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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슈팅스타 Feb 12. 2022

하와이에서 백 가지 직업에 도전하기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한참 잡지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던 삼십 대 중반, 라스베이거스와 하와이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 출장에서 알게 된 인연이 바로 지금 내 남편이다. 남편은 가이드로 우리 촬영팀을 인솔해주었다. 출장 후 5개월가량 남편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해가 바뀌고 그의 제안으로 휴가차 들렀던 두 번째 하와이에서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일 년간의 연애 후 결혼을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금껏 쌓아온 너의 소중한 커리어를 버리기 아깝지 않으냐'는 말이었다. 당시 잡지 기자였던 나는 내 일을 너무나 사랑했다. 남들은 힘들다는 밤샘 야근, 매일 같이 유명인과 수많은 일반인을 섭외하던 일상들, 휴대폰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며 아무리 충전을 해도 부족했던 홍보 담당자와의 통화들 그 모든 것이 진심으로 내가 살아있는 이유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 삶을 통째로 놓고 봤을 때 배우자를 만나는 일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와이에 살고 있다.

처음에는 하와이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대견하다 생각했다. 여행사에 일하고 있는 남편은 프리랜서였다. 월급이 아닌, 주급으로 본인이 일한 만큼 버는 직업이라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매달 고정 월급을 받으며 생활한 나에게 들쑥날쑥한 주급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직장인 일 때도 나의 경제관념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와이에서 역시 남편이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대로, 또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주는 생활비에 맞춰서 썼다. 그러면서 가장 처음 한 일은 '여행책 쓰기'. 잡지 기자 시절 알던 후배가 단행본 출판사로 이직하면서 나에게 하와이 여행책을 써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당시 이미 '런던 프리'라는 런던에서 1년 동안 가난한 나의 공짜 일상들을 담아낸 에세이를 냈던 이후라 '작가병'이 좀 남아있었다. 에세이는 좋아도, 여행책은 싫었다. 그러나 삶이 어디 내 뜻대로만 흐를까! 나는 하와이 여행책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신혼 시절 남편과 마우이, 빅아일랜드, 카우아이, 라나이 등을 다니며 2년에 걸쳐 '프렌즈 하와이'라는 여행책을 완성했다. 여행 작가, 이게 하와이에서 갖은 내 첫 직업이다. 

여행 작가를 하다 보니 당연히 하와이 곳곳에 숨은 명소를 남들보다 더 잘 알 수 있었고, 빅아일랜드 코나 거리의 어디 커피가 더 맛있는지, 마우이에서 초밥은 어디가 맛있는지 누가 물으면 술술 나왔다. 이때쯤 한국 패션 잡지사에서 거의 매달 하와이로 촬영을 왔다. 유명한 영화배우부터 당시 뜨고 있던 걸그룹까지 하와이에서 화보 촬영을 계획한 기자들은 촬영 시기가 잡히면 바로 나에게 연락해 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요청했다. 호텔 섭외부터 촬영 장소 섭외, 차량과 가이드 섭외까지. 심지어 단독 빌라에서 머물며 촬영한 유명 배우의 요청에 따라 난생처음 외국인 객실 청소원을 구하는 일까지. 남편과 호흡을 맞춰 한 촬영 코디네이터는 내가 젤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생각지도 않게 한국에서 연락 온 기자들 덕분에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되었다. 

당시 허니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신혼여행지에 늘 하와이와 몰디브가 1,2위를 다투었다. 그만큼 하와이에는 눈에서 꿀 떨어지는 허니문들이 가득했다. 남편은 나에게 스냅 작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기자 시절 꼭 갖고 싶던 카메라가 있었는데 내가 스냅 작가를 하면 그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스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미 잡지 기자 때 다양한 패션 화보를 진행했던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또 평소 촬영을 좋아했기 때문에 캐논의 EOS 5D MARK 3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허니문 스냅을 촬영하는 일이야 어려울 것이 없었다. 친한 후배 포토그래퍼를 하와이로 초빙해 포토샵과 스냅 촬영에 필요한 필수 코스들을 익힌 뒤 나는 와이키키 필드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렸으나 이내 곳곳에서 마주치는 동료 스냅 작가들과 인사를 하며 나는 와이키키에서 셀 수 없는 수의 셔터를 눌렀다. 그 사이 임신을 해 만삭의 몸으로도 촬영을 했고, 아이를 낳고 한 두 달 지나 일터로 복귀했다. 나를 찾는 허니문들이 늘어나고, 수입이 좋아지면서 나는 꿈의 카메라 캐논 EOS 1D X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직업, 포토그래퍼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계속 사진만 찍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객의 발길이 끊기고, 나는 손발이 묶인 채로 생활했다. 촬영하고 싶은데, 촬영할 대상이 없었다. 간혹 하와이 현지인들의 돌잔치나 본토에서 놀러 온 여행객들의 스냅을 촬영하긴 했으나 촬영 의뢰 수가 많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 캠핑과 트래킹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e-북을 통해 한국의 신간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코로나 생활이 2년에 가까워올 때 즈음 친한 언니가 부동산 어시스트일을 배워두라고 했다. 정확한 명칭은 트랜젝션 코디네이터(Transaction coordinator )라고, 부동산 중개인의 고객이 집을 구매하거나 매매할 때 필요한 서류들을 타임 라인에 맞춰 준비해 주는 일이었다. 해외 오래 산 결과, 무엇이든 일단 배워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생각에 개인 레슨을 들었다. 그 언니는 리얼터인 동시에 한국에서 안식년을 맞아 하와이에 방문한 이들의 정착 서비스도 도왔는데, 나에게 인터넷 연결이나 고객 자녀들의 초등학교 등록 등의 일도 맡겼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하와이 살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들은 스스로 한 덕분에 현재 나는 부동산 트랜젝션 코디네이터와 하와이 정착 서비스를 동시에 하고 있다. 

위의 일들은 실제 내가 경험한 것들이고 중간에 틈이 날 때마다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베이커리를 오픈할 생각도 했고, 방학 때마다 단기로 하와이로 여행 오는 아이들의 키즈 캠프 코디네이터도 계획했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베네핏'좋은 직장이 최고라는 말에 우체국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백 가지의 직업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호텔리어에도 도전, 최근에는 호텔 홈페이지를 찾아 레쥬메를 업로드하고 있다. 높은 하와이 물가 때문인지 주위에 투잡을 뛰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니까.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상관없다. 직원으로 채용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나이 들어서 '이제는 도전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한국에서였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자신이 없다.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해보겠다는 열정을 갖기도 전에 스스로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 하와이에 놀러 왔을 때,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무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런 분들을 보면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원하면 일을 도전할 수 있는 곳, 하와이여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토 다른 주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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