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서울대 가는 법? 그건 어렵지 않지. 일단... 지하철을 타. 2호선 서울대입구역, 낙성대역, 신림역 중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리고 버스를 타면 되는데, 몇 번 버스냐면…"
"......쌤, 노잼이에요."
누군가에게 서울대는 간절한 꿈, 그 자체다. 그분께는 매우 재수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잘한다는 말은 그다지 재수 없게 들리지 않는데,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왜 재수 없게 들릴까)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한 적이 없다. 사실 서울대뿐 아니라 어떤 대학도, 어떤 학과도 나에게 목표 대상이 아니었다. 간절히 배우고 싶고, 미래에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랐으므로. 어떻게 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자기계발서스러운 특별한 공부법이나 비법, 입시전략 같은 대답을 기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진심으로 별로 해줄 말이 없다. 시답잖은 농담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이유다.
몇 해전, 고3 담임을 맡은 적이 있다. 고3 담임의 3월 1순위 과제는 학생들의 희망 대학 및 학과를 파악하는 일이다. 학생들 중 상당수는 그들의 성적에 비해 한없이 높은 대학에 가기를 소원한다. 그런 학생에게는 현실 직시가 시급하다. 대입 프로그램을 화면에 띄워 보여준다. 너의 위치는 여기, 네가 바라는 대학은 저~기. 다소 잔인하게 시뻘건 막대가 나타나고, 학생의 얼굴에는 실망과 후회가 덮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말하는 일은 언제나 슬프고 아프다. 그러고 돌아가면 다음번 상담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입시 상담 중 가장 힘이 드는 케이스는 바람이나 갈망이 아예 없는 학생과 만나는 일이다. 대화가 겉돌고, 나도 자꾸만 학생을 채근하게 된다. 생각을 좀 해보라고. 너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일인데. 부모님은 뭘 원하시니. 그럼 이거라도 보자, 하며 손바닥만 한 두께를 자랑하는 대입 관련 책자를 정독하다 서로 지쳐 상담을 마무리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상담이 힘이 드는 깊숙한 이유는 학생에게서 나의 과거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도 고3이었던 시절이 있다.
"다음 주까지 여기에 가고 싶은 대학, 학과 3개씩 적어와라."
3월 초, 담임 선생님께서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시며 말씀하셨다. 교실 뒷면은 배치표로 도배되었다. 고3 교실의 환경미화는 배치표를 얼마나 정갈하게 붙였는가로 판가름이 나는 법이다. 세상에나. 태어나서 그런 표는 처음 보았다. 이렇게 많은 대학과 학과가 있었다니. 아찔했다.
1학년과 2학년 학기 초, 장래희망란에는 치과의사라고 적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대학 졸업 후에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가 필요한 일이 있어, 서류를 떼서 보니 1학년, 2학년 장래희망이 모두 치과의사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매우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치과의사가 너무너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뭐라도 적어야 한다고 하니, 집에서 엄마와 골몰하다가 엄마가 "치과의사도 괜찮지 않겠니?"라고 했고, 나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적었던 것 같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건 맞지만, 치대를 너끈히 갈 수 있을 만큼 좋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좀 더 아래로, 아래로 시선을 돌리다가 '의공학'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단어는 일종의 인력(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 인터넷으로 의공학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현재 나무위키에서 '의공학'을 검색하면 '생체재료, 인공장기, 의료기기 개발 등 의학과 관련된 기기, 장비 등을 만들거나 연구하는 공학 분야'라는 설명을 얻을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비슷한 종류의 답을 찾았던 것 같다. 나는 생명과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뼛속 깊이 내향적이며 말을 잘 못해서 사람보다는 사물과 씨름하는 직업이 적성에 더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사범대에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슴이 조금 뛰었다. 상상 속에서 이미 나는 하얀 연구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인공 심장, 인공 피부 따위를 개발하고 있었다.
내가 고3이었던 과거에는 학부에서 의공학을 배울 수 있는 일반대학이 대여섯 군데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1년 현재는, 전국에 14군데가 있다고 한다(나무위키). 당시 나의 인터넷 검색 실력이 미흡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예나 지금이나 아주 많지는 않다. 여하튼 이곳저곳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학과 소개와 교과 과정 페이지를 쭉 훑어보았다. 찾아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그중 학부의 역사가 가장 깊고 교과과정이 탄탄하다는 느낌을 주는 'OO대 의공학부'를 종이에 적어 담임 선생님께 제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실에 담임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입시상담을 했다.
"여긴 안 돼."
선생님은 내가 일전에 적어 제출한 대학과 학과명을 흘끗 보시고는 일축하셨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덧붙이셨다.
"네 성적이... 너무 남잖아."
"아… 하하... 네…"
공부는 좀 하는 줄 알았지 이거 영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 구만 하는 표정도 선생님의 얼굴에 어슴푸레 서려 있었던 것 같다. 안정적으로 합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하고 대꾸도 못했던 멍청이가 맞기는 맞다. 그렇게 의공학부를 향한 부푼 꿈은 삼일천하로 끝이 났다. 다른 대학 의공학부도 내 성적엔 '맞지' 않았다. 오래 품은 꿈은 아니었기에 선생님의 한 마디에 쉽게 떨어져 나갔다. 성적이 높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다는 말은 객관적으로는 옳지만 경험적으로는 절대 옳지 않다.
나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처럼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갔다. 원서 접수 직전, 마지막 입시 상담에서 선생님께서 '서울대'를 제안하셨고, 적잖이 놀랐던 것은 사실이다. 서울대를 간절히 원했던 적도 없었거니와, 서울대 대부분의 학과가 내 점수로는 상향지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대 '합격'을 위해서는 '소신' 지원은 불가했다. 상대적으로 커트라인이 낮고 모집인원이 많아서 추가합격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만한 '사범대 과학교육계열', 선생님께서 꼭 집은 학과였다. 내가 정말 교사가 되고 싶은지, 교사로서 자질이 있는지, 교육에 얼마나 뜻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고, 서울대 사범대 과학교육계열에 원서를 접수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면접도 망쳤는데) 추가합격으로 서울대에 붙었고, 무사히 졸업도 하고 교원 자격증도 받고, 현재는 정말로 교사가 되어 버렸다. 성적 맞춰서, 남이 정해준 대로 간 대학이 내 인생의 꽤 굵직한 일부를 결정한 셈이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을 원망하진 않는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좋고, 나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큰절을 올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지도 모르겠다. 수업을 디자인하고, 자료를 만들고,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우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신체 성숙이 완료된 고등학생이라도, 아직은 완전히 찌들어버리지 않은 어떤 순수함을 소유하고 있고, 그걸 발견할 때 미소 짓게 된다. 일상적 말하기에는 소질이 없지만, 수업이라는 짜여진 무대에서의 말하기는 탄탄히 준비하면 그런대로 잘 해낼 수 있다. 물론 공문 처리하는 것이나,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학생, 학부모, 혹은 동료 교사를 상대해야 하거나, 변별을 내세워 말도 안 되게 (이거 원 전통 매듭도 아니고) 꼬아 꼬아 꼬아서 출제된 수능 문제를 풀어주는 힘듦이야 왜 없겠냐만은, 대체로 만족스럽다(현재 휴직 중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잘 얻어걸려 다행이다.
하지만 성적이라는 틀에 맞추어 바람을 수정하라고 강요하는 이 사회가, 결코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운이 좋은 경우였지만, 누구나 운이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가지 못한 길을 상상해본들 무슨 유익이 있겠냐만은 아주 가끔, 문득, 고3 시절로 돌아가 다른 장면을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때 담임 선생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의공학부에 지원했더라면? 아니, 조금 더 깊이 조사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따져도 보고, 또 다른 어른에게 물어도 보고 난 다음에, 의공학부든 사범대든 선택했더라면? 아니면 선생님께서 '의공학부는 안 돼'라며 딱 잘라 버리지 않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니?'하고 물어봐 주셨다면? 내 삶의 모양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까. 다른 직업을 갖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루었을까. 어쩌면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 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돌아서 교사가 되고, 다른 시공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외양은 비슷했을지언정 나라는 사람의 '질감'까지 동일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운과 타인이 나를 결정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한 뼘만 더 주체적이었다면, 한 걸음만 더 주체적 인간이 되기를 독려당했다면, 이후에 마주한 크고 작은 선택 앞에 선 나의 마음은 보다 씩씩하지 않았을까. 그 과정을 관통하고 나서 교사가 되었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성적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학생들에게 시답잖은 농담 말고, 아마도 조금은 다른 종류의, 다른 질감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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