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윤 Sep 08. 2020

급기야 연기를 배운다 2

취미가 관객인 사람의 연기 체험기 

연기 모임은 총 6회로 진행된다. 장소는 북촌의 어느 옥탑방.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아늑했다. 특히 옥탑방까지 올라가는 길과 계단은 정말 다양한 재료로 이어져 있고 지그재그로 배치된 다른 가정집도 있다. 헛디딜까 조심히 계단을 오르는데 집중하다 고개를 들면 별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받기도 한다. 머리가 부딪힐까 자세를 낮추고 마지막 계단을 앞두면 어느새 낮은 천장은 사라지고 탁 트인 북촌 풍경이 보인다. 이 모임 장소를 만든 곳은 CABINET이라는 소모임 단체고 각기 다른 주제의 ROOM이라는 개념으로 클래스를 운영한다. 다른 모임도 참여할 기회가 한두 번 있었지만 여가에서 다른 시간을 빼 마련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두 번째 모임에서 드디어 희곡을 읽게 됐다. 미리 단체 톡방을 이용해 의견을 취합하여 ⟪베르나르다 알바⟫와 ⟪리어 왕⟫을 읽기로 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우란 2경에서 한 번 공연됐던 작품으로 전원 여자 배우로 진행되었고, 다음 해 재연을 앞두고 있다. 초연 당시 매진 행렬에 많은 연뮤 덕이 표를 구하려 발을 구르기도 했다. 스페인 시골을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당시에도 매우 파격적인 내용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예전에 진행되던 극을 한 번 보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연뮤덕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극에 대해 들뜬 의견을 내세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이 극을 모르고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과 정보만으로 이 희곡을 분석하겠다는 다짐을 해댔다.


처음 시작은 인물 상관없이 돌아가며 대본을 읽었다. 앙구스티아스의 대사를 읽기도 하고 마르티리오의 대사를 읽기도 했다. 이렇게 돌림판을 돌리듯 인물의 대사를 읽다 보니 막달레나의 대사가 새롭게 보였다. 공연을 볼 때부터 좋아했던 인물이기도 한데, 직접 대사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내가 봤던 막달레나와 또 다른 성격이 보였다. 물론 이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막달레나는 연출된 공연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의 해석이 들어간 막달레나를 보면서 기억해둔 성격이었고, 지금은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는 대본 위의 막달레나란 인물의 대사만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바퀴가 돈 뒤 각자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했고, 이어서 원하는 캐릭터의 대사를 읽었다. 나는 고민하다 막달레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기라곤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대사를 읽을 뿐이었다. 다만 이번엔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가 더 눈에 띄었다. 또 한 차례 리딩이 끝났고, 느낀 점을 나누는데 내가 읽은 막달레나는 좀 더 무섭고, 차가운 느낌이었다고 한다. 인원이 많아 조를 나눠 리딩을 진행했는데 다른 조의 막달레나와 느낌이 달랐다고 한다. 신기했다. 눈치게임을 하듯 막달레나 차례에서 손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잠시 동안 막달레나가 되었다.


저번 시간엔 그저 긴장해 나를 감추는데 급급했지만 공간과 분위기에 적응하자 훨씬 편했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희곡 속 인물과 인물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어떤 관계가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인물을 통해 표현된 나를 느끼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의 배우들은 매번 새로운 자신들을 채우고 있는 걸까. 연기에 대한 일부의 일부만을 경험했음에도 즐겁고 설레고 어딘가 뿌듯한 느낌은 자기 전까지 계속됐고, 잠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급기야 연기를 배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