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여행 : 24.05.24
탈서울을 꿈꾸는 요즘,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게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탈서울을 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터를 잡기에 좋은 곳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휴일이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의정부에 가보기로 했다. 경기도 도시들은 당일치기가 가능하기에 경기도를 먼저 쭉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문득 부대찌개가 먹고 싶었다.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먹을 텐데>를 좋아하는데, 마침 의정부에 방문해 부대찌개 집을 소개하는 영상이 올라와있기에 즉석으로 의정부에 가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게는 '의정부=부대찌개'라는 공식이 있었다. 혹은 군사 도시라는 이미지. 의정부는 이전에 가본 적이 있다. 여행으로 간 것은 아니고 면허 필기 시험을 보기 위해 방문했었다. 서울에서는 날짜가 맞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 의정부로 갔던 기억이 있다. 2년쯤 전이었나.
당연히 그때도 의정부하면 부대찌개지~ 하며 유명한 집에 들렀었다. 그때는 부대찌개가 아니라 부대볶음을 먹었다. 부대볶음도 명물이라기에 먹었는데 나는 부대찌개가 더 맞는 듯. 나는 평소에도 부대찌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당시 드디어 부대찌개의 도시에 가서 원조를 먹어보는구나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지방이면 모를까 경기도 도시는 여행할 생각을 해본 적 자체가 없다. 개성이 없다는 느낌이다. 나도 경기도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딜 가나 비슷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나라 자체가 크지도 않고 특히 서울의 위성도시들은 지역 별로 특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의정부를 둘러보기 위해 갔을 때 역시나 든 느낌은 그냥 흔한 경기도 도시의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정부만의 특색이 하나 있다면 그건 의정부 경전철일 것이다.
이전에 왔을 때도 경전철의 존재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수도권에서 최초로 개통된 경전철이라는데, 의정부 내만 다니는 지상철이다.
나는 전철을 싫어한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한평생 살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지옥철이 너무 끔찍하다. 그래서 전철보다 버스를 선호하는데, 대부분 전철은 지하철이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없기에 훨씬 답답하기 때문이다. 전철이 공기도 탁한 것 같다.
의정부 경전철은 전철을 반으로 축소해놓은 크기다. 이런 지상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처럼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어 덜 답답하고 버스와 달리 길도 막히지 않는다. 경전철이 있는 건 정말 부럽다. 하지만 좌석이 적고 평일임에도 이용객이 꽤 많아 앉을 순 없었다.
경전철을 타고 가면서 익숙한 맥도날드가 보였다. 정류장을 보니 면허시험장이었다. 면허 따러 왔을 때 저곳에서 맥모닝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와 보는 도시의 아침이었고, 나를 따라온 전 연인과 함께였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저 맥도날드 앞에서 장난을 치며 웃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지금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별거 아닌 이 장면이, 느낌이 계속 남아있다.
먼저 <먹을 텐데>에 출연한 부대찌개 집으로 갔다. 이름은 경원식당. 의정부역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었는데 솔직히 별다를 거 없는 부대찌개였다. 아니 오히려 자극적이었다. 상당히 맛이 셌고, 햄 사리가 적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부대찌개는 웬만하면 맛없기가 힘들다.
부대찌개를 먹고 근처 카페에 갔다. 플라워 카페였다. 녹차를 마시며 간단하게 일을 했다. 다음주 출장을 위해 확인할 사항들이 있었다. 정말 이때 내가 최저임금 받으면서 왜 주말에 일을 해야 하나 하고 짜증이 치솟았다...
의정부를 돌아다니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백팩을 매고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얇은 노트북과 자잘한 물건들만 들었지만 어깨가 너무 아팠다. 2년 뒤 세계 여행을 떠난다면 배낭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그 무거운 배낭을 매고 과연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5kg도 안 되는 배낭을 매고도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깨가 아픈데? 배낭에서 캐리어로 변경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경전철을 탔다. 이왕 탄 거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종점은 확실히 의정부역 근처와 달리 한산했다.
중소도시의 재개발 전 모습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어린 시절 이런 골목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곳조차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금방 또 배가 고파와서 식당을 가기로 했다. 요즘 노포 맛집에 집착하느라 프랜차이즈 식당은 쳐다도 안 보고 있다. 사실 이곳은 프랜차이즈가 편의점 말고는 거의 없기도 했다. 적당한 식당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걸었다.
그렇게 고르게 된 버들식당. 청국장을 시켰는데 나쁘지 않았다. 밑반찬은 시판의 느낌이 났다. 전체적으로 간이 자극적인 편. 주인이 말하길 청국장은 자기 집에서 만든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나는 막입이라서 뭘 먹어도 웬만하면 맛있게 느낀다.
나와서 미륵암으로 향했다. 경전철에서 내릴 때 의정부 관광지도가 있어 눈여겨봐뒀던 곳이다. 버스를 타고 들어갔는데 확실히 의정부 중에서도 외곽이다 보니 교통이 불편했다. 경전철이 없었다면 자차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살기 불편할 듯.
미륵암 앞에 내렸는데 도로 한복판에 내려줘서 놀랐다. 이곳은 완전 시골이다. 역시 이런 풍경이 마음에 든다. 사람이 없어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미륵암 표지판을 따라갔다.
가방이 어깨를 짓눌러서인지 약간의 오르막을 걷는 것도 빡셌다.
멀리서 보이는 미륵암. 길가에서 별로 멀지 않다.
미륵암에 도착했을 때 해가 막 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 교회에 다녔지만 불교에는 익숙하다. 종교 중에 가장 호감이 가고, 개인적인 사유로 애정도 좀 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인지 사찰의 방문객은 나뿐이었다. 사찰을 둘러보고 불상에 삼배를 드린 후 바깥에 있는 평상에 드러누웠다. 미륵암에 대해 찾아보니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1468년 이전에 혜암이 창건했다고 한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 운영실 문을 두드리니 스님이 나와 위치를 알려주셨다. 나는 종교인의 길을 택한 이들의 인생이 궁금하다. 특히 스님들에 대해 관심이 큰데, 스님이 너무 시크해서 말을 붙이지는 못 했다.
한참을 평상에 누워 사색에 잠겼다. 탁 트인 전경에 눈은 맑아졌지만 머릿속은 항상 그렇듯 복잡했다. 요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이 가던 주제였다. 유튜브에서 은둔 청년들에 대한 영상을 보았고, 그 후로 은둔하는 사람들에 대한 많은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이런 영상에는 보통 위로와 용기를 주는 댓글 반, 배가 불렀다며 욕하는 댓글이 반인데, 다큐멘터리 방송은 댓글이 좀 더 온화한 편이고 개인이 만들어 올리는 영상에는 날것 그대로의 반응이 많이 달리는 편이다.
주로 달리는 부정적인 댓글은 은둔 청년들이 부모의 경제력이 기대 사는 무능력한 기생충란 것.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지긋지긋한 논리들.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살지 않았다면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지탄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머리가 아프다. 인간사 모든 게 돈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은둔 생활을 한 적도, 20대 초반 이후 부모에게 얹혀 살거나 부모 돈을 받고 살지도 않았지만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이 안쓰럽고 이해된다. 나에게도 은둔의 자질이 있는 것이겠다.
대학생 때 과제로 노숙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노숙인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돈이 없고 갈 곳이 없다면 대부분은 친구 혹은 지인에게 부탁해 그들 집에서 하루를 묵거나 찜질방에 갈 것이다. 하다못해 24시간 카페나 맥도날드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밤을 샐 것이다. 당장 돈이 없으며 아르바이트를 구해 고시원에라도 들어갈 것이다.
길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일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공원에 가서 앉아있기라도 하지 길바닥에 누울 수가 없다. 피치 못하게 그런다 해도 어떻게든 그 생활을 곧 청산하고 앞서 썼듯 고시원이나 찜질방 혹은 24시간 카페라도 간다. 노숙인들이 노숙을 하는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마음이 병들어서 그렇다. 은둔 생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돈을 대준다고 모두가 은둔 생활을 하지 않는다.
노숙인에 대한 관심은 20대 초반, 노숙인 쉼터에서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곳의 운영자도 내게 그렇게 말했다. 노숙인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나는 지나치게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솔직한 말로 친해지기 싫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슬프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미륵암을 빠져나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처음 이곳에 내렸을 때처럼 당황스러웠다. 버스 정류장 없이 도로에 그냥 표지판만 세워져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버스가 오지 않아 의심스러웠지만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시골길이어서 금세 사위가 어두워졌고 걸어갈 수도 없는 길이라 약간 초조했다.
이러고 있으니 유럽 여행을 할 때가 떠올랐다. 낯선 곳에서의 막막함과 도착지에 제대로 당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왔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내가 익숙한 곳을 떠나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버스 정류소의 상태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다행히 버스가 도착했다. 기다리면 승리한다.
버스를 타고 의정부역까지 갔는데 깜짝 놀랐다. 낮에 내가 본 의정부역은 뒷편이었나? 낮에 본 의정부역 근처는 한산하고 높은 건물도 많지 않았다. 확실히 서울보다 밀도가 낮다고 생각했는데 밤에 본 의정부역은 로데오 거리가 있는 번화가였고 청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거리에서는 버스킹이 한참이었다. 신세계 백화점도 있다. 물론 서울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고 자란 경기도 도시의 전형적인 번화가와 같았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 동상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이성계? 갑자기?
건립 취지문을 읽어보니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환궁하다가 잠시 의정부에 머물렀고, 그때 대신들이 찾아와 국정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성계의 기상을 본받아 도약을 꿈꾼다는 의미로 태조상을 건립했다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행히 전철에서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짧은 당일치기였고 의정부를 여행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경전철을 타고 한 바퀴 돌았는데, 내가 터를 잡을 곳은 아닌 것 같다. 의정부도 결국 대도시다. 외곽진 종점역에도 아파트가 빼곡했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미륵암에 있다가 버스를 타고 의정부역으로 가는데 곧 빼곡한 아파트들이 보이자 다시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요즘 거의 아파트 기피증이 생긴 느낌이다... 확실히 대도시가 나의 선택지가 되지는 않을 듯. 다음에는 어느 도시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