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잣집, The Breakers

밴더빌트의 집

by 질경이

1800년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땅이 생겼다. 유럽에서 기회를 찾아오는 용감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혼란기를 겪었다. 해방된 노예들은 자유인으로 독립해서 살 능력이 없었다. 배운 것이 없어 다시 옛 주인에게 돌아가기도 하고 빈민가로 흘러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 잔인할 만큼 강하고 숫자에 영리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철도의 벤더빌트, 철강의 카네기, 스탠더드 오일의 로커펠러, 금융의 제이 피 모건 가문들이 이때 생겨났다. 그들은 대통령도 살 수 있을 만큼 부자였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철강회사, 철도회사, 기름회사에서 하루 종일 위험한 일을 하고 겨우 가족을 먹여 살렸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사설 군대에게 총살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를 마크 트웨인이 길디드 에라(Gilded Era)라고 불렀다. 위는 금으로 번쩍거리고 밑은 더럽고 썩었다는 뜻이란다. 로드 아일랜드의 뉴 포트에 가면 그 시절 부자들의 여름 별장들이 있다. 그 시기의 대표적 부자 코넬리우스 벤더빌트의 손자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2세의 집을 가 보았다. 사람들은 이 집을 "The Breakers"라고 부른다.


대문 높이가 9미터.. 높은 문이다. 그 당시라면 나는 저 높은 문을 들어갈 생각도 못할 텐데.

지금은 27불을 내면 이런 저택 두 군데를 들어가 볼 수 있다.


뉴 포트 맨션 보존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음.. 역시 잘해 놓았네.

일반적으로 이런 집 천정에는 천사들이 있다.


이 집주인의 할아버지는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올 뱃삯이 없어 노예계약을 하고 와서 수년간 일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100불을 빌려 조그만 배를 사서 스탠튼 아일랜드에서 뉴욕까지 짐과 사람을 날라주고 돈을 벌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눈치가 빨라 금방 돈을 벌었다. 그는 더 큰 배들을 사들여 경쟁업자들 보다 운임을 싸게 받았다. 아내는 여관을 했다.

미국 땅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가지고 있던 배들을 모두 팔아 철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부에서 사람들이 서부로 가고 서부에서는 농산품과 공업용 자재들을 동부로 실어 날랐다.

기찻길이 거미줄처럼 늘어날 때 그는 뉴욕지역의 철도 노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시기 시카고와 뉴욕 사이가 황금 노선이었다. 뉴욕으로 가려면 그가 소유한 알바니 다리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그는 그 다리를 막고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가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수백 미터를 걸어가서 뉴욕행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그렇게 해서 뉴욕 노선은 벤더빌트의 손에 들어가고 그는 거대한 뉴욕 센트럴 역을 지어 더 큰 부자가 되었다.

1877년 그가 죽고 아들 윌리엄은 6년 동안 그 재산을 두배로 늘렸다. 이때 이 집안의 재산이 미국 정부보다 많았다고 한다. 윌리엄 벤더빌트에게 8남매가 있었는데 장남이 바로 이 집주인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2세이고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쉬빌에 있는 빌트모어 하우스 지은 사람이 윌리엄의 막냇동생 조지 워싱턴 벤더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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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장식한 하나하나가 다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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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 사람들은 집 밖에 푸세식 화장실을 쓰던 시절인데.


"나는 내 부모의 재산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신통한 생각을 가진 딸의 방이다. 그녀는 예술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원하는 대로 살았다고 한다. 다른 딸들은 유럽의 귀족 가문으로 시집가서 상류사회로 진입했다.


이 집 손녀딸 중 패션계에서 청바지로 유명한 글로리아 벤더빌트가 있다. 그녀의 아들이 CNN의 유명한 앵커 앤더슨 쿠퍼다. 앤더슨 쿠퍼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그의 형은 뉴욕의 자기 집 꼭대기에서 투신자살하는 아픈 과거가 있다. 그는 자라면서 혹시 아버지가 특별한 날 편지를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서 듣고 싶은 말들이 있었는데 결국 듣지 못한 그는 얼마 전 그의 어머니와 "the rainbow comes and goes"라는 책을 냈다. 무지개처럼 사라지는 관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그와 그의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니 부잣집 딸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아온 엄마도 하지 못한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집의 서재.

오른쪽에 있는 대리석 벽난로가 프랑스의 오래된 성에서 떼어 내 옮겨 온 것이다. 내가 갔을 때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는데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I laugh at great wealth, and never miss it; nothing but wisdom matters in the end."

집에 와서 딸에게 말하니 깔깔 웃으며..

"Great Wealth를 가졌으니까 그런 말을 하지.." 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이 집을 Cottage(오두막 혹은 작은 별장?)이라 불렀다.


이 집 부엌.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바다로 향하는 현관

이 집주인은 이 집을 짓고 5년도 안되어 사망하고 그의 아내가 35년 살았다. 애쉬빌의 빌트모어 하우스와 비슷한 이야기다. 그 후 헝가리 귀족에게 시집갔던 딸이 이 집을 물려받아 1998년 사망할 때까지 3층에서 살았다.


그 사람들은 부유함보다 지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다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