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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언니 Oct 18. 2020

성질머리 그리고 말 잘 못

나는 어릴 때부터 성질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한 성격 하게 보인다, 기가 세 보인다, 무섭다, 까칠해 보인다, 새침해 보인다… 등등의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착해 보인다는 말은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보기보다 착하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이미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평범한 회사생활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17년 동안 회사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 주변 사람들이 “너 아직 그 회사 다녀?”라고 묻는 질문 속에는 ‘너 그 성격으로 어떻게 아직 그 회사에 다녀?’라는 말이 포함되었을지 모른다.

이쯤에서 내가 정말 보이는 대로 성질이 있는가? 아니면 보이는 게 다이고 실은 아닌가? 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지 모르겠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이 성질머리 덕에 17년간 회사를 무난히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착했더라면, 온순했더라면, 약해 보였더라면. 싫은 소리는 1도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래도 난 누군가의 밥이 되어 지금쯤 회사를 떠나 있었겠지! 또 가마니(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는 것)로 보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행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말을 잘하는 것보다 강약을 조절하여 말하는게 중요하다.

나는 말도 조리 있게 잘 못한다. 그래서 늘 회의를 하거나 발표를 해야 하는 자리가 두렵고 겁이 났다. 그래서 그런 자리는 가급적 피했다. 그리고 상사의 부당함에 말로 조리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강한 미간 찌푸림으로 대신하곤 했다. 말을 잘하지 못해 주먹이 먼저 올라가는 나였지만 CCTV가 있는 회사인지라 조용히 주먹을 내려놓고 강하게 미간에 힘을 주었다. 어쩌면 하느님은 나에게 말실수 하지 말라고 강한 미간 주름을 선물로 주시기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내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는지 어느새 나는 회사에서 또는 동료들에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버렸다.

또한 회사의 건의사항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가급적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사실 건의를 한다고 해서 회사가 바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 아닌가. 그래서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부정적이거나 불만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 충성도가 높은 직원, 불만이 없는 직원으로 잘못 인식이 되어버렸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게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를 오래 다니게 만들어준 셈이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말을 잘하기 위한 책들이 수두룩한데 직장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소통이고 관계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그 책들을 보고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경험상 말을 잘한다고 해서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업무 능력으로서는 중요할지 모르나 회사생활이 그게 전부는 아니잖든가. 대부분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관계가 깨어져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만두니까 말이다.

말을 잘 못해서 이득을 본 예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번은 발령 건을 두고 나와 한 직원이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때에도 여전히 말주변이 없던 나는 상사의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반면 다른 직원은 본인이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얄미워 보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의 격한 고개 끄덕임의 리액션이 매우 순응하는 태도로 보였던 것 같다. 그때 또 한 번 생각했다. “역시 입 다물고 있길 잘했어.”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러나 그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본의 아니게 말을 아끼며 회사생활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 시간들이 내게 준 교훈도 많다. 나 역시 때때로 후배들이 너무 논리적으로 내게 이야기할 때는 반발할 수 없지만 묘한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말이 다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조차도 스스로가 만들어낸 논리와 합리화로 눌러버리면 위축이 되기 일쑤다. 나는 그런 것에 주눅 들어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때때로 우리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늘 실실 웃고 다니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아, 괜찮아요.” “네, 좋아요.”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런 사람을 우습게 본다. 분명한 의사를 갖고 표현하라. 그러나 모든 걸 말로 풀려고 하지는 말라. 때로는 말보다 눈빛이, 또 한 번쯤 져주는 그 태도가, 잠시 접어두는 그 모습이 당신에게 이득을 안겨준다. 우습지 않으면서 까칠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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