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눈 내리는 날
중학생 시절 성탄예술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겨울방학을 하고 서둘러 성당에 가면 친구들이 이미 모여있다. 이번 성탄예술제에는 무엇을 준비해서 보일 것인가 회의를 하고 늘 그렇듯 연극 준비를 시작한다. 대본을 쓰고 분장과 무대 셋팅, 조명과 음악을 확인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연습한다.
남중(남자 중학교)에서 못본 여자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멀리서 성당 누나도 볼 수 있어 좋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마치 마법이 이루어질 것 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그녀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볼 용기를 낼 수 있을텐데.
마니또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되고 싶었던 친구는 아니지만 내년에는 그녀와 마니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를 위해 선물을 마련할 마니또에 대한 기대를 붙들고 있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 성당 마당을 가로지르는 성탄 조명과 빛나는 다윗의 별, 학력고사로 넘쳐났던 엿의 단 맛을 기억한다. 하늘은 자주 흐렸지만 마음은 늘 밝았고, 성당가는 길은 멀었지만 고되지 않았다. 성탄은 화려하고 멋진 기쁨 그 자체였다.
싸아한 추위에 성탄예술제가 막이 오르고 모두들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당황스럽지만 그 때문에 즐겁기도 하다.
늦은 밤 크리스마스 이브 미사에서 마주한 아기 예수님은 어찌 그리 고운지 손을 내밀어 만지고 싶다. 성탄 성가의 선율과 성당의 빛과 아직 다 모를 거룩함이 어우러져 성탄 밤이 익어간다.
오늘밤은 어디에서 올 나이트를 할까, 그만 이런 생각에 정신이 든다.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았지만 다시 들어도 좋은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흥얼거리며 친구들과 성당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