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을 낳기까지
더위가 슬며시 슬며시 다가온 하루, 평소와 다르게 잠이 쏟아졌다.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가? 하며 며칠 보냈다.
'앗! 이건??'
날씨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테스트기를 꺼내서 해 보았다. 선명한 두줄이다.
화장실에서 나 혼자 소리를 질렀다.
“와~~!!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염려와 근심의 탄성이 아니라 환희와 기쁨의 부르짖음이었다.
마흔에 가진 넷째라니. 이 얼나마 큰 축복인가!
문득 셋째를 가졌을 때가 떠올랐다.
힘겨운 경제 사정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던 나와 그런 나를 단호히 일깨웠던 남편. 그때의 우리들.
남편의 확고한 말이 다시 생각났다.
경제 상황은 눈에 띌 만큼 나아지지 않았지만
비싼 영어 유치원을 다니던 딸들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보내고,
살림을 아껴하며 큰돈걱정 없이 살아가고 아이는 어떻게든 커가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던 남편은 말만 그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더 깊어진 남편이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공원을 가고, 놀이터를 가는 등 나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경제적 책임보다는 인간적 책임을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이는 잘 큰다.
노산의 경계를 넘어서 가진 이 아이도 어떻게든 잘 클 것을 믿었다.
기형아 검사에서 27분의 1이라는 확률이 있다고 해서 며칠 낙담해 울었지만
정밀 양수 검사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을 받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태교를 했다.
남편은 여전히 아이는 선물이기에 잘 키워야 한다고 말할 것도 안다.
이제는 고민이 없다.
형편이 어려워도 소중한 아이는 부모라는 그늘 아래에서 잘 자랄 것을 믿고 있다.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남편에게 축하를 건넸다.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넷째 생겼다!”
얼굴에 미소는 그득한 채로 남편은 또 별말이 없다.
통실통실한 얼굴을 가진 넷째를 낳고 우리 부부는 딸 둘, 아들 둘의 200점짜리 부모가 되었다.
금메달보다 위는 없나?
아이가 뒤집고, 기어 다니기를 할 다음 해 1월 무렵
몸에 신호가 또 왔다.
다섯째를 가진 것이다.
기뻤고, 낳을 것이고, 잘 키울 것이라는 믿음은 확실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다섯째 임신에 대한 입단속도 했다.
넷째와 개월 수가 얼마 차이가 나지 않기도 하고
무턱대고 아무런 계획 없이 아이를 가지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까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배가 불러와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챌 때까지
우리만의 기쁨으로 간직했다.
한심함과 대책 없음으로 평가될 줄 알았던 우리의 5번째 임신은
예상과 달리 '건강 잘 챙기라, 축복한다, 복 많이 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받았다.
좀 더 빨리 말했으면 직장에서 더 신경 써 주었을 것인데 하며 미안해하시기도 했다.
저출산 시대에 애국자라며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