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새롭게 출판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뒤표지에 적힌 문구다. 나는 이 책을 총 3번 읽었는데, 고등학교 때 한 번, 대학교 때 한 번, 그리고 군에 있을 때 또 한 번 읽었다. 3번을 각각 다른 판본으로 읽었으니 나는 나름대로 이 책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은 머리가 나빠서 내용을 기억 못 하거나. 아무튼, 우연한 기회로 얻은 민음사의 새로운 판본 [참존가]는 표지와 디자인에 신경을 쓴 모습이 보였다. 정면 커버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직접 그린 소설 속 강아지 '카레닌'이 차지했고, 작가 소개란에도 번잡한 소개 문구 없이 체코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두 문장만이 적혀있었다. 흔한 베스트셀러에서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한 문구들은 없었다. 간단한 디자인과 유명한 명성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고전'의 향기를 품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것은 책 뒷면의 문구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이 당연히 토마시와 테레자의 대화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사랑이 권력, 배신, 믿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뒤표지의 문구를 읽은 것은 전혀 엉뚱한 맥락에서였다. 이 문구는 프란츠가 사바나와의 불륜 행각을 들킨 후 자신의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을 위하 끝까지 싸우겠다는 문구는 프란츠의 말이 아니라 그의 아내의 말이다.
여기서 프란츠의 아내에 대해 거칠게 설명하자면, 그녀는 전형적인 '귀부인'이다.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충실하려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이 상황에서 프란츠의 아내가 선택한 이미지는 '젊은 여자에게 휘둘려 조강지처를 버린 남편,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그의 모습이 아님을 알고 기다려주는 여인'이었다. 그러니 이 맥락에서 책 뒤표지의 문구는 사랑의 고귀함을 나타내기 보다는 허영에 젖은 여인의 집념에 가깝게 읽힌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예고편 사기 아니야?"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왜 저 문구여야만 했을까. 출판사 직원이라면 분명 [참존가]를 읽었을 터인데, 왜 굳이 저 문구를 삽입한 것일까? 즉각 떠오르는 답은 하나였다. "사람들의 이미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뒷 표지의 문구는 분명 숭고해. 잦은 업무와 경쟁으로 지친 나에게 어딘가에는 낭만이 있음을 단언하는 것만 같아. 게다가 제목 또한 울림이 있고 철학적인 것처럼 보여. 그래. 난 이 정도의 책은 읽는 사람이지." 아마 출판사가 원한 것은 대중의 이러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순간, 이곳에서 하나의 역설이 일어난다. 쿤데라는 지속적으로 '환상과 농담'에 집중한 작가다. 체코 출신으로 프라하의 봄을 겪고 프랑스로 망명한 그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이념이 전부이고 신성한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조소한다. 또한 이것에서 더 나아가 각각의 인물들은 진지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우스꽝스럽기만 하고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민음사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책의 맥락을 제거하고 가져온 저 문구, 그리고 이 문구에 반응하여 책을 구입하는 사람. 이 두 대상이 만나는 순간, 우리는 쿤데라의 작품에서 수없이 보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이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한 출판사와 자신의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해 책을 구입하는 독자. 나는 그들의 대화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