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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15. 2023

펜션 사장이 되고 싶은 나정만 씨 - 1

“펜션 사장하면 여유롭게 화초나 가꾸고, 손님들이랑 기타 치고 막걸리나 마시면서 살 것 같죠? 다들 그런 줄 알지. 겉으로는 참 한가하고 편안해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노예예요. 노예. 남들 다 휴가 갈 때 나는 일해야지, 남들 퇴근해서 쉬는 시간에 저는 5분 대기조예요. 어찌나 전화를 해대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변기 뚫어 달라고 연락 오고. 보일러 전원은 꺼 놓고 온수 안 나온다고 전화 오고, 어떤 사람들은 새벽 한 시에 집에 나방이 날아다닌다고 연락이 온다니까. 아, 그러려면 아파트에 있던가, 호텔을 가야지. 왜 이 시골 동네에 방을 잡냐고. 아유, 사람 미쳐요. 미쳐. 나는 핸드폰 벨 소리가 제일 무섭다니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일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아내는 고충 상담 센터 직원처럼 두 손을 모으고 펜션 주인의 넋두리를 경청한다. 고개를 끄덕였다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가 한 번씩 내 쪽을 보며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애초에 제주도에 내려올 때 우리가 합의했던 계획이 전부 나 만의 꿈이었다는 듯이.  




우리 가족은 1년 전 제주에 내려왔다. 서울에 살던 집을 세 놓고, 제주에 마당이 딸린 작은 집을 연세로 얻어 이사했다. 돌담이 있는 구옥은 아니고, 새로 지은 20평대 타운하우스다. 사실 나의 로망은 바닷가 돌집이었다. 아내의 로망도 나와 같은 줄 알았다. 제주도에 여행을 올 때마다 돌집을 개조한 작은 카페, 민박집, 식당 등을 다녔는데, 그때 아내는 ‘우리도 언젠가 이런 거 하나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고른 집을 보여주자 아내는 기겁을 했다. “당신 정말 왜 이래? 여기서 애를 어떻게 키워? 욕실도 집 밖에 있고, 수납할 공간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 살림을 다 어떻게 하라고?”


예상치 못한 아내의 분노에 나만큼 놀랐는지, 천정에서 지네 한 마리가 뚝 떨어졌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쪼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마당 한 구석 빈 개집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들은 눈치도 없이 소리쳤다. “엄마, 우리 이 집에 살면 강아지 키울 수 있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했다. 집이 좀 맘에 안 들기로서니 이게 서럽게 울 일인가? 물론, 아파트만 살던 아내에게는 이런 옛날 집이 낯설 수 있다. 욕실이 밖에 있고, 주방도 좁고, 수납장이나 붙박이장이 없으니 불편할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리모델링된 집이었다. 페인트도 새로 했고, 도배와 장판도 최근에 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도시생활의 잔재 - 꼭 필요하지 않은 짐들을 정리하고 단출하게 살고 싶었다. 옛날 집의 불편쯤이야 조금씩 손 봐가며 살면 된다. 무엇보다 연 700만 원이면 임대료도 시세와 비교해 엄청 저렴한 편이다. 당분간 고정 수입이 없을 테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퇴직금을 까먹어야 할 텐데 집세로 한 달에 100만 원씩 지출할 수는 없었다.


집 문제를 놓고 한동안 아내와 싸웠다. 아내는 차라리 아파트나 빌라를 얻자고 했고, 나는 주택을 고집했다. 아내는 그러려면 제주도에 당신 혼자 살라고 소리쳤고, 나는 아내의 극단적인 태도에 실망해 한동안 말문을 닫고 지냈다. 결국 우리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신축 타운하우스를 얻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해 발견한 집이었다.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집 바로 옆에 귤밭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불과 3km 거리였다. 구옥에 비해 연세가 훨씬 비쌌지만 아내와 아이를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아내는 단지 안에 아들 정우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흔쾌히 제주행을 택해 준 아내에게 고마웠다.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아내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만했으면 됐어. 언젠가 그만둬야 하면, 빨리 자기 일을 시작하는 게 낫지. 그럼, 회사 그만두고 뭐 할 건데?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하고 싶은 일?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를 했고, 성인이 되었으니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했다.  그 대가로 나는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삶을 얻었다. 날씬하고 똑똑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낳았다. 대출이 많이 들어있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지만 서울에 내 집을 마련했고, 매달 부모님 용돈을 거르지 않고 드렸다.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했고, 사치스럽지 않은 아내였지만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옷과 가방은 구비해 줄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숙취에 시달리며 회사로 향하는 길.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질꼬질한 지하철 손잡이를 움켜잡은 내 손등의 파란 힘줄을 노려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겹다. 씨발.” 옆에 있던 사람이 놀란 눈으로 나를 흠칫 쳐다봤다. 혼잣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소리 내어 말했나 보다.  


그날 나는 빈 속에 커피를 세 잔쯤 마시며 주간 보고서를 작성했다. 점심시간에 나가 네 시간째 들어오지 않는 강 부장을 기다리며, 최대리의 새로운 사업계획을 들어주다 보니 얼추 퇴근시간이 됐다. 그즈음 강 부장이 하루종일 바빴다는 듯한 걸음걸이로 쓰윽 나타났다. 나는 ‘보고서 전송해 두었습니다.’라고 알리며, 제발 지금 읽고 회의하자고 하는 일은 없기를 기원했다. 다행히 그는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끝나고 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종종 나는 그가 업무 시간 중에 어디선가 듣고 온 고급 주식 정보를 들어주기 위해 밥을 산다. 젊은 직원이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강 부장을 나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 가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밥을 먹고 나면 술은 얻어먹을 수 있으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때운다. 그렇게 매일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10년이 흘렀다. 나는 그 세월만큼 늘어난 카드 씀씀이를 메꾸느라 점점 더 회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약속은 없는데, 오늘은 그냥 쉬겠습니다.”

뻔한 핑계에 속은 적은 많지만, 대 놓고 거절은 당해본 적 없는 강 부장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러게 술 좀 엔간히 마셔. 근데, 아직 삽 십 대가 그렇게 빌빌하나?”


단단히 삐진 강 부장을 뒤로하고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말벡 와인 한 병을 사서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그날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 대신 생활비를 벌겠다거나 부모님 용돈을 드리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건 곧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생활에 지장은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 인스타그램 @goyohan_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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