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빠는 올해 81세다. 10년 전부터 콜레스테롤, 혈압약을 복용 중이고 5년 전부터 통풍이 시작되었다. 3년 전 임플란트를 하다가 구완와사-얼굴 한쪽이 마비되는 증상이 와서 집에만 계시더니 부쩍 늙어버렸다.
2년 전 전립선 암 3기 판정을 받으셨다. 이미 방광 부위와 림프절 전이가 진행되어 수술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해서, 호르몬 치료만 받고 계신다.
작년에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눈 위 근육이 약해져 눈꺼풀을 작은 밴드로 당겨 붙이고 생활하시다가, 하는 김에 안검하수 시술도 하셨다. 의사가 분명히, 티 안 나게 자연스러울 거라 했는데 아무래도 수술이 잘 못 된 것 같다. 쌍꺼풀이 너무 커서 눈이 하나 더 붙은 것 같다. 아빠는 상심에 빠졌다. 가족들은 모두 부기만 빠지면 자연스러워질 거라 위안하고 있는데, 그게 벌써 1년째다. 한두 달에 한 번 친정에 가는 나는 "어! 부기가 많이 빠졌네!"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아빠와 눈을 마주치기 어렵다.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날 것 같아서.
친정 엄마는 78세다. 역시 콜레스테롤, 혈압약을 복용 중이시다. 여기저기 늘 아픈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무릎 아프다면서 뼈 주사까지 맞아가며 산에 밤 따러 다니시던 엄마는 급기야 2년 전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다. 다행히 재활이 잘 돼서 좀 살만한가 싶었는데, 요 근래 한 두 달 사이 부쩍 기운이 없어졌다. 지난주, 친정에 가보니 하루의 반을 아빠와 함께 누워 티브이만 보신다. 몇 달 전부터는 오른쪽 귀가 안 들린다 하신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베개를 베고 누워있으면 전화 벨소리를 못 듣는다.
2년 전, 남편을 하늘로 보낸 83세 시어머니는 지난주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올해 초에는 귀 달팽이관 수술을 하셨고, 그 사이 장 보러 가다 넘어지셔서 어깨와 치아에 골절상을 입으셨다. 골절 사고는 1~2년에 한 번씩은 일어나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중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수술을 했지만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아, 하루 종일 자막이 있는 TV를 보셨는데, 엊그제 백내장 수술 후로 화면이 두 개로 보인다고 하신다. 친구도 없는데 TV도 못 보시게 됐다. 아파트 노인정이라도 가셨으면 좋겠는데, 싫으시단다. 텃세가 있고, 귀도 잘 안 들려서.
상황이 이렇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푹 가라앉는다. 그나마 지금은 장도 보고, 밥도 하고, 혼자 샤워도 하실 수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시면 어쩌나? 혼자 계시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하다.
그렇다고 선뜻 같이 살자는 말은 못 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삼시 세 끼를 차리고,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잔소리와 참견을 주어 삼키며 매일매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집에 울려 퍼지는 티브이 소리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어머님을 두고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그 생활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다는 것. 내가 노인이 될 때 까지, 노인을 모셔야 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내가 부모님의 존재를 지긋지긋해하게 될거라는 것.
물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수도 있다. 선뜻 모실 자신은 없지만, 나 몰라라 할 자신은 더 없으니까. 이미 수많은 40~60대가 내가 상상하는 상황을 현실로 겪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가 이미 도래했고,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데, 시설에 가기는 애매하고 실버타운에 들어갈 상황은 안되는 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뼘 양생 : K 장녀의 독박 돌봄기>를 쓴 이희경 작가는 그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며칠 전 받은 부고 속 고인의 연세는 96세였다. 얼마 전 돌아가신 후배 아버지는 99세였다. 80대 중반인 나의 어머니도 지금 컨디션이라면 족히 십 년은 훨씬 넘게 사실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한편, 내가 칠십이 넘어서까지 어머니를 돌보면서 이 집 방 한 칸에서 늙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 동시에 이런 마음을 들켜 버릴까 더욱 두렵다. 내가 겪은 지난 9년간의 부모 돌봄은 스릴러나 호러에 가까웠는데 나에게는 이것을 명랑 홈드라마로 바꿀 비책이 없다. 요즘 어머니는 다시 말갛게 웃으신다.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매일매일 돌봄 '존버'중이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아아, 두렵다. 나도 K장녀이기에, 겪어보지 않아도 그 마음을 구구절절 알 것 같다.
내 여생을 갈아 넣지 않고도 부모님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부모님이 살아계신 걸 형벌로 여기지 않게 할 방법은 없을까? 나 또한 늙었을 때 자식에게 기대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요즘은 그걸 고심 중이다.
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