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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Feb 24. 2024

간다라에 세워진 그리스식 기둥

간다라 이야기 #10

그리스에서 고고학의 기초를 닦았던 존 마셜은 인도고고학연구소에 부임하면서 영국을 떠나 인도로 건너왔다. 전공이었던 그리스 고고학은 잠시 접어두고, 남아시아 고고학에 매진했다. 인도에 온 지 10여 년이 지난 시점, 놀랍게도 그리스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간다라에서 그리스 건축양식임이 분명한 사원유적을 발견했다.


(좌) 잔디알 유적 정면 모습, (우) 잔디알 유적 복원 추정도
잔디알(Jandial) 유적: 탁실라의 고대도시 시르캅에서 북쪽으로 0.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유적이다. 그리스 사원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 간다라 건축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간다라에서 발견된 그리스 사원 잔디알


잔디알 유적은 1912~3년 인도고고학연구소(ASI)의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원은 좁고 긴 형태로 폭 26m, 길이가 48m로 확인되었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원의 형태가 놀라웠다. 평면 구성이 간다라의 다른 사원들과 달리 그리스 사원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발굴을 주도했던 존 마셜은 "이 사원 평면구조는 인도에서 발견되었던 그 어떤 사원의 형태와도 다른 형태이다. 오히려 전형적인 그리스 사원의 특징들과 유사성이 현저하다."라고 평가했다.


(좌) 하늘에서 본 잔디알 사원, (우) 잔디알 사원 정면 사진
부재를 통해서 이오니아식 기둥이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좌) 기둥 하부부재, (우) 기둥 상부부재


평면구조도 그렇지만, 사원 정면에 배열된 큰 기둥의 양식에서 그리스 건축의 영향은 명확히 드러났다. 발견된 기둥은 파손된 상태로 완형은 아니었지만, 초석 부분과 주두 부분의 부재가 출토되어 형태를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주두의 파편에서는 그리스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오니아(Ionic) 양식임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좌)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출처: 위키피디아), (우) 이오니야 양식이 사용된 그리스 니케 사원(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한 유적의 발견은 간다라 건축사 규명에 중요한 발견이었다. 발굴 이전부터 이미 조각 미술에서나 유물에서 그리스나 로마 쪽 문화가 간다라에 유입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뒤였다. 하지만 이오니아식 기둥을 가진 그리스식 건축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간다라 건축사뿐 아니라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이 발견은 발굴을 주도한 존 마셜 개인에 있어서도 우연하고 특별한 발견이었다. 존 마셜은 학생 때 크노소스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 조사 방법을 수학하였고, 학위를 마친 이후 그리스 고고학연구를 계속하여 그 성과를 바탕으로 폴손상(Porson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리스 고고학 전공자였다. 그런 그가 그리스 발굴현장을 떠나 이역만리 떨어진 간다라에서 그리스식 사원을 발견하였으니, 기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존 마셜 본인에게 이는 얼마나 놀랍고도 반가울 일이었지 가늠해보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그리스 사원이 그려진 사원


소개하는 김에 그리스 건축양식이 담겨있는 또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탁실라에 위치한 고대도시 시르캅에는 쌍두취탑 사원(Double-Headed Eagle Shrine)이라 불리는 유적이 있다.


시르캅 유적의 쌍두취탑 사원


이 유적은 시르캅 유적군의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사원이지만, 기단의 측면에 부조 조각으로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이 사원의 이름이 쌍두취탑이 된 것은 이 사원 조각 중 하나의 지붕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가 새겨진 점에서 유래하였다. 참고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는 우리나라의 삼족오와 같이 고대 아시리아나 히타이트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심벌이다.


부조 조각에는 그리스에서 건너온 건축기술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기단 측면을 구획하는 기둥형 조각에 그리스의 대표적 건축양식인 코린트(Corinthian) 양식 주두가 확인된다. 코린트식 주두는 앞서 설명한 이오니아 양식과 함께 그리스 사원건축을 대표하는 건축 양식이다.


(좌) 쌍두취탑에 조각된 사원들, (우) 코린트 양식 기둥 조각
(좌) 코린트 양식의 기둥(출처: 위키피디아), (우) 코린트 양식이 사용된 그리스 제우스 사원(출처: 위키피디아)



또한 부조 벽화에 조각된 사원 중 하나에는 삼각형의 페디먼트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전형적인 그리스 신전 건축의 유형이다. 그 외에 두 종류의 건축이 보이는데, 이는 인도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의 사원 건축이다.


쌍두취탑에 조각된 다양한 형태의 사원들


잔디알 사원과 쌍두취탑의 사례를 통해 2천년 전 간다라에 전통적 양식의 건축과 이국적 양식의 건물들이 공존했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다음 편에서 소개를 하겠지만 이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던 시르캅의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 것이다.


참고자료

"The Hellenistic Settlements in the East from Armenia and Mesopotamia to Bactria and India" Getzel M. Cohen, Univ of California Press, 2013,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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