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부슬 Jul 13. 2021

박수는 누구를 향해

  대학생 신분을 벗은 나는 매우 초라했다. 이렇다 할 미래의 설계도, 아니 어렴풋한 연필 스케치도 없었다. 간절함 없이 치렀던 임용고시에서 두 번 연이어 낙방했다. 더 이상 공식적으로 소속된 곳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이제는 어디에 적을 둘 것인지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과도하게 경직되게 했다. 세상은 거대하고, 그에 비해 나는 너무 작았다. 다만 졸업과 동시에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졸업장과 꽃다발? 아니, '교원자격증(사범대를 졸업하면 받는다)'이었다. (타 직종 취업 준비를 해본 일이 전무했기에 내게는 그 흔한 공인 영어 시험 점수 하나 없었다.) 나부끼는 교원자격증 한 장 들고서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곳은 학교(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뿐이었다. 하지만 자격증 하나 있다고 경력도 없는 나 같은 초짜를 팔 벌려 환영하는 학교는 없다. 십 수개의 학교에 기간제(계약직) 교사로 지원했지만 대부분은 서류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했고, 두어 군데에서 겨우 면접 볼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면접에서 나는 나의 어리숙함을 처절하게 증명해 버렸고, 면접을 보는 중에 이미 탈락을 예감했다. 씁쓸한 실패와 거절을 연거푸 들이켜 너덜너덜해진 나의 눈에 띈 것은 E 고등학교의 '과학실험보조원' 공고였다. 이 '과학실험보조원'이라는 다소 신선한(?) 직종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아는 바는 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일종의 '인턴십' 정도로 넘겨짚었다. 당시 나는 교사로서 능력치가 0에 가까웠지만, 실험을 보조하는 정도의 일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원서를 접수했다. 다행히도 얼마 안 있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울대 나오셨는데, 정말로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고, "네! 시켜만 주신다면…"과 같은 상투적인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얼떨결에 주 8시간의 수업도 맡게 되어, '과학실험보조원 + 시간강사'의 전무후무한 신분으로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실제로 두 장의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E 고등학교는 나의 첫 직장이 되었다.



  첫 출근 날의 한 장면을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종종 곱씹곤 한다.

오전에 대강당에서 개학식이 거행되었다. (입학식은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1학년을 제외한) 전교생과 전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약간씩은 긴장한 듯 보였고, 내 몸도 긴장을 머금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개학식이라면 역시 교장 선생님의 경쾌한 듯 졸린 듯 긴 듯 짧은 듯 훈화 말씀을 빼놓을 수 없다. 훈화에 뒤이은 순서는 신임 교사 소개였다. 나를 포함한 7명의 교사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한 줄로 늘어섰다. 후우. 나의 미세한 떨림은 좀 더 큰 진폭으로 변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가장 왼편에 서 계신 선생님부터 차례로 소개해 주셨다. 나는 제일 오른편에 서 있었다.

  "고양이 선생님, 담당 과목은 영어, 집사대 나오셨습니다."

  경력 10년의 기간제 교사 고양이 선생님은 이런 종류의 소개가 낯설지 않다는 듯 한 발 앞으로 성큼 나가 꾸벅 인사를 했고, 학생들은 인사에 화답해 박수를 쳤다.

  "도마뱀 선생님, 담당 과목은 수학, 목돌대 나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사와 박수가 이어졌다.

  뒤이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선생님의 이름, 담당 과목, 출신 대학이 커다란 대강당에 쩌렁쩌렁 '커밍아웃' 되었고, 복사-붙여 넣기 같은 인사와 박수가 이어졌다. 내 심장은 점점 더 세차게 박동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김부슬 선생님, 담당 과목은 과학, 서울대 나오셨습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도 전에, 아니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정확히는 '서울대'라는 단어가 교장 선생님의 입술에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학생들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큰 박수를 쳤다. 서울대라는 단어가 이 정도의 파급 효과를 가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역시 크게 놀랐다. 인생에서 그렇게 큰 환호를 받은 날이 있었던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레벨 1의 꼬꼬마에 불과했다. '서울대'란 마치 내게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특수 아이템 같은 것으로, 다른 여섯 선생님들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소거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묘한 우월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쩐지 내가 받은 환호와 박수는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아 민망하고 불편했다. 사전 동의 없이 출신 대학을 공표해 버린 교장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출신 대학이라는 정보는 첫 만남에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는 정보일까. 상투적인 환영을 훌쩍 뛰어넘는 그 환호와 박수세례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고교시절 성적에 대한 찬사, 혹은 동경인가. 서울대 출신의 교사는 과연 학교의 자랑거리인가. 서울대 나온 교사는 타 대학을 나온 교사에 비해 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었을까. 학교에 서울대 출신의 교사가 있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무엇이 되었든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란 어떤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학교도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고, 때문에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학생들은 제외하고) 최상층부에는 이사장, 교장, 교감의 '관리자 그룹'이 있고, 그 아래로 일반 교사들이 있다. 일반 교사는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교사 그룹'이 보다 상위에 위치하며, '기간제 교사 그룹'은 보다 하위에 놓인다. 사실 다른 집단이나 조직에 비해 교직 사회의 위계는 덜 촘촘하고, 덜 수직적이다.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간의 차별은 분명 존재하지만 언론이나 미디어에서도 많이 회자되어서인지 학생들이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없도록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 눈치로 아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대놓고 'OOO 선생님 기간제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무례한 처사다.

  그러나 '관리자 - 정교사 - 기간제 교사'의 계급 구조가 학교의 위계를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학교의 구성원은 교사와 학생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교육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실 바깥에서 다양한 종류의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테면, 급식실 조리원 노동자, 청소 노동자, 시설 관리 소장, 행정실무사, 그리고 과학실험보조원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학생들과 교실 안에서 직접적으로 만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학생과 교사들이 학교라는 공간의 플레이어라면 '교사 외 노동자'들은 일종의 NPC(네이버 게임용어사전에 따르면 NPC란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를 의미한다.)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고, 플레이어는 NPC와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과학실험보조원이면서 시간강사인 나는 굉장히 요상한 위치에 있었다. 관리자를 제1계급, 정교사를 제2계급, 기간제 교사를 제3계급, 그 외 노동자를 제4계급으로 칭한다면, 나는 제3계급과 제4계급의 경계 언저리에 있었다. 서류가 대변하는 나의 신분은 분명 제4계급이었지만, 한쪽 발을 제3계급에 걸치고 있는 모양새랄까. 과학실험보조원은 학교 내 다른 교사 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다. 계약 구조도, 지위도,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교직원들(공무원)과는 다르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다른 대우를 받는다. 반면 나는 주 8시간 책임져야 하는 수업이 있기도 했고, 과학실험보조원의 업무 특성상 과학 실험 수업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보다 학생들과의 직접적 만남이 잦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서울대 사범대를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다들 내가 머지않아 제4계급에서 벗어나 제3계급 혹은 제2계급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진입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가까웠다. 서울대는 최하층계급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의 모호한 신분은 어쩐지 떳떳하지 않았고, 다른 제4계급 노동자들처럼 최대한 드러나지 않으려 애썼다. 출퇴근할 때 정문보다는 쪽문을 이용해 마주치는 인원을 최소화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했다(당시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 챙겨 먹기도 바쁜 자취생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는 일은 너무너무너무나 귀찮은 일이었다). 표면적 명분은 몇 푼 안 되는 월급에서 공제되는 급식비를 아껴보자는 것이었지만, 사실 급식실의 북적거림이 불편했다. 제1, 제2, 제3계급인들의 관계망 안에 나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스스로 숨어 있는 상태를 지향한 것은 맞지만 순전히 자의적이지는 않았다. 3월 초, 첫 전체 교직원회의가 끝나고 나서, 부장님은 다음부터는 교직원회의에 반드시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일종의 배려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때로는 정보의 공백이 생겼다. 교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규칙이나 일정 등을 나만 알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교육학에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표면적 교육과정'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서화된 공식적 교육과정이 아니지만 표면적인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와중에 우연히, 부수적, 산발적으로 가지게 되는 교육 경험을 이르는 말이다(위키백과 참고). 예컨대, 시험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교사가 체벌을 가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시험 좀 못 본 것이 윤리적으로 하등 잘못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체벌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을 못 보는 일은 곧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습득하게 된다. 교사와 학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학교 문화와 풍토, 관습, 교사의 언행과 태도로부터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끊임없이 잠재적 교육과정을 경험한다.


  그 해 E 고등학교에서 새로 일하게 된 사람은 교사 7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행정실무사 선생님과 청소 노동자 여사님에게도 내가 대강당 단상에 올라갔던 개학식 날이 그분들의 첫 출근 날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수업에서 만날 일이 없으므로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은 되려 불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제4계급에 놓인 노동자의 은거를 옹호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과연 어떤 잠재적 교육과정을 경험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노동은 숨어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누군가와의 인사는 생략해버리는 것이 당연한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 '출신 대학'을 '이름'과 '담당 과목' 바로 다음에 위치시켜 소개하는 학교의 관행으로부터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까.


  그날의 장면을 다시 떠올릴 때면 지금은 그곳에 없는데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박수는 누구를 향해야 했을까. 아니, 누구를 향하도록 가르쳐야 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성적과 대학 선택권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