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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Mar 06. 2023

(육아일기) 쉰 둥이 육아의 시작 2 - 산후우울감

산후관리서비스를 받는 2주간 나는 육아 방관자로 머물렀다.

마지막 서비스 날 바통터치를 하러 친정엄마가 오셨다.

산후관리사보다 친정엄마가 계신 것이 마음은 더 편했지만 엄마가 가시고 나면 그 후에는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또 꼬리를 물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도 아이가 울면 뛰어나가야 했고 아이의 토한 냄새와 흔적이 여기저기 묻은 옷 그대로 저녁이 되어서야 세수도 하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친정엄마가 외손자를 봐주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 나는 슬퍼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엄마가 장 보러 나간 사이 아이를 안고 햇살이 가득한 밖을 내다보며 마음을 다져봤지만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온갖 슬픔과 걱정,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엄습해 왔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고마운데 가라는 시집 안 가고 못되게 굴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칠순이 넘은 엄마가 마흔이 넘은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고 청소하는 뒷모습을 보니 짠하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 또 눈물이 났다.

이제는 내 자식을 키우느라 나를 키워준 엄마한테 갚을 길이 없겠구나 싶어서 더 슬펐다.

엄마는 애 키우려면 그렇게 약해빠져서 어쩌냐며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고 하셨다.

애가 자는 동안 바쁘게 움직여 살림하고 짬짬이 자야 된다고도 하셨다.

새싹이는 우리 집에 찾아온 기적 같은 아이라고 연신 얘기했는데 나는 기적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고 나면 남편이 출산휴가를 쓸 예정이었지만 나의 걱정과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인데 내가 몰라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낮잠 안 자고 칭얼거리는 게 또는 잠을 많이 자는 게 괜찮은 건지, 아이를 안는 방법, 트림을 시키는 자세 등등

아무것도 모르겠고 나를 믿을 수가 없고 매 순간이 당혹스럽고 두려웠다.

막연한 두려움은 공포가 되었고 커진 공포심은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아 내가 지금 산후우울증이구나!' 싶었을 때가 출산 50일경이었다.


엄마를 계속 붙잡을 수 없어서 3주쯤 지났을 때 내려가시게 했다.

하지만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약해진 내 허리가 말썽을 부렸다.

아이를 안고 들었던 게 무리가 됐었는지 허리를 굽히는 모든 자세가 너무 힘들었다.

허리가 아프니 자다가 일어나는 것조차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몸이 불편하니 멘털은 더 무너졌다.


육아에는 은퇴가 없다는데 50일 만에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걱정스럽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더욱 나를 조여왔다.

육아에 맞지 않은 사람인데 무턱대고 시험관을 해서 아이를 낳았나 싶었고 아이가 그렇게 예뻐 보이지가 않았고 내가 모성애가 없는 건가 같은 생각이 악순환했다.

그냥 애 낳지 말고 편하게 살걸 그랬나, 예전 같으면 낮잠 자고 예능이나 보던 시간에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집안일을 해도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예전에는 여유로움으로 감출 수 있었던 내 약점과 단점이 드러났다.

두 달째 계속되는 두드러기, 거품뇨, 요통은 육체적 약점이었고 나를 믿지 못하는 의심과 걱정, 실수하지 않으려는 완벽함과 예민함은 정신적 약점이었다.

어느 정도 내려놓고 중요한 것만 생각하고 쓸데없는 두려움 따윈 개나 줘버려야 하는 데 모든 것을 잡고 끙끙대고 있으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생각은 자꾸만 분산되었다.

심지어 아이에게 청력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다 남편이 기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걱정하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주변에선 애를 돌봐줄 사람을 써서 여유를 가지라고 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을지, 사람을 쓰면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힘들었다.


약을 지으러 간 한의원에서 당신은 지금 중환자나 다름없으니 매일 30분씩 좋은 말씀 들으면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살살 운동하며 회복해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호르몬이 정상이 아니니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며 이미 좋은 엄마라고도 했다.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알아봐 주는 그 한의사 에서 엉엉 울었다.


한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하는 걱정들은 때가 되면 다시 열어보자는 마음으로 생각의 서랍을 만들고 하나씩 넣었다.

아침마다 좋은 말씀, 명상 같은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막연한 두려움도 지워갔다.

60일부터는 3시간 수유텀이 4시간으로 바뀌었고 아이는 생후 58일부터 고맙게도 3~4시간 길게는 5시간도 자줬다.

남편의 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는 날에 허리도 약간 회복됐다. 새벽 수유는 밤에 내가 한번 하고 출근 전에 남편이 한번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지옥 같3시간에서 4시간이 된 것만 해도 약간 해방이 되는 것 같았고 때마침 2월 말의 햇살은 이제 봄을 알려주는 듯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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