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게 좋아 May 26. 2024

주도권 없는 인생,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하는 이유

몇 년 전 즈음부터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고 있다. 일어나는 시각은 각기 다르겠지만 아침 5시~7시 사이에 일어나 하루를 주도적으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아침에 자기계발을 한다는 듯. 요즘은 갓생의 조건 중 하나로 정착한 느낌이다.


나는 유럽 여행이 끝난 직후인 올해 1월 말부터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첫 수업이 9시면 8시 30분에 일어나고 오후 2시면 오후 1시 30분에 일어나던 막장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 여행에서 반강제적으로 규칙적인 아침 기상을 하던 습관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침형 인간이라는 사실은 옛날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도 아침 기상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잘 일어나는 편이었고 잠이 많은 타입도 아니었다. 생활패턴으로 정착시키면 나에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살 필요성을 못 느껴서 대충 살았을 뿐이다.

24.05.12, 서울

더욱이 유럽 여행이 끝난 후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는데, 정말 나는 무슨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여행을 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기도 했고, 20대 때 건강 안 챙기고 막 산 업보가 이렇게 돌아오는 구나. 한의원에라도 가봐야 되나 싶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들이고자 미라클 모닝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매번 나를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 속의 바다로 끌어내리는 어두운 밤이 두려웠고 술을 정말 줄이고 싶었다. 우울해지는 밤이면 술 마시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피곤하게 하고 저녁에는 바로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그정도로 밤이 무서웠다.  


처음에는 아침 5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다가 요즘에는 5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완전히 정착했다. 이제는 알람을 안 들어도 5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몸이 적응한 듯하다. 저녁에는 9시~10시 사이에 잠들려고 노력한다. 부작용이 있다면 이제는 7시에 일어나는 것에도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술 마신 다음날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알람을 잘 못들어서 늦게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도 6시~7시 즈음에는 일어난다. 이것도 상당히 빨리 일어나는 편일 텐데 이제는 너무 늦은 것 같고 무엇보다 늦잠을 잤으니 과도한 숙면으로 인해 밤에 잠이 오지 않을까봐 두렵다.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은 항상 나를 괴롭혀왔다. 5분이라도 낮잠을 자면 밤에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많은 편도 아니라 8시간을 푹 자면 다음날에는 잠이 오지 않아 4~5시간밖에 자지 못 했다.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있자면 뇌가 자동으로 불행했던 과거만 골라 무료 상영을 해주었다. 런닝 타임은 잠들 때까지 무제한. 그렇게 내가 회피의 결과로 선택한 것이 술이었다. 술 마시면 잠들 수 있으니까.


쓰고 보니 흔한 알콜중독자의 패턴 같다.

24.05.12, 서울

어쨌든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는 요즘, 나는 이 패턴이 마음에 든다. 미라클 모닝은 초반이 고비인데, 두 달 차까지는 나도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점심 즈음 찾아오는 피로가 문제였다. 아침에는 괜찮지만 점심 때부터, 특히 오후 2~3시가 되면 피로가 절정에 달해 짜증이 밀려왔다.


몸이 피곤하니까 성격이 안 좋아진다는 느낌이 강했다. 화가 많아지고 누가 말만 걸어도 짜증난다. 건강이 나빠지며 체력도 떨어졌기에 더 힘들었던 듯. 지금은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많이 회복해서 적응되었다. 오히려 낮에 피곤하면 오늘 밤에 잠이 잘 오겠지 하는 긍정적인 기대감마저 든다.  


밤이 무서워서, 술을 줄여 보려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들려고 등등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하는 이유는 많지만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얼핏 들었던 말인데, 공감이 많이 되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이 워낙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언제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지만 인생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주도권을 잃은 채 살아간다. 나는 수동적인 인간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사회체계의 노예이자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인간이다.


나도 이런 내가 싫어 열심히 독립적이고 성실하면서도 자유로운... 뭐 그런 청년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지만 이 행위 자체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기 때문에 하는 짓임을 안다.


그래서 요즘 인생이 너무 답답하다.

24.05.12, 서울

미라클 모닝은 그런 내게 유일한 숨 쉴 구멍 같다. 새벽에 일어나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주로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데, 초반에는 이 시간에 소설이 아니라 경제 관련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요즘은 인생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여도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는 아침 시간이 나름 만족스럽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5시에 일어나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책을 읽은 후 출근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한다. 요즘 굉장히 청소에 집착하고 있는데, 반 년 전의 나에게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내가 아침형 인간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청소 마니아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다.


전혀 깔끔떠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거의 강박적으로 청소를 한다. 이것도 미라클 모닝의 맥락과 같다. 강제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서 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 힘들고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50층 계단을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결정하고 행하는 일이다.

24.05.12, 서울

물론, 내가 주도적으로 행한다고 생각하는 이 일련의 행위들 또한 진정한 자유의지는 아닐 테지만...


살다 보면 내 통제력을 벗어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사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이 내 통제력 범위 바깥의 일들이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주도권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각하니 그렇게 괴롭고 허무할 수가 없다.


게다가 평일에는 회사에 가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 7일 일하는 삶이라니. 주 3~4회는 퇴근 후 운동을 간다. 내가 봐도 성실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공허하다.


나의 노력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회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할수록 길을 잃은 기분이 지속된다. 물론 막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내가 이렇게 살면 변화가 올까? 미래의 나는 행복해질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답이 없는 오선지를 앞둔 학생이 된 것만 같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데 답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느낌이다.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과학적인 방법은 다하고 있는데, 왜 나는 자꾸만 공허해지고 괴로울까. 정답을 알았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쓴다고 믿는다. 인생이 행복해지는 길은 책 속이 아니라 책 밖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4.05.12, 서울

조건이 달린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님을 알고 있다. 행복과 쾌락은 혼동되기 쉽지만 너무나 명확하기도 하다. 2년간 고통을 참으며 돈을 번 후 세계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마법처럼 행복해질까? 그럴 리가 없다.


명확한 것은 내가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원하거나 꿈꾸던 삶도 아니며,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고 주 7일을 일하는 것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스스로를 속이려고 애쓰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며 최면을 걸고 있다. 정말 나도 믿을 뻔했다. 나 열심히 살고 있다고.

24.05.12, 서울

이렇듯 삶에서 고통이 지속될 때 나는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뜬금없지만 과감하게 나를 둘러싼 모든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게다가 탈서울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지금, 이제 서울 안에서만 이사다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과감하게 내가 머무는 도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주변 사람, 직장, 환경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그 효용은 이미 살면서 몇 번 느꼈다. 과감한 결정으로 인생에 큰 변화를 줬을 때 나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즐거움도 고통도 느꼈지만 확실한 것은 단 한번도 그 선택에 후회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집 계약 문제도 있고 돈 문제도 있어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생활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짧으면 몇 달, 길면 2년 이내다. 탈서울이든 여행이든 직업이든 분명 나는 인생에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장 치열했던 대학 4년, 나는 왜 열심히 공부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