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한자를 많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각자의 이름, 집 주소를 한자로 쓸 수 있으신지... 부끄럽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한자를 잘 모른다.
"나는 한글세대"라고 우기기에는, 동갑내기들 중 한자에 대해 꽤 많이 아는 친구들이 존재하니... 그냥 이건 관심과 기억력의 차이라고 해 두는 것이 좋겠다.(그런데 갑자기 뭔 한자 이야기???)
오늘은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 "서무"라는 업무, 사람에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서무라는 업무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자의 의미를 파헤쳐야 한다.
서무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서무(庶務) : 특별한 명목이 없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사무.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사람.
"서(庶)"자를 먼저 살펴보자. 이 글자는 "여러, 거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務)"자는 일, 업무를 나타내는 글자이니, "서무"란 말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여러 일"이라는 뜻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뜻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글자 "서(庶)",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서자(庶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첩 소생의 아들. 서자의 "서(庶)"자와 같은 글자!!! 역시... 뭔가 미천한 느낌이 들게 하는 기분 나쁜 글자인 게 분명하다.
내친김에 글자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广(집 엄) 자, 口(입 구) 자와 火(불 화) 자가 나열되어 있는데, 집에서 불 위에 그릇을 놓고 무언가 삶아 먹는 모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삶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글자라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무언가를 삶아 먹는 것을 굉장히 소박하다고 느꼈었던지 훗날 뜻이 확대되면서 소박하다, 천하다, 비천하다, 여러 라는 뜻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 읽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분명히 "비천하다"는 뜻이 없는데, 왜 "서무"라는 업무를 떠올리면 "노비"가 떠오르는 걸까... 내가 20년간 일한 도서관에서 서무란 어떤 존재였기에...
공공도서관에도 부서별로 한 명, 혹은 두 명의 서무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의 역할은 사전적 정의와 사뭇 다르다. 우선 다른 어떤 업무분장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인 것은 사전적 정의와 같다. 그래서 도서관 행정 업무를 주로 서무가 처리하곤 한다. 예를 들어, 통계 관리, 주간/월간 업무보고, 보고자료 수합 및 정리 등, 주로 수합과 취합의 업무를 전부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합, 취합을 해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사람들이 문서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지 말이다. 분명히 동일한 양식을 배포했는데, 왜 돌아올 때에는 제각각 다른 양식으로 돌아오는가... 서식을 어그러뜨리는 것도 문제인데, 한술 더 떠 자기만의 새로운 서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수합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알아서 고쳐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최소한의 맞춤법, 문법마저도 무시하고 전달된 자료를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치솟고 인류애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공도서관 서무는 수합, 취합의 노가다를 주 업무로 하는, 신입이 맡아도 무리가 없는 업무로 보인다. 실제로 서무의 필수 업무는 수합, 취합에 사무실 물품구입, 약간의 복무사항 관리 등이 추가되니 가짓수는 많아도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 구성이다.
그러나!
공공도서관 서무 업무에는 선택 구성이 존재한다. 즉, 공공도서관에 존재하는 '특별한 명목이 없는 업무'는 이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여기에 그 누구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업무도 서무의 몫으로 돌아갈 경우가 많다는 것도 함정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