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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연습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심은하)이 정원(한석규)에게 하는 말이다.


나도 아저씨다. 아무리 나이가 상대적이라 해도 나이 오십을 넘기니 영락없는 아저씨다. 그래서 계속 웃는다.


하양 사제관에는 매일 아침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몇 명의 신부님들은 사제관 앞을 걷는다. 그리고는 사제관 1층 빈방에 마련한 휴게실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한다. 


휴게실에는 TV가 있는데 얼마전 선배 신부님이 '혹시 전유진이라고 들어봤니?'하고는 '현역가왕'에 나온 전유진을 소개했다. 


이후 우리는 전유진앓이를 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유진이 노래하는 유투브를 보고 얼마전에는 일본 현역가왕과의 대결도 꼼꼼이 살펴보고 있다.


"너 전유진 동생이 전유빈인건 아니?"


선배 신부님이 이렇게 말했을 때 우리는 잠시 말을 잊었다. 덕후(광팬)는 이렇게 탄생하는구나, 전유진 얼굴만 봐도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우리는 이미 삼촌팬을 자처하고 있으니 덕분에 40대 초반 신부님들은 다른 동영상을 볼 수가 없어 눈치를 본다.


좀 더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자면, 심은하가 한석규에게 "아저씨. 사자자리죠? 생일이 8월 아니에요?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고 하던데..."하고 말할 때 내 마음이 철렁했다. 나도 사자자린데...




얼마전 가수 김창완씨가 JTBC에서 한 인터뷰를 보았다. 23년을 진행한 아침 라디오 방송을 마감하면서 부른 마지막 노래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이어서 진행자는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는데 앞으로 무얼 하시고 싶으세요?'하고 물으니 김창완이 말했다.


"사라지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사라지는 연습, 누구나 해야 할 연습이지만 정말 어려운, 혹은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드러내는 것이 모든 것인 세상에서 사라지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라질 준비가 될 수는 있을까?


돌아보면 삼년전 이맘때 나는 대학생들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아는게 하나도 없었고 무얼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이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왔고, 이제는 감히 나의 아들 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주인공 한석규처럼 나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실패를 겪고 무슨 열매를 맺을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연습을 하는 마음으로 한석규처럼 담담하게 말하고 싶다.


"내 기억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채 떠날수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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