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맛깔나다. 가을 2
쌀보다는 콩을 더 많이 넣는 진짜 ‘콩밥’을 할 정도로 콩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여동생은 콩을 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격하게 싫어했다. 하굣길 여동생의 책가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날 도시락이 콩밥이었다는 뜻이었다. 남겨진 콩들이 도시락통을 굴러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동생이 엄마가 되더니 아이들을 위해 콩밥을 하고 있다. 여전히 콩을 싫어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콩밥을 하고, 먹기까지 하는 여동생에게서 ‘어머니’의 위대함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콩을 싫어했던 여동생도 두부는 곧잘 먹었다. 두부의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부침용, 찌개용, 샐러드용, 순두부, 손두부, 연두부, 마른 두부, 면두부 등등 종류가 너무 많아 선택 장애까지 일으키지만 예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두부는 그냥 ‘두부’였다. 부쳐 먹으면 부침용이고 찌개에 넣으면 찌개용이었다.
맛 좋은 두부를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은 당연히 콩을 수확하는 가을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콩을 들고 마을의 사랑방이었던 우리 집에 모였다. 각자 만들기도 했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은 모두 모여서 함께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아저씨들의 막걸리 안주로, 아이들의 간식으로, 밥상의 반찬으로 두루 활약하는 두부를 만드는 날은 마을 전체가 들썩이며 흥겨웠다.
‘다라’라고 불렀던 아주 크고 빨간 고무통에 마을 아주머니들이 가져온 콩을 붓고, 지하수 물로 콩을 빠득빠득 씻었다. 돌멩이처럼 단단한 콩들이 다 으깨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주머니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콩을 씻었다. 씻은 콩이 더 이상 커지지 않을 만큼 불면 채반에 콩을 건져서 물기를 쫙 뺐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물기 빠진 콩을 커다란 고무통에 담아 머리에 이고 20분 거리에 있던 방앗간에 가서 갈아 오셨다. 양이 적으면 믹서기나 맷돌을 이용해도 충분했지만 많아지면 방앗간에 가서 한꺼번에 갈아야만 했다. 그 무거운 걸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만든 두부를 우리는 맛있게 먹기만 했다. 맛있는 두부가 그냥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애잔해진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방앗간에서 곱게 간 콩물에 물을 붓고 가마솥에 끓인 후, 면포에 넣어 콩물과 비지를 분리했다. 요즘은 건강식품 소리도 듣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우리가 키우던 서너 마리 돼지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비지의 운명이었다. 비지 먹고 잘 자란 우리 집 돼지들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축사를 뛰쳐나와 남의 논과 밭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렸다. 매번 돼지들이 헤쳐놓은 농작물 값을 물어주고 돼지우리를 수리하느라 못질하기에 바빴던 아버지는, 결국 돼지들을 전부 파셨다. 우리 집을 떠나던 돼지들은 “우리는 너희가 준 비지를 맛있게 먹은 죄밖에는 없어. 너희 잘못이야!”라고 울부짖듯 있는 힘을 다해 꿀꿀거리며 먼 길을 갔다.
콩물에 간수를 적당히 치면 콩물이 몽글몽글 엉겨 붙으면서 순두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순두부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즐겨 먹지도 않았다. 맛만 보는 정도였다. 우리는 오로지 단단한 두부만을 원했다. 순두부를 면포에 부은 후 네모난 나무틀에 넣고 무거운 돌멩이를 올리면 물기가 빠졌다. ‘줄줄줄’ 흐르던 물이 ‘또오옥-똑’ 한 방울씩 떨어지면 기다림은 끝이 났다. 드디어 면포 사이사이로 울퉁불퉁 누리끼리한 두부가 모습을 보였다. 만들자마자 바로 먹던 두부는 고소함의 끝판왕이었다.
조선간장에 다진 파와 고춧가루, 통깨를 조금 넣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조선간장의 짜릿한 짭조름함과 다양한 양념이 두부의 진한 고소함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갓 만들어 따뜻하기만 한 두부만 입에 넣고 씹어도 고소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맛있었다. 그립고 또 그리운 맛이다.
아무리 소문난 두부 맛집을 찾아가도 그 그리움이 해소가 안 된다. 콩의 고소함이 도무지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알레르기 비염 때문인가? 하지만 비염이 낫는다고 해도 그 맛을 다시 느끼기는 힘들 것 같다. 모두 어울려 만들어 먹어야만 느낄 수 있는 고소함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콩이 달라졌다. 요즘 두부는 우리 재래종 콩이 주던 고소함을 잃은 대신 주름살 하나 없는 탱탱함을 얻었다. 아무런 냄새도 없이 대리석처럼 맨들맨들 차갑기만 한 두부를 보면 살짝 무섭기도 하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직접 우리 재래 콩으로 재배해서 아파트 단지 사람들 다 모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되겠지만, 두부 먹자고 그렇게까지 할 엄두가 안 난다. 그러면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편리함에 물들었으면서 옛 맛만 그리워하며 고상한 척을 하고 있다. 이게 속물이지 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