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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Oct 17. 2024

아그라성

인도에는 8500년 전 인류의 흔적이 있고 인더스 강 유역에는 5400년부터 문명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550년 까지는 힌두교가 번성했고 그 후 찬드라 굽타 시대에는 불교가 번성해서 아쇼카 왕 때 불교문화가 꽃피었다. 5세기 이후 불교는 쇠퇴하고 다시 힌두교가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힌두교를 필두로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가 인도에서 생겨났다. 12세기에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슬람이 들어왔고 나중에  조로아스터교, 영국이 지배하게 되자 기독교가 들어와 그야말로 종교 백화점 같은 나라이다. 

아그라는 중앙아시아에서 페르샤인들이 들어와 무굴제국을 세우고 수도로 정했던 곳이다.


악바르 대제는 붉은 사암으로 성을 짓고 

샤자한 대제는 타지마할을 지은 후 이곳에 유폐된다.   

아우란 제브는 이 성안에 하얀 대리석을 써서 궁을  만들고  자신의 아버지 샤자한을 이곳에 유폐하고  탈출하지 못하도록 땅을 파서 물길을 들여와 해자를 만들었다. 


무굴제국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던  악바르 대제가 이 성을 세우고

그의 뒤를 잇는 황제들이 계속 확장해 한때는 성안에 건물이 5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슬람 양식이라 연속무늬만 파 놓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슬람은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장식하지 않는데 여기에 예외가 있다.

문위에 새의 조각이 있다 힌두 양식을 조금 들여온 것이다.


샤 자한이 지은 공연장 그의 취향은 무척이나 화려하다



진주의 성



새가 아주 특별한 곳에 집을 지었다.

"누구세요?" 하는 것 같다


성안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들이 많다. 


인도의 수천 년 역사 중 16세기에 쳐들어와 영국에 통치를 받기까지 300년 동안 누렸던 무굴제국의 흔적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로 돌아가고 이슬람으로 남아있던 사람들과 힌두교도 사이에는  싸움이 계속되어  이슬람들을  원래 인도 북부였던 파키스탄과 뱅글라대시로 이주시키고 파키스탄과 뱅글라대시에 살던 힌두교도들은 남쪽으로 이주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무서운 싸움은 역시 종교전쟁이다.



아그라성의 포로의 탑


육각형으로 만들어진 본채와 팔각형 테라스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성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처럼 지어진 이 자리에 서면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강과 성채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실내의 하얀 대리석과 조각이 타지마할만큼 화려하다.


육각형의 방안은 화려함의 극치이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인 악바르 대제가 지은 이 아그라성을 중건하며

이안에 자기가 자신의 아들에 의해 갇히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타지마할의 장식과 비슷하다



방 안에서 보는 테라스의 기둥들 사이로 그가 혼신을 다해 지은 사랑하는 아내의 묘 타지마할이 보인

창살 사이로도 보인다. 방 밑에는 해자와 성벽이 가로막고 있어 보여도 갈 수도 없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 난간에 기대 저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을까..

7년 동안 멀리서 바라만 보며 고통의 날들을 보내다 죽어서야 그녀의 곁에 누워있는 샤자한. 

두 영혼이 만나 그의 한이 풀렸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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