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보며

by 질경이

1865년 4월 9일,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이 길로 말을 타고 들어왔다.

조금 후 북군 사령관 율리시즈 그란트 장군이 부하 장교들과 들어왔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애퍼머톡스 코트 하우스라는 작은 마을이다.


길 하나,

대장간 셋,

일용품 가게 둘,

변호사 사무실 하나,

수레바퀴 만드는 집..

그리고 몇 채의 일반주택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리 장군이 먼저 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서로 인사했다. 이 두 사람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동문이다. 그리고 이 날 아침까지 총을 겨누고 싸우던 사람들이다.



남군의 리 장군이 이 탁자에서 4년 동안 벌여온 치열한 전쟁을 끝내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치열했던 전쟁을 끝내는 조건은 생각보다 잔혹하지 않았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남군은 공공재산이 아니면 자신들의 소지품과 말이나 조랑말을 그대로 소유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전을 보장받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두 개로 나뉠 수도 있던 상황에서 남군이 항복함으로 하나의 나라로 남게 되었다.

리 장군이 항복하고 나와 자신의 남군 진영으로 돌아갈 때 밖에 있던 북군 병사들이 기뻐 날뛰며 환호하자 북군 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즉시 그들을 저지했다.

승자의 관용을 보였다.


이 날(1865년 4월 9일) 사령관들끼리는 전쟁을 끝내기로 했지만 요즈음처럼 통신시설이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4월 26일까지, 앨라배마나 미시시피에서는 5월 26일까지,

오클라호마에서는 6월까지도 전투가 계속되었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은 6일 후(1865년 4월 15일) 이 극장, 바로 저 자리에서 연극을 보다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사람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 노예가 들어온 것은 지금부터 400년 전이다.

땅은 넓고 해야 할 일은 많아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와 목화 따는 일, 쌀농사 짓는 일 같은 힘든 일을 시켰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All men are created equal.)"라는 문구가 있으나 대법원 판결에서 까지도 흑인은 사람이 아니라 소나 돼지 같은 소유물이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찰스톤에 가면 옛날 노예를 사고팔던 시장이 박물관으로 변해 있다.



"1823년 11월 24일 우리 사무실 앞에서 흑인 노예 10명의 경매가 있다.

현찰 가지고 와서 사 가시오."

"요리 잘하고 집안일 잘하는 남자와, 바느질도 잘하는 17세쯤 되는 여자 있음."


그로부터 100년 후

자유를 얻은 흑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이들은 탁월한 운동선수나 음악가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극빈자로 세상의 미움을 받으며 미국의 암흑가와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다.

식당이나 버스 기차에서 백인들 옆에는 갈 수도 없었고 백인들이 다니는 제대로 된 학교는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의 지원으로 흑인 민권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며 그 반대편에서는 KKK 단 같은 단체의 보복행위도 크게 늘어났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넘었다.

요즈음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만일 흑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나라면 다 용서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사람들에게 차별과 미움만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내가 만일 백인으로 태어나 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흑인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배워왔으면 난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링컨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케네디 대통령 형제가, 존 레넌이 목숨을 걸고 원했던 차별 없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날이 와야 미국은 남북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