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교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연이랑 Jul 15. 2021

15년 전
연구수업

교사의 열정

  

연구수업. 

이 귀한 연휴를 연구수업 걱정을 하면서 지내야 하다니. 

일이 이렇게 된 거 좀 크게 벌리자. 연구수업이잖아. 

한번 해보자. 꼭 해보고 싶었어.      


여름 컴퓨터 연수에서 쌓기 나무 단원을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 얹혀 재미있게 pt로 제작해보았다. 그래서인지 쌓기 나무 단원을 좀 더 새롭게 해석해보고 싶었다. 교사용 지도서에 나오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호기심을 유발하는 차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쌓기 나무 단원은 수업이 어수선해져서 보통 공개수업 단원으로 잘 선택하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잘하는 것보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모습이 보이는 수업이 연구수업의 취지에 맞는 것 같았고, 동료 교사들도 이해하고 좋게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다.   


연구수업 준비를 위해 황금 같은 10월 초 연휴기간 내내 정육면체 종이상자를 만들고 상자를 이어 붙여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퍼즐 상자를 만들었다. 그때는 36명이 한 반이었으니 정육면체 상자 5개를 이어 붙인 퍼즐을 36개 만들었다. 온 집안을 풀과 종이로 뒤덮고 간신히 상자를 만들고 교안을 작성하였다. 

일명 0차시 수업.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부끄럽지만, 나는 본 차시 수업에 들어가기 전 호기심을 주기 위한 준비 수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 있게 교안을 작성했다. 

 나무의 질감이 아닌 종이의 느낌으로 그리고, 단순히 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붙어서 움직이는 퍼즐 형태의 경험을 먼저 해본다면 본 차시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직접 참여하고 놀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으니까. 이상태로 쌓기 나무 단원을 하게 되면 수업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대단할 것 같았다. 

하지만, 뒤에서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기가 막혀하는 표정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참관하신 선생님들께 교안을 보여드리면서 학습목표와 활동에 대한 보조설명을 해드렸다. 이수업은 다른 수업과 다르게 0차시 수업이었다고, 본 차시 수업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기 위해 나무가 아닌 다른 도구로 쌓기 활동을 해보는 시간이었다고 설명드렸다. 몇 번이나. 

하지만, 선생님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배려 없이 수업에 대한 평을 늘어놓았다. 학습목표가 교과과정에 없다는 것과 학습활동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것, 학습자들의 태도와 아수라장인 교실도 지적하셨다. 또한, 교안을 베테랑 선생님과 상의를 하지 않고 연구수업을 하였다는 것도 지적사항에 첨부해주셨다. 


졸지에 배우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겸손하지 않은 독단적인 선생이 돼버렸다. 처절했다. 그래도 '창의적이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평이라도 들어보고 싶었지만, 모두의 비웃음을 받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날의 무모한 행동임을 인정한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서 튀려고 했을까? 중간에 다시 나간 학교이기에 경력이 다소 딸려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색과 열정을 그렇게  남들 앞에서 자랑하듯이 공개했다는 것이 지금도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 이후 나는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내가 교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도전이 비웃음이 되는 상황,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교사로 남을지를 생각하면 다소 막막했다. 한편으로는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학교가 원하고 모두가 원하는 교사로 우리 가족 행복하게 지내는 직업으로 교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왜 복잡하게 학교는 어떻게 되어야 하며 교사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지려 하는지에 대해 잠시 화가 나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속에서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을 못 찾는다면 내가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었다. 천천히 답을 찾고 싶었다. 아니 답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나고 싶었다.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해 나는 교사를 그만두었다. 큰아이가 6학년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나도 학교를 떠났고, 1학년이었던 둘째 아이는 집 근처 공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나는 다시 시작한  교사생활을 3년 만에  끝내고 또 다른 학교에서 이번에는 학부모가 되어 학교와의 연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때의 그 장면들이 나를 더 성장시켰을 거야 하면서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다가도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하며 되집어보고 후회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15년이 지난 지금 열정이 살아있는 교실을 꿈꾸는 교사들이 더이상 상처 입고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학교가 교사의 열정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멋진 곳이 되었기를 바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이 아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