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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May 17. 2022

[20220506-07] 14. 추자도 트레킹

한장요약: 섬, 산, 사람, 사랑.


새벽 4시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광주를 출발, 새벽안개 가득한 월출산을 지나 완도로 향한다.

잊지 않고 멀미약을 챙겨마시고 7시에 완도에서 출발하는 추자도 경유 제주행 배를 탄다.

일찍부터 서두르기도 했고 행여 멀미라도 할까 봐 객실에 자리를 잡자마자 잠을 청한다.

뒹굴뒹굴 두 시간 반쯤 가다 보니 우리 배가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하추자항으로 입항한다.

묵기로 한 숙소 사장님께서 트럭을 몰고 와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주시고 일단 숙소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섬을 돌아보기로 한다.


첫날은 나바론 하늘길을 끼고 상추자도를 한 바퀴 크게 도는 것이 목표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묵리 고갯길에서 출발해 한전을 지나 들머리로 진입한다.

올레 18-1길과 겹치는 구간이라 올레 리본을 따라가면 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왼쪽에 너른 바다를 펼쳐두고 오르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천천히 오를 수 있다.

살방살방 오르던 중 작은 실뱀 한 마리에 으앗, 하며 깜짝 놀라긴 했지만 나보다 저가 더 놀라 후루룩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 전에는 빡센 유럽여행 패키지도 잘 따라다니시던 엄마가 코로나 기간 동안 운동량이 급감한 탓인지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데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셔서 아주 자주 쉬어가다 보니 그리 힘들이지 않고 첫 봉우리인 바랑케 쉼터에 올랐다.

햇살이 조금 따갑긴 했지만 절벽을 타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바로바로 땀을 식혀주어 그리 덥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첫 번째 봉우리보다 더 높은 두 번째 봉우리는 꼭대기에 등대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숨이 차 그냥 내려가버리겠다는 엄마를 여긴 외길이라 무조건 가야 한다고 간신히 설득해서 셋이 사이좋게 사방이 탁 트인 등대에 오르니 가슴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사실 트랭글에서 대충 경로만 검색해본 탓에 그냥 둘레길 같은 줄 알았는데 등대에서 세 번째 봉우리가 보이자 엄마는 이젠 아예 철퍼덕 주저앉아버리셨다.
추자도에 왔으면 나바론 절벽을 봐야 하는데 벌써 절반 넘게 와서는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아깝지 않냐며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출발.
그래도 두 봉우리를 지나면서 엄마도 숨이 좀 트이셨는지 한결 수월하게 오르기 시작하셨고 드디어 펼쳐지기 시작한 그림같은 나바론 절벽의 풍경을 구경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쉽게 올랐다.

세 번째 봉우리의 정자에서는 바닷바람이 어찌나 센지 바람막이를 꺼내입어야 했다.
잠시 땀을 식히고 이제 나바론 절벽을 제대로 감상하며 걷는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다 돌아서 풍경 감상하고 또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하산길은 한결같은 내리막이라 아마 이쪽을 들머리 삼았으면 주구장창 오르막 계단에 엄마가 지레 포기하고 내려가셨을 것 같아 코스 선택을 잘했구나 싶었다.

용둠벙에서 내려서니 캠핑족들을 위한 데크가 마련되어있었고 몇몇 캠퍼들이 지글지글 불판을 준비 중이었다.
나바론 절벽을 제대로 감상해보려 징검다리를 건너 맞은편 용둠벙 전망대에 올라가려는데 보이는 "출입금지" 팻말 ㅠ
용둠벙 정자를 수리 중인 건지 아니면 오르는 계단을 공사 중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출입금지.
정자 아래켠 낮은 언덕배기에서나마 나바론 절벽을 내다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다음에 또 와야 하는 이유 적립).

생각보다 긴 여정에 들고 온 물통이 바닥났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근처에 마트나 자판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작은 갤러리가 있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 정수기에서 빈 물통에 냉수를 가득 채우며 다시  숨을 고르고 봉골레산을 따라 섬을 빙 돌아 걷는다.
지도에 노을길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일몰보기 좋은 포인트인 것 같은데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어 일몰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대신 열길 물속도 환히 내보이는 맑은 제주 바다를 눈에 껏 담으며 유유자적 걷는다.
다시 올레길과 합류되고 추자도 포토 스팟으로 유명한 알록달록 추자초등학교를 지나 드디어 날머리인 추자항에 도착.

오늘의 저녁 메뉴는 조기매운탕!
신선한 조기 덕에 국물까지 시원하게 우러나 아주 진국이다.

숙소로 돌아와 개운하게 씻고 다정한 가족놀이(?)도 좀 하다가 꿀잠에 든다.

이렇게 추자도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 날 아침,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8시에 일어나 펜션에서 주는 아침을 먹는다.

오늘은 하추자도에 있는 돈대산에 오르기로 한다.

해발 164m의 야트막한 뒷산 느낌이지만 하추자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 날이 맑으면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아마 몽골인 시력이어야겠지).

다행인 것은 추자교를 건너 시작되는 묵리고갯길 들머리에서 시작하면 164m 정상까지 매우 완만하게 오를 수 있어 엄마 수준에 딱 맞는 코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이 산은 나한테 안성맞춤인 산이라며 힘들어하지 않으셔서 큰 부담없이 (물론 중간중간 계단을 지나면 왕왕 쉬기는 했지만) 정상까지 무난하게 오를 수 있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쨍쨍인 햇볕에 그늘막인 등산로가 감사할 지경이다.
하추자도는 어제 돌아본 상추자도와는 또다른 풍경을 속살처럼 살포시 내어 보여준다.
어제 걷던 상추자도를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 담수장을 둘러싼 노오란 민들레밭의 평온함, 완도행 배가 들어오는 신양항에 여러 낚시배들이 들고나는 일상의 분주함까지, 다양한 색깔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산행이었다.

정상에서 참외 하나 깎아먹고 돈대산 입구 쪽으로 (남들과는 반대방향으로 오른 듯) 하산한다.
에코 어쩌고를 지나서는 차도를 따라 하추자도까지 걷게 되는데 역시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하나 보다.
산에서는 오르막에서도 그저 근육이 좀 힘들었을 뿐인데 아스팔트를 계속 걷다 보니 평지인데도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프고 뜨거웠다.
좁은 갓길의 풀숲으로 비껴 걸으며, 서울 한복판에서 매일 내딛는 그 걸음걸음이 그다지 건강하지는 못한 걸음들이었겠구나 싶어졌다.

어제오늘 양일간의 강행군에 엄마는 자꾸 쳐지는데 나는 점심 손님들이 몰리기 전에 어서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식사한 식당보다도 더 멀리에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으니 엄마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리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냥 대충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가면 되지 뭐 부득불 여기까지 왔냐며 짜증을 내시길래 얼른 시원한 물을 내어드린다.

오늘의 메뉴는 굴비정식 (조기에 진심인 추자도 ㅋㅋ).

밑반찬이 깔리고 배가 고픈 엄마가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표정이 풀린다.

어제 식당보다 반찬이 입에 맞다, 먹어본 식당들 김치 중에 제일 낫다며 점점 웃음이 늘어난다.

알맞게 간이 되고 적당히 말라 살이 탄탄한 굴비구이가 등장하자 말수는 점점 줄어들고 젓가락은 더욱 바쁘게 움직인다.

기왕 멀리까지 와서 먹는 거 맛있는 데서 먹어야지, 라며 짜증이 칭찬으로 바뀌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보람찬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씻고 완도행 배를 기다리며 가족놀이 2차전 (슬픈 엔딩).
어차피 배가 들고나는 시간에 손님들도 들고나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 따위 없이 맘 편히 묵을 수 있었던 점도 참 좋았다.

이틀 동안 상하추자도를 촘촘히 걷고 샅샅이 훑고 나니 신양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추자도 풍경이 어제와는 달리 보인다.
자세히 보아 예쁘고, 찬찬히 오래 보아 사랑스러워진 추자도.
살면서 마음이 무너지거나 가난해질 때 꼭 다시 오고 싶은, 그런 피난처 같은 곳이 되어줄 것 같다.



[요약]
1. 코스
Day1 추자교 - 바랑케 쉼터 - 추자도 등대 - 나바론 절벽 - 용둠벙 - 봉골레산 - 추자항
Day 2 추자교 - 돈대산 - 예초리 포구 - 오지박 전망대 - 추자교 - 추자항
2. 기온: 14/19
3. 착장
- 상의: 긴팔티,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 하의: 춘하바지 (블랙야크, 조거팬츠)
4. 기타 준비물: 모자, 선글라스
5. 장점: 계속 이어지는 절경과 맑은 바닷물에 힘든지도 모르고 계속 오름
6. 단점: 용둠벙 전망대 공사 중 ㅠ
7. 다음 방문 계획: 용둠벙 전망대에서 나바론 절벽 제대로 보기, 하추자도 연계산행

[별점]
1. 난이도: 2 (나바론 길은 낮은 산을 3개 타는 느낌, 돈대산은 동네 뒷산 느낌)
2. 풍경: 5.0 (절벽의 절경과 바닥이 보이는 맑은 바닷물에 계속 감탄)
3. 추천: 5.0 (서울에서 멀지만 않다면 누구든 데려오고 싶음)

[오늘의 교훈]
1. 선크림은 손등과 목에도 잊지 말고 바르자! (손목에 시계 강제 문신 ㅋㅋ)
2. 슬슬 벌레가 출몰하는 계절, 벌레퇴치제도 준비하자.
3. 새로 출항한 진도-추자도 쾌속선은 무려 45분 컷이라고 한다. 빡세게 당일치기도 가능할 듯.

4. 쑥카스테라는 꼭 1인당 한 개씩 사자! (배 기다리면서 순삭해버림)

5. 다음에는 하추자도의 산을 두어 개 연계해서 타도 될 듯 (펜션 사장님은 대왕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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