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성장하다[상호보존의 법칙]
회사는 배움의 장소다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터전이 필요하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공동체로서의 의식도 길러나갈 수 있는 곳, 바로 회사 같은 곳 말이다. 그렇다.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려면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말하곤 한다.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배우는 등 삶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다. 회사가 꼭 인생만 배울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에는 우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없는 대신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동료로 함께 한다.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배움은 분명 아무데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관점을 한번 바꿔보면 인생에서 유일하게 돈을 받으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이야말로 회사가 아닐까?
나 같은 경우 학교를 다닐 때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재미없는 공부를 단 한 번의 수능 때문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수능을 보기 전날 바보 같은 다짐을 했다. ‘다시는 공부하지 않으리라. 내 인생에 이제 공부는 없으리라.’라는 황당한 다짐을 한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전공서적은 물론이고 글로 쓰여 있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은 다짐과 한심한 실천이었다. 어처구니가 나의 다짐으로 인해 학점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고, 때로는 황당한 에피소드까지 만들어내곤 했다.
전산실습 시간의 일이다. 그날도 나는 꿋꿋하게 수업을 듣지 않으며 맨 뒷자리에 앉아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자 교수님께서 “자, 지금까지 배운 문서를 디스크에 저장해서 제출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던 나는 디스크가 아닌 D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했고, 결국 내가 제출한 공디스크는 다른 친구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창피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그러나 문제는 졸업 이후에 발생했다. 나는 전산교육이 회사에서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졸업한 것이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잘 합니까?”
“네… 당연하죠. 다 자신 있습니다!”
내 어이없는 다짐이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회사 면접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으로 돌아왔다. 면접관의 질문에 새빨간 거짓말을 한 나는 입사 후 간단한 문서 작성 지시에도 덜덜 떨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는 나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회사를 다니면서 컴퓨터 학원을 등록하여 문서공부를 따로 해야만 했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할 걸.’ 하는 미련한 후회와 함께 말이다. 정말이지 옛말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다. ‘공부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그 말이 왜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걸까.
“이명혜, 너 면접 볼 때는 다 잘한다고 했잖아?”
팀장님이 일하는 내 뒤에서 건넨 첫말이었다. 웃으시며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아니, 아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셨을 것이다. 엑셀에 수식된 숫자들을 모두 지우고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빈칸을 채워 넣고 있었으니…. 그런 나를 보며 헛웃음이 나오신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덕에 회사에서 첫 배움을 시작할 수 있었다. 팀장님께서는 내게 친절하게 문서작성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전산을 회사에 입사해서야 배우게 되었다. 그것도 돈을 받으면서 말이다! 야근을 좀 많이 시키긴 하셨지만 늘 비싸고 맛있는 야식을 사주셨기에 크게 불만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일을 시키더라도 기분 좋게 시켜야 한다.’ ‘맛있고 비싼 음식을 사줘야 야근을 시켜도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상사로서의 지혜를.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을 꼽아본다면 인간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다보니 자연히 친분이 쌓이게 되고, 또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깊어지는 동료애와 10년지기 보다 친밀감을 갖게 된 지인은 인간관계의 배움에서 따라오는 부상(副賞)이었다.
두 번째로 꼽아볼 수 있는 것은 버티기였다. 나는 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대안 없이는, 업무가 익숙해지기 전에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괴로운 업무가 반복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버티기는 성공했다. 그리고 버티기를 성공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버티는 과정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버텨내면서 나는 오히려 회사에 다니는 직원으로서의 자부심과 나만의 인생 목표 수립 등 나 자신에게 생기는 새로운 변화들을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회사에서 직원이란 한낱 부품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다. 17년이라는 직장생활 동안 나는 스스로의 의지로 작성했던 세 장의 사직서와는 별개로 수많은 선후배들과 상사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들의 자리를 보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과 더불어 ‘이제 저 사람들이 없어져서 회사가 제대로 안 돌아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그때 나는 ‘아, 우리는 모두 부품에 불과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왕 부품인 거 제품에 딱 맞는 부품이 되어서 빨리 소모되어 버려지기 보다는 많은 경험을 쌓아서 만능부품이 되어 오래 쓰여야겠다.’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회사가 개인의 자유와 시간을 빼앗아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우리는 회사 안에서 인생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소스들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도 얻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이 시간만 보내다 간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날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낸 사람이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것 역시 의지이자 능력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많은 것을 가져간 사람이야말로 그만둘 때도 미련 없이 그만 두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배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배운다’라고 하면 나이가 많은 선배나 상사들에게 업무를 배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후배들이야말로 업무적인 면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지능적인 면에서나 훨씬 훌륭한 이들이 많았다.
나는 멋진 후배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행동에 반성하기도 했고 전문적인 지식들을 상사가 아닌 그들에게 배운 적도 많았다. ‘나 역시 이렇게 멋있는 후배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시야를 넓혀보자. 배움은 나이와 지위를 따지지 않는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회사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더라.
회사는 학교와 다르다. 같은 반에 친구들만 있지 않다는 얘기다. 동료, 선배, 후배, 그리고 상사까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 회사다. 그리고 이런 곳이기 때문에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진리를 충분히 배워나갈 수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면, 이제는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위해 회사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보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 장소, 그 일터야말로 우리가 앞으로의 삶을 위한 배움의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