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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팀 Apr 24. 2024

나는 이 일을 다시 선택할 것인가?

그럼에도 MD일을 사랑하는 이유


저는 어릴 때부터 예체능을 전공했는데

막상 미대를 가보니 생각보다 시시했습니다.


좋은 학교가 아니어서?


아니요. 제 전공에서는 가장 좋은 환경이 있는 곳이어서 저는 전공 때문에 그 학교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전공 수업을 들으니 시시했습니다.

도저히 디자이너로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뭘로 먹고살지?


저는 그 고민을 1학년 재학하는 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MD라는 직업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A부터 Z까지 뭐든 것을 핸들링한다는 것이 너무나 멋져 보여서 그다음부터 MD가 되기 위해 인생 설계를 하였습니다.


우선 경영학과 전공수업도 들었습니다.(아마 제 전공수업보다 더 열심히 했을 거예요.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들은 제가 예술대학생인 것을 모를 정도였습니다.)


제 디자인 전공수업은 딱 점수받을 정도만 공부했을 정도로 경영학과, 마케팅학과 수업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막상 4학년이 되니 MD취업을 하는데  온갖 자격증이 필요했습니다.

그때가 그래도 요즘 취업준비보다는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그렇게 아주 유명한 G사 주얼리회사에 입사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학원 진로 고민이 저를 붙잡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그 순간을 가장 후회합니다. 그 회사가 꿈의 직장이라고 소문이 나던 곳이거든요.

지금은?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아무튼 취업에 성공하는 순간 저는 방향을 또 틀었습니다. 패션머천다이징 석사과정이 있는 학교 중에 가장 좋은 학교 패션머천다이징과 석사과정을 밟습니다.


그런데 또 대학원 가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을 알려주더라고요.

정말 많이 후회했지만 그래도 그 학력으로 지금까지 잘 먹고살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첫 직장인 11번가에 입사하였습니다.


거기서 참 좋은 선배들을 만나 좋은 MD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엄청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그때도 멋졌지만 지금은 더 멋져진 선배들 덕분에 신입이 배워야 하는 교육과 인성을 잘 배웠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살짝만 풀게요.

한 번은 대형사고를 치는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브랜드 캐주얼 파트 담당이었는데 그날 원데이특가로 폴햄 면바지 특가 5천 원으로 판매 오픈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MD가 특가 세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담당자가 직접 가격 세팅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야근에 긴장 속에서 있다 보니 멍한 정신으로 대형 사고를 쳐버렸습니다.


5천 원이어야 하는데 '0'을 하나 빼먹고 500원에 폴햄 면바지를 판매오픈했거든요. 오픈한 지 30분 됐을 때 발견하고 바로 판매중지를 했는데 그 사이에 100장이 팔려버렸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


바로 팀장님께 불호령이 떨어졌고 저는 머리가 새하얗게 돼서 어떡하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직속 선배가 부드럽게 진정시키며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CS팀에 직접 취소 콜 요청을 하고 팀장님께 일일이 경과보고를 해주었습니다.


보통은 호통치고 직접 취소콜하라고 했을 텐데 제가 가장 놀랐을 거라며 우선 다른 일을 시키시고 정신 차릴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CS부서와 반반 나눠서 취소콜을 직접 처리해 주셨습니다.

잘 마무리되는 줄 알았지만 30건이 고객이 취소거절을 해서 결국 그 가격에 출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 경위서를 썼고 그 뒤로 더욱 꼼꼼한 MD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좋은 선배님들 덕으로 잘 다니다가 기획 MD가 되고 싶어 퇴사하고 첫 제조사 회사였던 신발회사로 이직하였습니다.


신발 제조과정도 모르고 평소에 신발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서 정말 맨땅에 헤딩하며 일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모든 것을 해본 것 같습니다. 중국 출장도 2달에 한 번씩 가고 잘 알지도 못했던 신발 박사가 되고 그렇게 울고 웃고 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4개 정도 더 패션회사를 돌아다니며 계속 맨땅에 헤딩하며 일을 배우고 ‘일당백 MD’로 성장하였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이 공장사고로 엎어지기도 하고 잘 만들어서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매출이 저조한 적도 있고 무서운 중국땅에 혼자 떨어져서 공장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렇게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성장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패션업에 다양한 부서의 직업이 있지만 저는 이 MD일이 가장 재밌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이 일을 선택해서 힘들지만 잘 버텨서 멋진 MD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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