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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Jun 19. 2021

나의 시인덕질기

팬과 덕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문보영 덕질하기

  나는 잘 기다리는 편이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새롭게 생기는데, 그럴 때 인터넷 서점보다는 도서관 앱을 켜고 검색을 한다. 만약 그 책이 신간이거나 화제성이 짙은 책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은 '대출중'이다. 그렇다면 책을 사러 서점으로 달려갈 것인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집에 책을 보관할 공간이 충분하며, 통장 잔고도 넉넉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나는 우리 집의 공간과 통장 잔고의 유한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므로 읽고 싶은 책 대부분은 사지 않는다. 대신 나의 특기를 살려, 기다린다. 기다림은 두 갈래의 행동 패턴으로 나타난다. 첫째, 시민으로서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 권리를 행사한다. 그리고 해당 도서가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알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보통 한 달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둘째, 책의 화제성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린다. 대출 가능한 상태가 될 때 빌려 읽는다. 읽고 나서 정말 정말 다시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책만 산다. 하지만, 사실 기다리다가 읽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덕후에게는 기다림보다는 스피드가 중요한 미덕이다. 덕질의 대상에게는 앞뒤 재지 않고 시간과 재화를 기꺼이 쓰기 마련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덕질다운 덕질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다 호감을 느끼는 연예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에게 시간과 용돈의 우선권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보아'를 좋아했는데, 나는 고작 보아 앨범 중 정규 2집, 3집, 4집 만을 소장하고 있을 뿐이고, 중학생 때는 '신화'를 좋아했는데, 신화 앨범 중에는 6집만 갖고 있으며, 신화 멤버들에 대해 아는 정보도 별로 없다. 덕질이 늪이 될까 봐 지레 겁을 먹어서였을까. <명탐정 코난> 신간이 나오면 앞다투어 서점에 가서 구입하고 행여나 일말의 흠집이 생길까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던 친구 K나, '빅뱅' 앨범이 나오면 정규든, 싱글이든, 라이브 콘서트 앨범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용돈을 지출하던 친구 Y가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올해 초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문보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그녀의 시집 <책기둥>을 빌렸다. 20대부터 '시'라는 문학 장르에 호감정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시를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의 5년 만에 시집이라는 것을 처음 읽었는데,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자유롭고 이상한 말을 쏟아 내는 천일야화적인 책이었다. 한국어인데 외국어 같았다. 나는 이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왠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이해되기 전에 간파되었다. 이해는 나중에 오는 문장도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숙취가 가신 뒤에도 그 문장들은 여전히 엉뚱하고 괴팍하고 이해할 수 없음에도 아름다웠고 또한 슬펐다. 그 언어들은 내 마음 어딘가 자리하던, 이름 붙여지지 않던 감정과 슬픔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문보영, <일기시대>, 83쪽)


  문보영은 그녀의 에세이집 <일기시대>에서 대학 시절 처음 문예지를 만나고 나서의 느낌을 위와 같이 서술했다. 내가 <책기둥>을 읽고 느꼈던 마음이 바로 이와 같았다. 다 이해되지 않았고, 시가 그려내는 이미지가 생경했지만 어떤 시구는 마음에 와서 박히고, 잠들어 있던 마음의 일부가 울렁거리며 일어났다. '아, 좋다'는 말을 셀 수 없이 중얼거리며, 읽었다.



  <책기둥>을 반납하고, <책기둥>을 한 권 샀다. 시가 좋으니,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브이로그 유튜브 채널도 구독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팔로우했다. 덕질... 까지는 아니고, 팬질의 시작이었다. 하루는 중고서점 구경을 갔는데, 문보영의 산문집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가 있길래 별로 살펴보지도 않고 냉큼 샀다. (구입하진 않았지만)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도 읽었다. <일기시대>는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가 개시되자마자, 샀다. 아껴 읽느라 아직 다 읽지는 못 했지만. 또 다른 어느날에는 무심결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마침 그날은 그 프로그램의 금요일 고정 게스트로 문보영이 출연한 첫날이었다. 나는 그 주파수에 그런 프로그램이 그 시간에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는데 말이다. 팬질을 좀 더 심화시켜도 된다는 신의 허락 같았다.


  서울 망원동의 '작업책방 씀'이라는 곳에서 월별로 '작가의 책상'을 전시하는데, 6월의 작가는 바로 문보영이다. 그곳은 우리집과 36km나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으로 약 1시간 30분을 소요해야 다다를 수 있다. 6월에는 20개월 아들의 어린이집 적응기를 버텨내고 있으므로 그 먼 곳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부풀어지며 전시에 관해 남편에게 슬쩍 흘렸는데, 오히려 남편이 가보라고 부추겨 주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원 후 아이는 남편이 봐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6월 18일, 망원동에 다녀왔다. 문보영의 영롱한 책상을, 글씨를, 아끼는 소지품들을, 원고를 두근거리며 보고 왔다. 최근에 나온 소설집 <하품의 언덕>도 구입했다. 방명록에 짧은 편지도 남겼다. 책방에서 내려준 진한 커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루 종일 두근거려 새벽 2시가 넘도록 잠도 오지 않았다.


아주 작은 공간에 문보영의 흔적이 가득하다. 천장에서는 문보영의 글이 내려오기도 한다.


  현재 나는 팬과 덕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일명 '준덕후(그녀가 만든 '준최선'이라는 단어에서 차용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전시 첫날 혹은 작가가 상주하는 5일이나 25일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찐덕후'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준덕질이란 무엇인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고) 조금 덜 기다려 책을 사고, 읽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고, 조금 멀어도 그녀의 흔적이 있다면 종종거리며 찾아가고, 방명록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나의 소비가 그녀의 생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그녀의 글이 계속해서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그녀가 볼 수 있게 조용히 보내서, 그녀가 글을 쓰고 일상을 사는데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녀의 글을 읽음으로써 나의 어떤 부분은 잃어버린 생을 되찾으므로, 준덕질에 들었던 돈과 시간이 그저 낭비라고 볼 수는 없다. 당분간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문보영 준덕질을 지속할 것이다. 


  오늘은 아껴 둔 <일기시대>의 한 꼭지를 읽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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