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윤 Oct 12. 2020

급기야 연기를 배운다 4

취미가 관객인 사람의 연기 체험기

처음 연기 클래스를 신청할 때의 마음은 학원처럼 작은 책상에서 각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직접 리딩과 함께 간단한 연기까지 하는 5분 리딩으로 마무리를 하게 됐다. 5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란 것을 난 처음 깨달았다. 1분 플랭크 다음으로 긴 시간일 것이다. 다음 클래스로 가기 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단톡방을 들여다보다 어느새 팀이 생겨버렸다. 갑자기 네 명으로 구성된 작은아씨들 팀이 탄생했다.


이 클래스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일체 말하지 않고 닉네임으로 지칭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항상 각자 자리에서 리딩만 해왔던 터라 같은 클래스 수업을 듣고 있으면서도 아직 닉네임도 외우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호스트와 이야기나누는 것이 아닌 같은 모임 사람들과 처음 나누는 대화였다. 조금 어색하지만 얼굴은 익힌 뒤였고 평소에 발표하는 걸 들은 덕분에 금방 한 팀이 되어 대화를 나눴다.


혼자 리딩을 하던 것과 다같이 리딩을 하는 것은 또 경우가 달랐다. 내가 생각한 메그는 이 대사를 말하며 베스를 보고 있다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각자 캐릭터를 정하고(내가 메그라니) 함께 각자가 생각한 동선을 맞췄다. 그럴듯한 구성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5분 분량의 대사도 외워야 했고 미니 리딩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업 외에 추가 연습을 하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이 과정은 마치 조별학습 같았다. 모두 생각하는 지점이 달랐는데 그걸 취합하는 리더 격의 사람이 없었다. 호스트가 정리해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추가 연습엔 호스트가 없었다. 오로지 우리 팀뿐이었다. 처음 이야기한 동선을 직접 해보고, 아니다 싶거나 좀 더 나은 동작이 생각나면 다시 반영하기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 과정 자체가 장면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매그는 큰 언니로 허영심이 약간 있다고 표현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팀 사람이 생각한 성격은 또 달랐다. 매그가 앉아 동생들을 부르는 말투 하나만으로도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은아씨들팀. 하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불안했다. 고민하다 우리가 연습한 내용을 녹음하여 호스트님께 확인을 부탁드렸다. 덜덜 떨며 보냈는데 따뜻한 답변이 돌아왔다. 무한으로 긍정적인 피드백과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답신에 불안함이 줄었다. 실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우가 보기엔 어설픔의 극치일텐데 좋은 점만 봐주는 것도 도움이 됐지만 든든하단 마음이 컸다. 처음 시작하는 분야에선 아무래도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는데 혼자 허허벌판을 헤매지 않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아! 이렇게 공연날이 다가왔다.

작가의 이전글 급기야 연기를 배운다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