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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May 06. 2021

임시적 패션


  나는 임시적 패션을 영위한다. 새로운 옷을 구입하지 않은지 오래다. 새 옷을 사고 싶다는 욕구는 바깥으로부터 발생한 것일까,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새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가는 일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새 옷을 사기 위해 인터넷 창을 뒤적거리는 것은 귀찮다. 따라서 새 옷 사기를 상상해본다.



  1) 적당한 색깔, 2) 적당한 재질, 3) 적당한 길이, 4) 적당한 핏, 5) 적당한 두께, 6) 적당한 무늬의 형태, 7) 적당한 무늬의 양, 8) 적당한 메이커의 드러남 정도, 9) 적당한 가격의 옷을 찾는다. 여태껏 살면서 그런 옷은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이를테면, 1)에서 8)을 만족시키는 옷은 9)를 만족시키지 못함으로써 나의 소유가 되지 못한다. 겨드랑이 위치 같은 뜬금없는 곳에 이상한 무늬가 나타나 6)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과도한 8)은 거북함을 일으키며, 좀 더 젊은 날의 나는 9)를 우선하여 고려한 결과 2)의 실패로 이어져 낭패를 본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므로 1)에서 9)를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새 옷을 사는 행위를 37482번쯤 더 해보지 않더라도 확신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서도 완벽한 옷을 살 수  없다.



  이제는 1)에서 9) 중에서 한두 가지 정도 불만족스럽다고 하더라도, 좀 더 양보해서 서너 가지까지도 불만족스럽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신용카드에 또 하나의 스크레치를 남긴다. 옷은 영원하지 않으며, 특정한 옷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시간과 기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므로. 나는 이제 옷으로부터 만족을 갈구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입는 옷, 내가 살 옷은 모두 임시적이다. 어딘가 덜떨어진 만족이 물들어있다.



  시간을 굴려 한 번 더 상상해본다. 할머니가 된 나. 그녀에게는 완벽한 옷보다는 따뜻한 표정을 형성하는 주름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지쳐버린 누구라도 편안히 자기 세계를 뉘었다 갈 수 있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볕을 품은 마당 같은 주름을 소유한 할머니. 여전히 임시적 패션을 영위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주름 같은 글을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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