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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Jun 30. 2024

바위에 새겨진 바람의 노래

이십 대 초반의 어느 젊은 여인이 산속에 있는 암자를 찾았다. 날이 어두워 그러니 하룻밤 자고 가게 해달라고 젊은 스님에게 청하였다. 목련처럼 밝은 피부와 짙은 눈썹. 맑고 깊은 눈망울과 반듯한 콧날. 붉은 입술은 잘 익은 과일처럼 향기가 나는 듯하였다. 우아하면서 그윽한 여인의 자태를 마주한 스님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청정한 도량에 여자를 들일 수는 없는 법이라며 청을 거절하였다.

    

정원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참새, 직박구리 등 새들이 날아와서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청소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먹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인근 나뭇가지에 사이좋게 종종종 앉아서 기다린다. 아이들처럼 끝없이 조잘거리면서. 그런 모습을 딱하게 여긴 아내는 빵이나 비스킷 등을 잘게 쪼개서 뿌려주곤 했다. 녀석들은 점점 대담해져서 우리가 자리를 옮기기도 전에 쪼아 먹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 발밑까지 서슴없이 다가와서 먹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나무랐다. 야생동물들의 생존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먹이를 여기저기 던져주었다. 새들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잘 보이는 곳에 뿌려준다. 아내는 감성론자이다.


간혹 나 혼자 정원에 앉아서 다과를 먹고 있을 때에도 어김없이 녀석들이 날아온다.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불편해진다. 하는 수 없이 조그만 것을 몇 개 던져주곤 한다. 그러면 용감한 녀석 한 두 마리만 날아와서 부스러기를 채간다. 나머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회를 엿보며 기다린다. 나는 가까이 날아와 앉는 용감한 새들에게만 최소한으로 먹이를 준다. 나는 원칙론자이다.


삼국유사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둘은 생각과 뜻이 맞는 친구였는데 깨달음을 위한 결심을 하고 백월산(지금의 창원시 북면에 소재) 기슭에 각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였다. 달달박박은 북쪽 암자에 노힐부득은 남쪽 암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북쪽 암자에 있던 달달박박에게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왔던 것이다.


하룻밤 재워달라는 여인의 청을 수행자의 계율을 앞세워 거절한 이가 바로 달달박박이었다. 여인은 다시 남쪽 암자에 있는 노힐부득에게로 갔다.


늦은 저녁 처음 보는 미모의 여인이 재워줄 것을 청하자 노힐부득은 거절하려 하였다. 하지만 젊은 여인이 어두운 밤길을 홀로 떠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파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하나밖에 없는 방을 여인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법당에서 밤새 독경을 외었다.


새벽녘 독송하고 있던 노힐부득에게 여인이 다가와서 해산기가 있으니 도와달라 간청했다. 노힐부득은 두렵고 부끄러웠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기에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받아주고 여인을 욕조에 앉혀서 목욕을 시켰다. 그러자 통속의 목욕물이 강한 향기를 피워 올리며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깜짝 놀란 노힐부득에게 여인이 평온하면서 거룩한 표정으로 같이 씻을 것을 요청하였다. 그 눈빛과 말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같고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 같기도 하였으며 여름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쏴아 하고 우는 대숲 소리 같기도 하였으리라. 그는 말없이 몸을 씻었고 어느새 자신의 살갗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옆에는 문득 연화대가 생겨났고 여인은 그에게 앉기를 권하고서는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날이 밝자 간밤의 이상한 사건을 전하려고 노힐부득의 암자로 찾아간 달달박박은 연화대에 미륵불이 되어 광명을 발하며 앉아 있는 노힐부득을 발견하였다. 어찌 된 것인지를 묻는 달달박박에게 노힐부득은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여인을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남은 목욕물로 몸을 씻은 달달박박은 아미타불이 되었고 둘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뒤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불교에서도 경계 없고 조건 없는 자비를 강조한 것이 고대 우리네 옛이야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종교의 본령은 계율의 얽매임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집 서재 창문으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백월산이 보인다. 해발 428미터, 북면의 들판과 동읍의 주남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이다. 인근 정병산처럼 우뚝 솟아서 기백을 자랑하지도 않고 무학산처럼 크게 활개를 펼치지도 않는다. 두 마을의 경계에 앉아서 수굿하게 나물을 뜯으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네 같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기사가 실려 있는 작지만 큰 산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고개를 돌려서 멍하니 산을 쳐다보곤 한다. 나지막한 저 산을 왜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관세음보살은 그곳에 몸소 화현하여 두 스님을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이끌었다는 것인지. 산의 명칭에 얽힌 전설과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그 배경이 궁금했다. 마치 한반도가 중생대 공룡들의 천국이었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멀면서도 생뚱맞게 여겨졌다. 미약한 역사 지식을 통해 이곳이 고대에 제법 많은 세력들이 웅거하며 외국과 활발히 교역을 하였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화가 발달하였으리라 추정해 볼 뿐이다.


30여 년도 훌쩍 넘긴 이전이었다. 우리 가족은 마산의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 저녁, 누군가 열린 대문을 열고 불쑥 들어섰다. 할머니가 나가보니 젊은 여자였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행색이 초라했다. 퉁퉁 부은 몸매에 희번덕거리는 초점 없는 눈동자. 얼굴에 비해 짧고 조그만 코와 푸른 입술. 대뜸 우리 할머니를 보더니 찌르는 듯 큰 목소리로 아지매라고 불렀다. “아지매, 잘 계싰능교? 내 모리겄나?” 그러더니 서슴없이 안방으로 찾아들어서 아랫목 이불속에 시린 발과 손목을 넣었다. 할머니는 누군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시골 고향에서 찾아온 먼 일가나 친척인지, 아니면 오래전 알고 지낸 누군가의 자녀인지, 세월이 지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들여다보며 난처한 표정이었다. 시큼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방안에 진동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아시는 분인지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여인에게 할머니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떤 사이인지 어디 출신인지도 얘기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나는 곧 터미널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자임을 직감하고 그녀를 쫓아냈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켜야 했고 방안을 걸레로 여러 번 닦아냈다.


백월산을 바라보면서 그날의 일이 불쑥 떠올랐다. 아! 그때 물을 끓여서 씻을 수 있도록 했었다면. 따뜻한 저녁 한 끼 먹였더라면. 골방 하나를 비워서 재워 보냈더라면.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끼 식사비라도 챙겨서 보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춥고 배고팠길래 모르는 사람 집에 불쑥 들어와서 따뜻한 아랫목을 찾았을까. 개다리소반 위에 구수한 된장찌개. 바삭한 김과 아삭한 깍두기.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하는 저녁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를 곰곰 생각하면서였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중동지역의 속담이다. 안정적인 농경사회보다는 척박한 사막의 기후에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게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더 발달하였다고 한다. 내가 베풀지 않으면 언젠가 외면하는 누군가로 인해 나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어려움을 경험해야 상대의 고통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속성인지 모른다. 반대로 내 배가 부르면 타인의 배도 부른 줄 착각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마음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중동에서는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금식을 하는 라마단이라는 종교의식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때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관계와 사람에 지치기도 하지만 어려운 순간 힘든 환경에서 돌파구가 되어주는 존재도 다름 아닌 사람이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소비자요 생산자로 경제의 주체이기도 하며 여러 의무를 지고 돈을 벌어서 세금도 내면서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한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들이 사실 보이지 않는 모든 이들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치열한 경쟁과 비교, 급격한 변화와 바쁜 일상 속에서 종종 잊고 산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고통으로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구원해 주는 신의 사자(使者)들인지 모른다.


“먹을 게 없어? 입이 궁금해? 알았쪄~”


정원에서 풀을 뽑다가 몰려드는 참새들의 성화에 아내가 호미를 던지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비스킷 봉지를 열고 몇 개를 부스러뜨려 돌 위에 여기저기 뿌려줬다. 아내가 다시 몸을 숙여서 풀을 뽑을라치면 참새들과 직박구리들이 우르르 내려와서 잔치를 벌였다. 참새들은 정원 덤불 사이에 둥지를 틀어서 해산을 하고 모래흙에서 목욕을 한다.


아내는 조건 없는 자비를 실천하는 노힐부득을 닮았나 보다. 달달박박처럼 자비의 실천보다는 원칙이나 계율을 앞세우는 속 좁은 나는 이번 생에 뭔가를 깨치기는 글렀다. 하지만 아내 덕분이라도 장미향이 가득한 황금빛 물속에서 목욕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환하게 밝고 평온한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람이 부르는 세월의 노래가 오늘도 백월산 사자암에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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