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아이와 학교 없이 학원 없이 홈스쿨을 하면서 지내는 우아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하다가 현실의 벽을 만났다.
내가 있는 이곳. 현재 나의 직장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을 만난 것이다.
브런치 글쓰기도 멈추고 책 읽기도 멈추고 남편과 우리 집 식물원에 꾸려놓은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일에 나의 정성을 쏟아부었다.
아침마다 명상하듯 수란을 만들고, 감자와 양송이를 넣은 수프를 정성껏 끓였다.
나의 뇌는 더 창의적으로 움직이며 브런치의 모양과 맛이 우리 집 식물들과 잘 어울리도록 기획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식물원의 식물들이 쑥쑥 자라도록 돌보아주었고, 수직벽 식물들이 다양하게 서로 어우러지도록 위치를 바꾸어 주거나 화사한 꽃들이 벽을 수놓게 알록달록한 꽃들을 벽면 화분에 심기도 했다.
탁자 위에는 꽃화분을 놓아 모든 손님들이 식물의 예쁨을 즐기도록 신경 썼다.
남편은 옥상의 물고기들이 겨울 월동에 들어가도 탈이 없게 연못 투명 바닥을 열심히 청소했고,
손님들이 외부에 길게 뻗은 겨울 대나무를 만나면서 불멍 하도록 야외 공간에 장작도 쌓아놓았다.
가게 옆에 있는 집에 가서 세 마리 강아지들이 손님에게 시끄럽게 짖지 않도록 잔소리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지내는 강아지들의 공간을 청소하거나 쿠션 정리를 하기도 하였다.
외부에 있는 고양이 화원에는 길고양이 레옹이가 손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고양이에 대한 안내문도 붙여놓았다.
계속해서 바뀌는 방역 안내문이 있는 출입문을 지나면 백신 접종 확인을 위한 전자 명부와 안심콜 안내를 하기 위한 책상이 나오는데 그곳은 우울한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염원을 담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나름 꾸며놓았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오면 대부분 첫마디가 ‘와우’이다.
그 '와우'라는 소리에 힘이 난다. 누군가 나의 정성을 알아봐 주었다는 기쁨이 든다.
그 맛에 우리 집 식물원을 더 가꾸고 소개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드디어
탈이 났다.
귀가 먹먹하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병이 찾아온 것이다.
과로와 육체적 피로가 쌓여서 온 거라니 내가 어지간히 애쓴 듯했다.
메니에르라고 불리는 이 아이가 세 번째 나에게 오지만 이렇게 주변이 빙글 거린 적은 처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침 느낌이 이상해 병원을 갔다 온 날 하늘이 빙글 도는 경험을 하였고, 가져온 약을 먹고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 마지막 날. 가게를 쉬고 나는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
책장 깊은 곳에서 찾아낸 월든 책도 다시 펴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1800년대에 쓴 글 속의 인간 세상이 200년이 지난 요즘 세상과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다시 한번 책날개에 그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면서 존경을 담아 그의 일생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그가 나를 보면서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노예 감독으로 사는 인간아’하며 특유의 글 문장으로 비난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자 나는 내가 잘못 가고 있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얼른 책을 덮었다.
진실을 피하는 사람처럼.
'너무 애쓰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의 명령을 거부하기도 받아들이기도 두려웠다.
애꿎게도 책 속 글 주인의 대인배 같은 글들에 반항하며 야속해하며 투정을 부린다.
생각할 건 많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생각을 멈추고 나의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게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