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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Jan 05. 2024

(4) INFP, 상냥한 어린이실사서

  성악설(性惡說)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 도덕시간이었나 보다. 당시의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이 더 따분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재미없는 동양철학... 가뜩이나 점심을 먹고 난 이후라 정신이 아득해져가고 있었던 그때,

도덕 선생님께서 순자의 성악설 이야기를 꺼내셨다.

순자는 순할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며 성악설을 주장했고요,
   맹자는 맹할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하며 성선설을 주장했어요.

  헷갈리지 말고 제대로 외우라는 선생님의 짠한 배려...

  선생님의 농담에 잠시 웃다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 이거였다. 내가 어린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가...


  중국의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점점 악해진다고 했던가...

  그날 나는 어린이들이 왜 개미를 죽이면서 즐거워하는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안 사준다며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왜 드러눕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행동의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교화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본성 그대로를 노출하고 있는 거였다. 결론적으로, 어린이들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날 이후, 나는 인간세계에서의 많은 일들을 "성악설"을 토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마치 마법 치트키와 같은 성악설이 인간세계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전혀 무리 없이 작동된다고 생각해 왔다.


  순자의 성악설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난다. 따라서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속성은 더욱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논리를 따르자면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이기적인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어린이실"이다. 어린이실(어린이자료실)에서는 어떤 일들을 할까? 성인보다 이기적인 존재들인 영·유아, 어린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니 뭔가 되게 마음이 힘든 업무들이 포진해 있을 것만 같다. 어린이실에서 수행되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업들을 나열해 보자.


........... 북스타트 프로그램, 우리 아이 첫 독서학교, 독서 디베이트, 독서교실, 도서관 DAY,.................


  위에서 언급한 사업명들은 모두 "독서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함께 책을 읽는 행위, 그리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활동(ex. 독후감 쓰기, 토론하기, 질문에 대답하기 등)까지 모두 포괄하는 사업이다. 즉, 영·유아, 어린이들에게 독서습관을 심어주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공공도서관 어린이실 사서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독서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도서대출·반납, 참고봉사, 연체자관리, 독서정보제공 등 일반적인 자료실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당연하지만) 어린이실에서도 수행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일의 가짓수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린이실 사서들이 해야 할 일들은 매우 많다. 그래서 힘들기도, 보람차기도, 싫기도, 좋기도 하다.

  희망찬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어린이실에서 일해본 사서로서 어린이실 업무의 장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첫째, 성취감을 즉각적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의 주 고객은 유아, 어린이, 학부모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던가. 학부모들은 대체적으로 밝고 상냥하다. 어린이들이 맑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화가 날법한 순간에도 어지간해서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부모, 어린이들의 작은 질문에 대한 사서의 흔한 대답에도 매우 고마워하시니, 매일매일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둘째, 귀여운 어린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어린이들은 귀엽다. 몇 마디 말을 하기 위해 온 힘을 짜내는 모습도,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도 귀엽다. 사탕, 초콜릿 같은 작은 선물에도 좋아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내가 너무 타락한 것은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고, 때로는 심플한 어린이들의 행동을 닮아가기도 한다.


  셋째, 비교적 민원이 적다.

  어린이실에서 제기되는 민원의 수는 다른 자료실에 비해 적은 편이다. 성인 자료실에서 주로 제기되는 민원이 소음, 도서부재와 관련된 것인데, 어린이실에서는 어지간해선 문제가 되지 않는 성격의 것들이다. 어린이들이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것은 당연하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것에 민원을 제기한다니... 매우 드문 일이다.


  이제 어린이실의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다.

  (잠시 잊혔던 성악설이 등장할 시간이다.)

  어린이실에서 일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첫째, 어린이가 싫어질 수 있다.

  유아, 어린이들은 대체적으로 순수하고 착하지만 늘 그렇진 않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화책 코너에서 드러누워 있는 어린이, 본인이 본 만화책 수십 권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대로 몸만 빠져나가는 어린이, 서가의 책들을 헝클어놓고 모른 척 도망가는 어린이,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줘도 계속 웃으며 뛰어다니는 어린이...

  이런 어린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성악설은 진리라고 믿게 된다. 하루하루 성악설의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느낌... 3년간 어린이실 사서로 근무하면서 많은 증거들을 모았더랬다.


  둘째, 하루종일 정신없다.

  소음 때문에 집중력을 도둑맞게 된다. 누군가는 화이트 노이즈가 집중력을 향상한다고 하던데, 어린이실의 소음은 화이트 노이즈 수준이 아니다. 아이들 웃음소리, 뛰는 소리, 수시로 들어오는 질문, 책 읽어주는 소리 등등, 다양한 소리 공격으로 인해 1시간 집중하면 끝낼 수 있는 일을 하루 종일 매달려하게 된다.


  셋째, 내 직업이 유치원 선생님이 아닌가 착각하게 될 수 있다.

  어린이 대상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내 직업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유치원 선생님 목소리... 1) 어린이 프로그램 맞춤형 목소리로 톤업하고, 2) 억지 미소를 장착하고 있노라면... 난 정보를 가공, 제공하는 사서인데.... 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자괴감에 시달릴 수 있다. 즉 내 직업이 사서인가 유치원 선생님인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럼 끊임없이 나타나는 성악설의 증거와 정신없는 공간, 직업적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첫째, 분노가 없는 상냥한 사람

  이유가 필요 없다.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이면 좋겠다. 어린이들에게 돌직구 발언을 날리고 화를 내는 사람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둘째, 이해심과 인내심이 많은 사람

  어린이들의 돌발적인 행동과 정제되지 않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면 좋겠다. 또한 인내심이 많아 잦은 소음도 무던하게 넘길 수 있고, 맥락 없이 어질러져 있는 서가를 보고도 분노의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반대의 성향이라면 근무하는 내내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이 높다.


  셋째,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

  사람들을 잘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린이들은 일정 부분 어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다. 어린이들의 독서활동을 도와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린이실 사서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INFP: 상냥한 성격의 낭만적 이타주의자



  어린이들을 주로 상대하는 어린이자료실 사서는 INFP 유형의 사람에게 적합할 것 같다. 이 성향의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깊은 연결을 선호한다고 하던데, 어린이실에서 근무한다면 내방하시는 학부모들과 두터운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의 예술적, 감성적인 성향에 기대어 어린이를 모함하는(?) 성악설 따위는 개의치 않고 그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자료실 업무의 부문별 지수>

사서지수 ★★★☆☆

민원접점지수 ★★★☆☆

야근유발지수 ★☆☆☆☆

직무스트레스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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