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룬 벨스에서 만난 소녀

BTS가 참 고맙다

by 질경이


전 날밤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우수수 떨어진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잎이 다 떨어진 아스펜 나무 아래로 갔다.

아침 해를 받고 눈이 녹아내린다.


눈이 부셨다.


눈의 무게에 나뭇가지가 휘었다.



눈 때문에 눈이 부신 건지 보석 같은 경치에 눈이 부신 건지....



좀 더 들어가니 소나무 숲이다.

수 천 그루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산 가득히 서 있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서 차를 세우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주차장이 넓지 않다. 왜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요즘 같아서는 땅을 갈아 주차장 만드는 것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지만 수천만 년 동안 만들어진 이 경치를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다. 이 곳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조금만 불편함을 참으면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본 것과 똑같은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눈에 덮인 자줏빛 산봉우리와 자주색 호수.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광경이 만들어지는데 3억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바닷속 땅이 솟아오르고 갈라지고 물이 흐르고 호수가 생기고...

3천4백만 년 전 솟아오른 땅의 열기로 광물질이 녹아 이 색깔을 만들고

2백만 년 전, 빙하기에 얼음이 이 계곡을 꽉 채웠다가 흘러내리며 지금의 이 계곡을 만들었고

그 후 비바람에 깎이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잠시 왔다 가는 우리가 망가트리면 안 되는 이유다.



전날 밤 눈이 내려 더욱 아름답다.

눈 폭풍 때문에 못 보게 될까 봐 마음 졸였는데 다행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종처럼 생긴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나는 14613피트(4317미터) 하나는 14019피트(4273미터)이다.

서울시내에서 보이는 인왕산만큼 가까워 보이는데 4천 미터가 넘는다니..



호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 쪽으로 조금 가까이 걸어 들어갔다.

좀 더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눈이 녹고 흙이 녹아 길은 자줏빛 흙탕물이다.


1965년 이 산을 오르던 등산객이 8명이나 추락사했다. 이 산은 화강암이나 대리석이 아니고 진흙이 굳어진 이암(Mudstone)이다.

그래서 밟으면 미끄럽다.



한 소녀가 조그만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선선히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수줍어 보이는 예쁜 소녀다.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보고서야 이 소녀가 쓰고 있는 모자에 방탄소년단의 약자인 BTS , 그리고 한문으로 방탄이라고 수 놓여있다는 걸 알았다.

40년 전 미국에 왔을 때는 한국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겨우 아는 척하는 사람이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 물을 정도였다. 가끔 만나는 한국전 참전 군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처참했다. 1984년 LA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주최국인 우리나라의 국가가 울릴 때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옆자리에 앉았던 산타바바라에서 왔다는 백인 할머니가 나를 껴안고 달래 주었다. 1986년 대륙을 횡단해서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는 길에 테네시 주를 지나면서부터는 식당이던 마켓이든 사람들이 우리를 외계인 보듯 바라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일본을 갔을 때 길을 잃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에 있어야 할 식당이 보이지 않아 그곳을 지나는 젊은 여인들에게 길을 물었다.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동방신기를 아느냐고 했다. 사실은 잘 모르면서 그녀들이 실망할까 봐 안다고 했다. 그녀들은 펄쩍펄쩍 뛰며 자신들은 동방신기를 대단히 좋아한다고 했다.

동방신기를 좋아한다던 소녀들

그러더니 우리를 데리고 1 Km 가 넘는 목적지까지 친절히 데려다주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의 위상이 많이 좋아졌다. 참 고마운 일이다.




소녀는 가고 작은 눈사람만 산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내려온다.

내가 여기서 이걸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PS. 세계가 좋아하는 BTS를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워 요즘 나는 그들이 부른 노래를 즐겨 듣는다. 프랑스에서 부른 아리랑, 아이돌, 요즘 뜨거운 다이너마이트.. 등등. 젊은 청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이제는 일곱 명의 이름도 다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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