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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Nov 07. 2024

몽글몽글 고소고소 두부!

음미하다. 17

 콩도, 콩으로 만든 요리도 모조리 좋다. 쌀보다는 콩을 더 많이 넣고 밥을 할 정도로 콩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여동생은, 콩을 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격하게 거부하고 싫어했다. 콩밥을 해주면 콩만 골라내서 밥그릇에 모아두었다. 하굣길 여동생의 책가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날 도시락이 콩밥이었다는 뜻이다. 남겨진 콩들이 도시락통을 굴러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낸 것이다. 그런 여동생이 엄마가 되더니,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콩밥을 하고 있다. 여전히 콩을 싫어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콩밥을 하고, 콩밥을 먹는 여동생에게서 ‘엄마’의 위대함이 보인다. 


콩으로 만든 것 중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은 아마도 두부일 것이다. 요즘은 부침용, 찌개용, 샐러드용, 순두부, 손두부, 연두부, 마른 두부, 면두부 등등 종류가 너무 많아 선택 장애까지 일으키지만, 예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두부는 그냥 ‘두부’였다. 부쳐 먹으면 부침용이고, 찌개에 넣으면 찌개용이었다. 


맛 좋은 두부를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은, 당연히 콩을 수확하는 가을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콩을 들고 마을의 사랑방이었던 우리 집에 모였다. 각자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일 년에 한 번은 모두 모여서 함께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아저씨들의 막걸리 안주로, 아이들의 간식으로, 밥상의 반찬으로 활약하는 두부를 만드는 날은, 마을 전체가 들썩이며 흥겨웠다. 


‘다라’라고 불렀던 아주 크고 빨간 고무통에, 마을 아주머니들이 가져온 콩을 붓고, 지하수 물로 콩을 빠득빠득 씻었다. 돌멩이처럼 단단한 콩들이 다 으깨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주머니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콩을 씻었다. 씻은 콩이 더 이상 커지지 않을 만큼 불면, 채반에 콩을 건져서 물기를 쫙 뺐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물기 빠진 콩을, 커다란 고무통에 담아, 머리에 이고 20분 거리에 있던 방앗간에 가서 갈아오셨다. 조금씩 할 때는 믹서기나 맷돌을 이용했지만, 여러 집이 함께 할 때는 방앗간에 가서 한꺼번에 갈아야만 했다. 그 무거운 걸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만든 두부를, 우리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 맛있는 두부가 그냥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방앗간에서 곱게 갈아온 콩물에, 물을 더 붓고 가마솥에 끓인 후, 면포에 넣어 비지와 콩물을 분리했다. 


요즘은 비지도 잘 먹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우리가 키우던 서너 마리 돼지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비지의 역할이었다. 비지 먹고 잘 자란 우리 집 돼지들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축사를 뛰쳐나와 남의 논과 밭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렸다. 매번 돼지들이 헤쳐놓은 농작물 값을 물어주고, 돼지우리를 수리하느라 못질하기에 바빴던 아버지는, 결국 돼지들을 전부 파셨다. 우리 집을 떠나던 돼지들은 “우리는 너희가 준 비지를 맛있게 먹은 죄밖에는 없어. 너희 잘못이야!”라고 외치듯이 힘을 다해 꿀꿀거리며 먼 길을 갔다. 


어머니가 콩물에 간수를 적당히 치면, 콩물이 몽글몽글 엉겨 붙으면서 순두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순두부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즐겨 먹지도 않았다. 맛만 보는 정도였다. 우리는 오로지 두부만을 원했다. 순두부를 면포에 부은 후 네모난 나무틀에 넣고, 무거운 돌멩이를 올려놓으면 물기가 빠졌다. ‘줄줄줄’ 흐르던 물이 ‘또오옥똑’ 한 방울씩 떨어지면 우리의 기다림은 끝이 났다. 면포 사이사이로 울퉁불퉁 누리끼리한 두부가 모습을 보였다. 


만들자마자 바로 잘라 나누어 먹던 두부의 맛은 고소함이 끝판왕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능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함이 차고 넘쳤다. 아무 양념도 없이, 갓 만들어 따뜻하기만 한 두부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느꼈던 그 고소함이 너무 그립다. 아무리 소문난 두부 맛집을 찾아가도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조선간장에 다진 파와 고춧가루, 통깨를 조금 넣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었다. 조선간장의 짜릿한 짭조름함이 두부의 진한 고소함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동네에서 모두 모여 만들어 먹던 두부가 너무 그립다. 


어머니가 그 방법 그대로 다시 만들어 주신다 해도, 내가 원하는 맛은 아닐 것 같다. 함께 만들어서 함께 나누어 먹어야만 느낄 수 있는 맛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 입맛이 자꾸 변덕을 부리는 것도 한몫한다. 아무리 맛있는 식당 음식도 서너 번 먹으면 뭔가 맛이 조금 덜하다고 느낀다. 변덕쟁이 내 입맛! 마지막으로 콩이 달라졌다. 우리 재래종 콩으로 만든 두부를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두부에서 콩 냄새가 안 난다. 


아무런 냄새도 없이 대리석처럼 맨들맨들 차갑기만 한 요즘 두부를 보면, 약간은 무섭기도 하다. 제품과 상품일 뿐,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국산콩인지, GMO인지, 세일을 하는지를 살펴보며 구매하는 공산품이 되었다. 직접 만들어 먹고 싶지만, 그 또한 엄두가 안 난다. 어느새 편리함에 물들었다. 그러면서 옛 맛만 그리워하고 있는 나는 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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