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혼밥이다. 혼밥? 그게 뭐 특별해? 혼밥은 물론 혼술까지도 이질감 없는 시대에 갑자기 혼밥 타령? 하지만 나는 진짜 혼밥 하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들 옆에는 작지만 똑똑하고 재치 있고 재능 있는 친구가 늘 함께 있었다. 나도 몇 번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었는데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었지만 혼자 앉아 있는 식탁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다 이 친구 '스마트폰' 덕분이었다.
주말 스타벅스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다들 손에 이것 하나씩을 들고 있다. 연인들의 대화 중에서 수시로 이것이 끼어든다. 새삼 신기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광경이다. 이를 두고 스마트폰 중독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거나 '나 꼰대요'라고 떠들어대는 것 일 수도 있다.
김영하 작가가 2014년 출간한 에세이, <보다>에 언급된 '폰 스택 게임'이 떠올랐다. '폰 스택 게임'은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할 때, 모인 사람들의 핸드폰을 테이블 가운데 쌓아놓고는 먼저 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 규칙이라고 한다. 게임에 참여한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해 봤다. 스마튼폰에서 온전히 무심한 채 대화에 집중할 수 있을까? 평소 나는 한시도 핸드폰의 작은 진동과 울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도 다시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 잠금을 풀 때까지 내 의식의 많은 부분은 그것으로 쏠려있을 것 같다.
집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폰스택 게임'이 떠올라 나도 한번 해보자 핸드폰을 저만치 멀리 놓아뒀다. 오늘은 정말로 혼밥이다. 티브이도 노트북도 끄고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은 쳐다보지도 말자.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반찬을 꺼내고 달걀 두 개를 부쳐 식탁에 앉는다. 적막감에 휩싸인다. 아침부터 집에 혼자 있었지만 비로소 오늘 처음으로 혼자 있구나. 실로 오랜만에 '혼자'먹는 밥이다.
습관처럼 핸드폰 잠금을 풀고 싶다. 특별히 올 연락도 없으면서 카톡도 한 번 열어보고 싶다. 뻔한 신문 기사지만 눈팅이라도 한 번 해야 하는데, 주식 창도 한 번 열어보고 네이버 카페에잠깐 기웃거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 모두 별 거 아닌데, 별거 아닌 것들을 못하니 손이 근질거린다.
몇 해 전 6학년 담임을 했었는데 하도 자유시간을 달라고 성화길래 30분 운동장에 풀어 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셀카를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심심하다며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심심해요. 할 게 없어요"
"셀카 좀 찍어도 돼요?"
"뭐야, 자유시간 노래를 부르더니?"
무방비 상태로 주어진 자유 시간에 아이들 몸이 베베 꼬인다. 이왕 자유시간을 줬으니 즐겁게 보내라고 마지못해 사진 찍기를 허락했다. 아이들의 시간에 꽃이 폈다. 손에 든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겐 햇살이고 바람이고 비인가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면서 밥 먹을 때조차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나, 핸드폰 없이는 친구들과 노는 방법도 모르는 6학년. 둘 다 큰일이긴 마찬가지다. 김영하는 이런 현실을 엄혹하다고 표현했다. 우리의 시간을 애플과 삼성이 만든 스마트 폰에 빼앗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양상이 부자와 빈자에게서 달리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그가 보기에 부자와 빈자 모두 스마트 폰에 시간을 빼앗기지만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감수성이 발달한 부자들은 점점 스마트폰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자들은 제 돈으로 스마트 폰으로 사서, 그 스마트폰에 시간까지 도둑맞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편 김영하는폰 스택스 게임을 단순히 게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폰 스택 게임의 승부가 플레이어들이 가진 권력과 힘의 크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힘이 없는 자는 외부의 연락을 무시하기어렵다. 그들은 기다리는 입장이다. 그게 합격 통지든 계약서나 주문서든 썸 타는 이성으로부터의 카톡이든.
김영하가 에세이를 출간한 것은 2014년. 몇 년 사이 상황은 더 나빠진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진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 수업시간이 끝나고 교실을 나가면서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핸드폰 전원을 켜는 일이다. 스마트폰을 하기 위해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을 견뎠다는 듯이 기꺼이 스스로를 보상한다.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에 시간과 의식을 빼앗긴다.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지만 맛을 모르고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듣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같은 시간 부자들은 진짜 먹고 정말로 보고 듣고 생각할지 모른다. 시간을 지킨 사람들과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결과적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스마트폰, 이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이름을 가진 물건이 있을까. 스마트폰에 시선 빼앗기지 않기, 이것이 조금 더 스마트 해지는 길이라면 밥쯤은 조금 외롭게 먹어야 마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