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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Nov 13. 2024

가겟집 큰딸과 오징어 다리

음미하다. 18

  우리 집은 동네에서 유일한 가게, 구멍가게였다. 사람들은 점방이라고 불렀다. 동네 아이들은 우리 삼 남매를 부러워했다.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가게에서 파는 과자는, 가족의 생계 수단일 뿐, 결코 우리 간식은 아니었다. 


과자를 잔뜩 쌓아두고 보기만 하는 건, 고통 그 자체였다. 눈앞에 있는 맛있는 간식을, 정해진 시간 동안 참았다가 먹은 아이들이, 더 성적이 좋고 스트레스에도 강하게 성장했다는 ‘마시멜로 실험’을 들어본 적 있는가? 실험에 대한 논란은 뒤로 하고, 꼬맹이 우리 삼 남매가 그 실험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아마 우리는 하루 종일도, 거뜬히 견뎠을 것이다. 우리들의 인내심이 특출 나서가 아니다. 당시 실험에 사용된 마시멜로의 맛을 몰랐기 때문이다. 알았다고 해도 우리가 좋아할 맛은 아니다. 하지만 맛동산, 빠다코코낫, 웨하스, 새우깡 같은 과자로 실험했다면, 우린 단 1초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맛있으니까! 


그런데 그토록 좋아하는 과자를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기만 해야 하다니,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괴로워만 하고 있을, 우리는 아니었다.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법! 우리는 부모님 몰래 먹었다. 훔쳐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땐, 우리의 행동을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를 먹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일 뿐, 도둑질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도둑질이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인데, 우리 가게에 있는 과자를 먹는 건 도둑질이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나는 주로 10원에 스무 개 정도 하는 '콩과자'를 몰래 먹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콩처럼 생긴 작은 캐러멜이었다. 아주 많은 양을 커다란 통에 넣고 팔았기 때문에, 몇 개 집어 먹는다고 티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나름 지능적이고 소심했던 나와 달리 여동생과 남동생은 놀랍고도 대범했다. 두 동생은 과자는 물론이고, 막걸리 안주용으로 팔고 있던 오징어 다리까지 뜯어먹었다. 차라리 몸통까지 먹었으면 증거라도 안 남았을 텐데, 나름의 양심이었는지, 다리만 뜯어먹었다. 그러다 결국 몸통만 남은 오징어가 발견되는 경악스러운 일도 일어났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내 마음속 양심이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콩과자처럼 작은 건 괜찮아’라면서 외면했는데, 주머니 속 콩과자가 뱃속으로 사라질수록, 마음속에서 죄책감이 삐죽삐죽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의 크기는 커져서, 내 마음을 자꾸 찔렀다.


결국 양심에 따라 살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논으로 일을 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 남동생이 신나게 놀다가 들어와서 당연한 듯 오징어 다리를 뜯어먹으려고 했다. 나는 절대로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막아섰다. 남동생은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는지, 꿋꿋하게 오징어 다리를 뜯으려 했다. 절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는 나와, 그래도 먹겠다는 남동생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어린아이들 치고는 싸움이 꽤나 격렬했고, 결국 남동생은 분을 참지 못하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사방팔방 동네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가겟집 큰딸은 가게 보면서 과자를 다 훔쳐먹는대요.”


생선 팔러 온 아저씨의 트럭에서 나오는 안내 문구처럼, 동생은 같은 말을 무한 반복했다. 부끄러움에 심장이 멎는 기분이 어떤 건지, 나는 열 살 즈음에 알아버렸다. 하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손으로 동생의 입을 막아도 막무가내였다. 동생의 만행을 멈출 방법은, 오직 하나뿐, 오징어 다리를 쥐여주는 것이었다. 나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동생과 검은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신나는 얼굴로 오징어 다리를 뜯어서 나가버렸다. 


신난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물에 걸린 고래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듯 펄떡이는 심장박동을 느꼈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저주의 육두문자를 뱉어냈고, 콧구멍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남동생의 범행 현장을 감추기 위해, 다리가 온전히 달린 오징어를 맨 앞으로 놓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치밀한 오징어 배치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었다. 


부모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었다. 그저 우리가 스스로 멈추길 바라셨을 뿐이었다. 그러나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먹어댔다.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건 동화책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일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끝내 스스로 깨닫기에 실패한 우리의 나쁜 손버릇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부모님의 엄한 훈육과 함께 막을 내렸다.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이 났고, 이후 우리 것이 아닌 것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 “그때 우리한테 과자 좀 그냥 주지 그랬어?”라며 투정을 부리면, 부모님께서는 “그러게, 그때는 왜 그랬을까? 돈이 뭐라고”라고 하시며 미안해하신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젊은 부부가 연년생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산 것일 뿐인데, 미안해하신다. 식탐에 눈먼 불효녀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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