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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Feb 25. 2024

마음의 숨구멍

먼지를 뽀얗게 둘러쓰고 방 가장자리에 다소곳이 세워져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여인의 허리처럼 잘록한 부분에 둥그런 울림 구멍이 뚫려 있다. 나는 기타를 가슴께로 끌어안은 채 조율을 끝내고 손가락으로 줄을 뜯었다. 혼자 오래 서 있던 기타는 왜 이제야 나를 품어주었냐며 토라질 만도 한데 내색도 없이 맑고 따스한 소리를 공명통 안에 가득 울렸고 그 진동은 내 심장에 와닿았다.


오랜만에 악보를 보면대에 펼치고 김광석의 노래를 연주했다. 그의 노래는 쉽게 들리지만 막상 불러보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음이 생각보다 높은 데다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 감정을 실어야만 감동이 전해지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마음이 울어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 


기타를 취미 삼아 독학으로 익히다가 군에 갔다. 졸병 때는 맘대로 칠 수 없었다. 중대에서 소대로 내려간 어느 저녁, 방위병들의 내무반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이 둘러앉아 있고 가운데 잘생긴 상병 하나가 능숙하게 기타를 치면서 잔잔히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눈썹과 눈동자가 목탄으로 그린 듯 새카맸고 콧날과 턱선이 사막의 모래사구처럼 부드럽고 가지런했다.


그에게 다가가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을 알려주었다. 그는 출퇴근하며 교대근무를 하던 단기병이었기에 매일 배울 수 없었다. 몇 소절씩 따라 배우며 연습하다 보니 곡을 다 칠 수 있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잊었지만 처음 배웠던 그 선율만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연습을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대학을 다니다 입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지방 국립대에 진학했고 방학이 되면 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한다 했다. 기타를 치던 그의 큼지막한 손에 굳은살과 생채기가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어느 날 그가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 주옥같은 김광석의 노래였다. 그 노래를 ‘나의 기타 선생’이 불러 줄 때면 노랫소리는 흐느낌인지 설움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게 준 카세트 테이프에서 들려오던 김광석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후벼 파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애인 있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대답 대신 김광석의 ‘그날들’을 불렀다. 사귀던 여자와는 헤어졌다고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어느새 찾아온 푸르스름한 새벽을 맞았을 때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하얀 입김을 불어 그녀의 이름을 쓰고서는 어둠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고, 비가 내리던 날 그녀의 집 앞에서 우산도 없이 끝나지 않은 마음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서 있었노라고 그는 차마 내게 얘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래가 끝나자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광석이는 꼭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아요. 정말 미칠 것 같을 때도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 숨통이 트이거든요."


몇 달 후 ‘나의 기타 선생’은 아쉽게도 제대를 했다. 아마도 그는 막노동과 실연의 상처 그리고 최루탄의 잔향이 스며있는 캠퍼스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남기고 간 김광석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김광석의 노래에는 있었다. 울고 싶어도 울 줄 모르던 그 시절 청춘들을 대신해서 그는 서럽게 울어준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고 세상을 떠난 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대를 뛰어넘어 잊히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수염고래는 40분간, 향고래는 2시간까지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먹이활동을 하다가 갑갑해오면 수면으로 올라와서 굳게 닫혀있던 분수공을 열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참았던 숨을 깊이 호흡한다. ‘푸우우’ 마치 영매를 통해 전해 듣는 죽은 자의 목소리처럼, 삶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려진 끈적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처럼, 물질을 하다가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는 해녀처럼.


군을 제대하고 대학 졸업 후 맞이한 직장생활이 2년째 접어들 무렵 번아웃이 찾아왔다.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 일을 해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무거움은 하루하루가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다. 조직생활과 대인관계에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나의 습성 탓도 컸을 것이다.


어느 주말, 친구와 함께 부산 태종대에 갔었다. 한참을 걸어서 마주한 바위절벽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발아래에는 수직 암벽에 부딪히는 흰 포말, 시리게 파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새하얀 갈매기. 우리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해녀들이 썰어주는 멍게와 해삼 그리고 전복을 소주와 함께 삼켰다. 빠르게 말하는 습관을 가진 친구는 긴 목에 달린 울대를 꿈틀 하더니 말했다.


"왜 바다에서 술을 먹으면 취하지 않지?"


"그러게"하며 맞장구를 쳤지만 나도 그것이 궁금했다. 두 명이서 소주를 몇 병이나 깠는데도 정신이 멀쩡했다. 파도소리를 배경 삼고 파란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물거리던 우리의 입안에서는 멍게의 비릿한 바다 내음이 진하게 맴돌았다. 그때 옆에서 회를 썰던 늙은 해녀가 말했다.


"속이 뻥 뚫리니까 그렇지예. 나도 마 속이 썩을 때 물질을 하모 다 삭아뿐다 아입니꺼."


"겨울에는 갑갑하시겠네요. 물질을 못해서." 내가 대꾸했다. 그러자 해녀가 말했다.


"무신 소린교. 겨울에 더 마이 합니더. 바다가 조용하니까."


다른 계절에 비해서 겨울 바다가 조류의 변화가 적어 물질하기에는 더 적합하다고 했다. 하지만 찬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는 외투를 겹겹이 입어도 몸이 떨려오는데, 두꺼운 방한복도 아니고 고무로 된 잠수복 하나만 걸치고서 어찌 시퍼런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지 우리는 그저 먹먹했다.


오래전 외국에서 음악이 치매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고 한다. 무기력하고, 괴성을 지르고, 하루종일 넋을 놓고 멍하니 있는 노인들에게 어느 날 연구자가 그들의 젊은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를 들려줬다고 한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그들은 일시 행동을 멈추고 초점 없던 눈동자를 바로 세우며 진지하게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일부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일부는 춤을 췄다. 많은 노인들은 노랫소리를 듣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짝사랑하던 연인을 그리며 듣던 노래였고, 라디오 방송국 음악 프로에 엽서로 사연을 깨알같이 적어서 부치고 설레며 듣던 신청곡이었으며, 첫사랑을 고백할 때 흐르던 노래였고, 친구와 오솔길을 걸으며 흥얼흥얼 함께 부르던 노래였을 것이다.


기억이 사라진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생각의 안갯속을 까마득히 헤매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래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멍멍" 짖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잃어버린 강아지가 몇 년 만에 돌아와 미친 듯이 꼬리를 치며 얼굴을 핥고 깡충대며 주위를 뱅뱅 돌 듯, 외롭거나 힘들 때 가만히 등을 토닥이던 그 노래가 홀연히 청춘의 기억을 그렇게 찾아들게 했던 것이리라.


지치고 흔들리는 시기에 나는 문득문득 얼음장 같은 겨울바다에 망설임 없이 풍덩 뛰어드는 해녀를 생각했다. 모진 시어머니, 속 썩이는 남편과 아이들의 애달픈 얼굴을 뒤로하고 그녀는 얼음처럼 차갑고 시퍼런 바다에 죽으려고 뛰어들었을까, 살려고 뛰어들었을까. 한참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그녀가 불쑥 수면 위로 머릴 내밀며 "휘이이~"하고 숨비소리를 낼 때 그녀는 생의 숨구멍을 통해 모든 슬픔과 고통 그리고 갈등을 건넜다고, 바다같이 깊고 푸른 삶의 해류와 맞서 승리했다고 그처럼 힘차게 외쳤던 것이리라.


기타에 울림 구멍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숨구멍이 뚫려 있다. 숨을 쉬고 있어도 답답할 때는 마음의 숨구멍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생은 창백하게 죽어가다가도 붉게 살아나서 푸르고 싱싱하게 활력을 되찾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젊은 청춘들이 김광석의 노래에서 위안을 얻고 숨을 쉬었듯이. 나에게 그의 노래는 젊은 날의 추억이자 고통 가득한 생의 바닷속에서 소라와 전복을 캐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마음의 숨구멍 중 하나였다.

 

고래의 분수공에서 터지는 물보라, 해녀의 "휘이이~" 숨비소리, 기타의 울림 구멍처럼 추억이 스며있는 노랫소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소외된 마음의 숨구멍을 틔우고 공명통을 깊이 울리면서 삶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힘이 된다.


만일 뚜렷한 나만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없다면 젊을 때 즐겨 듣던 노래 한 소절을 읊조리거나 찾아서 들어보라. 울컥하고 올라오는 뭔가가 느껴진다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의 숨구멍은 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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