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욕심은 늘 있었다. 길거리 서점이나 동네 서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책 읽는 힘은 없는데 책 사는 힘은 누구보다 강했다. 책 좀 읽겠다고 책장을 펼치면 3장도 못 읽고 잠이 쏟아지지만 언젠가는 독서가 잘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샀다.
‘이번엔 읽고 말겠어’ 서점을 기웃거려 사 온 책은 여지없이 완독을 못하고 책장에 쌓아두었다.
돌이켜보면 책을 가까이하려는 마음은 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읍내 서점에서 2주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20대 초반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약수역 근처 동네 서점에서 1년가량 일했다.
책을 향한 내 몸짓은 가슴앓이였다. 잘 읽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는 가슴앓이. 고등학교 때도 책 읽는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읽고 있는 책 내용을 들려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있다.
독서를 향한 나의 가슴앓이는 급기야 26살에 늦깍이 대학생으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고 내 꿈을 찾고 싶었다. 당시 내 꿈은 의상 디자이너였다.
강남에 있는 디자인 학원에 등록했지만 한두 달 공부하고 그만두었다. 직장에서 친분이 있는 디자인 설계하는 팀장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차라리 대학 입학을 준비하세요. 아무래도 학원 경력보다는 대학에서 전문으로 공부하는 편이 훨씬 나아요.”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려고 입시를 준비했지만 디자인 계열 학과에 모두 낙방 했다. 딱 한군데 나를 받아준 곳이 있었다. 문예 편집디자인과에 응시한학교다. 그런데원서접수하고 과사무실 들른 뒤에 알게 된 건 "올해부터 문예창작학과로 전과됩니다." 했다.
분명 나는 디자인과로 접수했는데 뭐지? 알고 보니 그해부터 문예 편집 디자인과가 문예창작학과로 바뀐다는 입학 전형을 나는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누나, 그 학과 들어가서 뭐 하려고? 졸업하고 뭐할 거야? 굶어 죽기 딱이네.”
남동생이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문계열의 공부는 취직이 늘 문제다. 남동생은 당시 안경광학과 전공으로 실용학을 공부 하고 있었다. 취업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누나의 합격 소식이 그리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고 녹록지 않았다. 시골 출신이고, 고졸 20대 초반 여자아이가 괜찮은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대학 졸업장이 있는가에 따라 월급이 달라졌다. 괜찮다 싶은 회사에 나는 응시조차도 할 수 없었다.
현실의 벽을 뼛속까지 체감한 나는 생각에 지각변동이 있었고 입시 공부를 했다. 아무튼 공부 중에서도 책과 관련된 공부라고 하니 설령 계획했던 디자인과가 아니면 어떠랴? 항상 내 주위를 맴돌았던 책이 아니던가?
아뿔싸. 막상 입학했더니 문예창작학과는 내게 고문학과였다. 매일 같이 읽고 쓰고 밢표 하는 일은 내게 고문이었다. 소설, 시, 극본, 동화, 동시, 모두 개인의 창작 작품을 과제물로 제출해야 한 학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다.
쏟아져 내린 전공과목 과제물은 내 목을 조르다 못해 숨통을 걷어차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학교에 가는 게 어느 날부터 괴로웠다. 과제물도 어렵사리 제출하면 이건 또 잘했네 못했네 내 글을 학우들과 교수님들 앞에서 내보여야 하고 발표를 해야 한다. 그 시간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과목마다 교탁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은 어찌나 많은지, 앞에 나가면 후둘 거리는 다리를 붙잡아둬야 한다. 발표를 마치면 학우들의 질문도 받아서 응해 줘야 한다. 문예창작학과 공부는 애초부터 내게 맞지 않은 옷이었다.
학우들은 보아하니 책 좀 읽었던 사람, 글 좀 써봤던 사람이었다는 걸 입학하고 알았다. 무지함이 불러온 내 선택을 아무리 원망하고 탓해봐야 좋을 게 없다. 애써 마음을 달랬다.
수업에 빠지고 학우들 몰래 도서관에 갔다. 수업까지 빠지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고 말하면 비웃을 것만 같았다. 헹여나 들킬까나 소리 소문 없이 다녔다.
“무슨 책 읽고 있어? 읽은 책 토론 좀 해볼까?”
누군가 불쑥 그런 제안을 할 것만 같았다. 독서나 글쓰기가 제법 됐던 학우들과 복학생 선배들은 모였다 하면 문학 이야기였다. 말 좀 섞어보자, 몇 마디 했다가는 주눅이 들까봐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학과 적응이 쉽게 될 리가 있나? 일단 가장 부족한 것이 독서라는 것을 알아챘다. 학우들보다 몇 곱절은 노력해야 좇아갈 수 있겠다 싶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눈만 뜨면 아침 9시 도서관 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갔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꼭 읽어보라는 추천 책부터 붙잡았다. 한국 현대문학 단편집부터 처음에는 짧은 호흡의 소설을 읽었다. 단편집의 작가가 쓴 장편소설 읽기로도 확장해 갔다. 눈에 들어왔던 은희경, 신경숙, 양귀자, 박완서, 박경리 대부분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작가들의 책 중에는 TV 드라마로도 방영된 작품이 꽤 있었다. 나도 드라마로 봤던 터라 원작을 읽으면서 흥미진진 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아, 나도 충분히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자존감도 상승했다.
한국 문학 작품에 이어 세계문학 작품 읽기로도 눈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3장도 넘기기 힘들어 포기했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완독했다. 책에 대해 그럴싸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20대 성인이 혼자서도 놀 수 있는 놀이가 되어 독서눈 재미있어졌다.
<데미안> 책 옆으로 나란히 꽂혀있는 헤세의 다른 작품도 도전해 보았다. 지난날 읽기가 그렇게 안 되었던 내가 고전을 읽다니. 순간순간 책 읽는 행복감은 더해갔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도서관에 가는 날이 더 많았다. 방학 중에는 맘껏 다녔다. 집에서 잠만 잤을 뿐 도서관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 점심도 저녁도 도서관 식당에서 해결하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치열하게 책을 읽었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졸업 후에는 아이들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책 읽기는 일이 되어버렸다. 햔재 나는 책덕분에 25년째 독서지도사로 밥벌이 하며 살고 있다.
“방 벽에 그어둔 벽 위로 햇살이 들어오면 가장 환환 곳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햇살이 천천히 내 뺨을 지나고 목덜미를 지나 책장을 넘기는 손등까지 어루만져 준다. 마음에 와닿는 책 속의 글귀는 따스하고 얼굴에 와닿는 햇살도 따스했다.”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 책 속의 글귀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책상의 위치를 바꿔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에 빠져 살았던 독서광,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온몸으로 사랑했던 사람, 조선 후기 서자 출신의 실학자 이덕무는 15년 지기 나의 오랜 책 친구다.
어쩌면 그때뿐인 독서로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책바보가 되어버렸다. 책을 못 읽겠다고 덮어버릴 일도 없다.
“책은 읽지 않는데 책만 사네요. 책 욕심만 있어요.”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도 언젠가 책만 보는 바보가 될 겁니다. 책 욕심을 부리는 건 책 읽기의 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