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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기린쌤 Jun 26. 2020

배려도 과유불급

배려는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니다.


配 짝 배, 慮 생각할 려


배려는 짝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마냥 좋은 의미로만 알고 있었다. 배려심이 깊다거나 남을 배려한다는 건 착한 모습, 좋은 모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크면서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배려는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니다. 즉, 배려도 과유불급이다.



배려의 표현


배려의 표현 방식에 따라 상대방이 좋게 느끼기도, 나쁘게 느끼기도 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길에서 파지를 주워 손수레에 담아 끌고 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많이 보았다. 손수레에 바퀴가 달려 있지만 무거운 경우에는 빠른 속도로 끌고 가기 힘들다. 그 모습을 보며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뒤에서 미는 힘이 생기다 보니 앞에서 끌고 가시던 할머님이 놀래셨다. 어떤 분은 괜찮다며 안 도와줘도 된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어떤 분은 하지 말라며 버럭 화를 내셨다. 죄송하다 말씀을 드리며 돌아서 생각해보니 내가 말도 하지 않고 밀었기 때문에 놀란 마음도 있고, 그 속도에 따라가는 것이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도움이 필요 없는데 동정받는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도와드릴까요?" 물어보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어디까지 가세요? 저도 가는 길인데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고 대답을 들은 후 Yes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만 도와드렸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사를 하기 전까지 같은 길을 꾸준히 걸어 다니며 한 할머니와 친해졌다. 할머니께서도 파지를 주우며 손수레를 밀고 다니셨는데, 하교할 때 자주 마주쳤었다. 할머니께서 앞에서 끌고, 나는 뒤에서 밀며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되었다. 때론 밀지 않고 같은 길을 걸으며 이야기도 하였다. 이사를 오고 난 후, 이사 온 동네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정말 기쁘게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고 반갑게 인사해주셨다. 잊을 수 없는 이 추억은 아마 나의 배려가 할머니께도 온전히 전달되었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배려가 불편해


배려도 적정선,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바닥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 있는 것이 편해서 잘 앉아 있는데, 상대방이 '너 너무 불편해 보여'라며 의자를 가지고 와서 굳이 나를 의자에 올려 앉혀준다면 어떨까? 물론 의자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지 않았는데, 즉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굳이 도움을 받게 되면 마음속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처음에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의사를 묻지 않고 뒤에서 도와드린 행동은 배려의 표현도 서투르고 너무 과했기 때문에 실례를 범했던 것 같다.


나를 지키는 범위 안, 이것이 배려의 적정선 중 하나이다. 나보다는 남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사람, 주변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이때 내 마음은 어떻게 느끼는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 마음이 힘들다고 느낀다면 상대방에게도 불편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A 씨는 B 씨의 생일에 B 씨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생일 전 날, 늦게까지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왔다.
다음 날 A 씨와 B 씨가 만났다.
A 씨 : "오늘 뭐 하고 싶어?"
B 씨 : (밖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싶지만, A 씨가 피곤하겠지?)
"치킨 시켜서 집에서 영화 보자"
집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B 씨는 크게 즐겁지는 않다.
그렇다면 A 씨는 어떨까? A씨도 즐거웠을까?

경험을 가지고 오려니 최근 경험은 상대방이 읽으면 상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시로 만들어보았다(그래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A 씨의 마음과 B 씨의 마음, 분명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있다. A 씨는 만나는 날 B 씨에게 집중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하며 마무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B 씨는 늦게까지 일한 A 씨를 배려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A 씨는 그 배려가 고마울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B 씨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더 좋았지 않을까?



배려 속에는 존중이

나는 고등학교 때 장애인복지관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며 특수교사라는 꿈을 키웠다. 그러면서 장애인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 어른들이 '스스로 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거야'라고 말해줬던 것 같다. 작년에 대구시 장애공감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식개선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지만, 이 생각 역시 그렇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면 되는데, 무조건 도와줘야 해!라는 것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배려가 선을 넘어버리면 동정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241쪽에서 이런 표현이 나온다.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그저 장애인을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인을 그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존중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배려가 아니라 삶에 대한 존중'이라는 부분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알았으면 한다.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양반다리가 편한데 굳이 의자를 주는 것처럼 편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이때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것처럼,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대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도와드릴까요?",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와 같이 의사를 물어보는 것, 존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나의 배려가 과하다는 건, 상대방에게 이 배려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일 것이다.



배려하는 내 태도에 누군가가 상처 받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배려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배려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



내가 지금 도와줄 여건이 되나?
상대방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맞을까?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떨까?
지금은 너무 오지랖이지 않을까?
상대방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지?



여러 고민과 상황을 겪고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이

바로 "나를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배려를 하자!"이다.


나도 지킨다는 의미는 나도 배려를 통해 행복하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상대방도 부담스럽지 않고 기분 좋게 감사하는. 그런 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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