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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H Feb 24. 2021

멀지만 가까운 사이

이방인의 친구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나 커피 한잔을 내리고 남편의 점심인 계란 프라이 2개 반을 만들었다.

건강한 식습관이 생활화된 남편의 점심 도시락은 매우 간단하다.

계란 2개에 노른자 없는 흰자 하나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한 반찬.


 그를 보내고 나 혼자만의 브런치 타임을 갖는다. 잔뜩 사놓은 아보카도를 없애야 되기 때문에 요즘 나의 아침은 무조건 아보카도와 계란이 포함된 토스트다. 오전 11시에 전화 인터뷰가 잡혀 있어서, 아침 식사를 하며 인터뷰 준비를 했다. 사실 지금 시험 준비에 바쁘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지는 아직 완전히 고치지 못한 못난 성격 때문에 어느새 또 몇 개의 회사에 지원서를 넣은 상태다. 미국은 1차 서류, 2차 폰 인터뷰, 3차 면접 거의 이런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코로나 때문에 3차 면접은 스카이프로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스피킹 공부를 해야 하기도 하고, 인터뷰 보는 내내 영어를 쓸 수 있으니 혹여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공짜로 영어 수업했다'라고 생각하고 쉽게 털어내는 편이다. 한국에서 초중고대+석사까지 다 나온 내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 포지션에 취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몇몇 회사에 취업해서 다닌 이력이 있으니 이를 위안으로 삼아야지.


 오전에 인터뷰를 끝내고, 그래도 '오늘은 뭔가 하나를 해냈구나' 하는 기쁨이 몰려온다. 집에서 노는 백조는 이런 작은 일 하나에도 큰 성취감을 느낀다. 다이어리 정리를 하고 영어 강의를 듣고 오늘의 할 일에 적어놓은 것들을 차근히 해나가던 중, 리스트 중 하나인 '스콘 만들기'를 하려던 찰나 시계를 보니 벌써 2시다. 어느새 배꼽시계가 울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밥하기 귀찮아서 라면을 꺼내 점심으로 먹었다. 밥 먹는 시간을 유일한 티비시청 시간으로 정했으니, 점심을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그러 던 중, 미국에 사는 나와 처지가 같은(미국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미국에 살게 된 토종 한국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오랜만에 통화를 하자는 친구의 말에 영상통화를 했다.


 내가 3개월 동안 한국에 있는 사이에 힘든 일이 많았다는 친구. 표정은 밝았으나 말하는 투에서 그동안의 힘듦이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내가 건네는 위로가 혹시 그 친구에겐 상처가 되지 않을까. 많은 생각에 최대한 좋은 답을 주려 노력했지만 나의 쓸모없는 이야기가 섞인 영양가 없는 말만 뱉어낸 것 같다.


 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건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다. 타지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우리. 친구와 가족 없이 오직 남편만 바라보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지내는 이방인들. 우리의 처지가 그러했다. 처음 친해지면서 '우리는 한국에서 살았다면 더 큰 꿈을 펼쳤으리라, 더 활짝 날아갔으리라'라는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를 응원하며 열정적으로 미래 계획을 짜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처음에는 회사 동료로 알게 되었으나 그때는 서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고 오히려 내가 퇴사한 이후에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


 똑 부러지고 글 솜씨가 좋은 그녀는 내가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친구 중 한 명이다. 너무 예쁜 미소를 가졌고, 글을 굉장히 잘 써서 내가 매일 새로운 글을 써 달라고 조르는 친구다.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기 전에는 마치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 마냥, 옷매무새를 한번 더 확인하고 메이크업에도 신경 쓰곤 했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고 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녀 덕분에 나 또한 이곳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다.


 내가 재작년에  일기에 우리의 사이가 '멀고도 가까운 사이'라고 써놨었는데 아마도 자주 못하는 연락 때문인  같다. 통하는  많지만, 연락을 뜸하게 주고 받았었기에 친구가 힘든 시간을 겪는 동안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연락할 겨를이 없었을 테지만, 힘들  나를 바로 찾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종지처럼 작은  마음에 적잖이 놀란다.


 20대의 인간관계 대홍수 시기를 거쳐 30대가 되면서,

맵고 짠 인간관계만 찾아다니던 나는 이제는 구수한 누룽지 같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

처음엔 조금 싱겁더라도 만날수록 진해지는 사이.

나의 취향을 공유하고,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이.

상대방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아픔을 자기 위안으로 삼지 않는 사이.


 전에는 매일 연락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친구 사이에 필수적인 요소라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가 진정 친구가 아닌가 싶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 공간을 만들어 그 작은 공간만큼은 나만을 위해 남겨두고, 그 외에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이.


 나는 상대와 얼마 만큼의 공간을 나눌  있는지,  상대방은 나와 어느 정도의 공간을 공유하려 하는지 파악하려면  많은 시간이 흐르겠지만, 멀지만 가까운 사이를 천천히 오래오래 지속해 나가야지.

나의 누룽지가 되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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