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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기린쌤 Aug 01. 2020

급할수록? 돌아가자!

압박감이 데리고 온 조급함, 커브길로 해결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영어 속담으로 Make haste slowly 또는 More haste, Less speed라고 표현되는 이 말.

사자성어로는 발묘조장, 알묘조장이라고 표현되는 이 말.

<발묘조장 拔苗助長>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
<알묘조장 揠苗助長>
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뜻
성공을 서두르다 도리어 해를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른들에게도 들어본 적 있고, 책에서도 읽어본 적 있고, 강연에서도 들어본 적 있는 말들은 뻔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많이 듣다 보니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외워서 익숙했다. 급한데 돌아가면 늦는 거 아닌가?



돌아간다는 의미?


급할수록 돌아간다는 게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예 반대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럼 돌아간다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급할 때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경황이 없어진다. 머릿속 생각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 어떠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이럴 때는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급한 일 외에는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면 주변뿐 아니라 나조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된다.



압박감이 데리고 온 조급함, 어떡하지?


대학교 4학년 때, 나에게는 언어재활사 국가고시 준비와 대학원 장학금을 위해 성적 관리가 중요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대학교 3년 동안 하던 학생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더 여유로워졌지만, 마음은 반대로 여유가 더 없었다. 나는 학생회를 통해 공부 외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와 에너지의 균형을 맞춰갔다. 3년 동안의 스케줄과는 다른 패턴의 생활 속에서 성적과 시험에 대한 압박감은 나에게 커다란 돌덩이 같았다. 특히 수업이 없는 날에 집에서 혼자 공부할 때면 더 크게 느껴졌다.


국가고시는 토요일이었는데, 시험을 앞둔 화요일로 기억한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데 숨이 막힐 정도록 속이 답답해졌다. 책을 펼쳐서 보고 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도 백지도 아닌 아무렇게나 까맣게 칠한 것처럼 가득 차 있었다. 때마침 혼자 있는 시간이었어서 참다 참다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그때의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사춘기 때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았는데, 저 순간만큼은 혼자 있을 때면 더 깊은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까지 가기에는 버스 타고 왕복 2시간이 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엄마에게 의논을 했었다. 당장 주말에 시험을 앞두고 컨디션도 조절하고 시간도 아껴야 하는데,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게 맞을지 집에서 하는 게 맞을지. 엄마는 지금 나의 상태를 듣고는 차라리 하루 푹 쉬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나의 선택지에는 없었던 휴식. 오전에 늦잠 푹 자고, 책 보지 말고 쉬다가 저녁에는 엄마랑 시내 가서 바람을 쐬고 오기로 했다. 휴식을 통해 충전하고 목요일부터 다시 준비를 하여 시험도 잘 마무리하였다.



돌아가자!


압박감이 그만큼 커다란 돌덩이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만약 돌아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평소에 하던 대로 직진했다면? 수요일에 휴식을 하지 않고, 시험 전까지 학교나 집에서 공부를 쭉 이어서 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가는 과정에서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수석에 대한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나름 괜찮은 성적을 받았다며 고생한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몸소 느꼈다. 급할수록 잠시 나의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돌아가는 순간이 필요함을.

전에 쓴 '길 좀 잘못 들어가면 어때'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다. 쭉 직진을 하다 보면 지치거나 힘든 순간이 온다. 급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때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돌아갈 수 있는 커브길 아닐까?

나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 '집에서 공부하기'를 커브길이라 생각했지만 직진하는 노선 종류였을 뿐, 진정한 커브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뻔한 말이라 듣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몸소 경험했던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누군가 비슷한 상황으로 압박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거나, 내가 지금 쭉 직진을 하며 속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인지 쉬어야 하는 상황인지(나처럼 쉬는 건 옵션에 없을 수도 있다) 고민이 될 때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이 사람도 급하고 힘든 순간에 저런 방법으로 돌아갔구나. 돌아간다는 게 그만두는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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