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회사를 오가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은가자주 마음속에 다른 꿈이 떠오르는가더 나은 회사 혹은 더 나은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되는가그렇다면 잠깐 바람을 피워보길 권한다내 꿈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과감하게 시간을 투자해라그리고 충분히 그 길에 대한 나의 재능과 열정을 점검해봐라. 그리고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또한 과감히 돌아와라. 당신은 당신의 삶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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