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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Feb 17. 2024

간다라의 돌 쌓기

간다라 이야기 #9

'간다라' 하면 특유의 불교 예술이 떠오른다. 서양 미술과 결합된 불교 조각 간다라의 상징과도 같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1~5세기, 쿠샨왕조 시기에 국한된 것으로 간다라를 좁게 보는 것이다. 실제 간다라 문화의 역사 이르게는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부터 늦게는 기원 후 10세기의 힌두 샤히 왕조까지, 거의 천 오백 년의 시기를 거쳐간 아홉 왕조를 아울러 볼 수도 있다. 즉, 간다라에는 다양한 왕조에 종교와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간다라의 고대 왕국들



천년의 간다라를 일통 하는 '돌 쌓기' 기술


이런 다양함 속에서 간다라 전 시기를 아우를 수 있는 것 한 가지 있다. 바로 '간다라식 쌓기'이다. 


(좌) 바다푸르 유적의 석벽에 사용된 간다라식 돌 쌓기 기술, (우) 바말라 스투파에 적용된 정교한 돌 쌓기


간다라식 돌 쌓기의 특징은 큰 돌들을 횡으로 길게 배열하고, 큰 돌 사이에 작은 돌들을 끼워 넣어 고정시키는 조적 방식이다. 에 노출되는 방향 큰 석재의 편평한 면이 위치하도록 설치하는데, 표면 쪽에만 면 다기가 이루어진다. 조적체의 안정을 위한 접착제는 따로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다라 지역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에서도, 자이나교 스투파에서도, 불교 승원에서도, 왕궁 유적에서도, 심지어 고대 주거지 유구에서도 간다라식 돌 쌓기 기술이 동일하게 사용된 점이다.


돌을 쌓아 만든 간다라의 문화유산들 (좌) 모라모라두 유적, (우) 자울리안 유적
(좌) 조로아스터교 잔디알 사원의 돌 쌓기 기술, (우) 고대도시 시르캅 성벽에 사용된 돌 쌓기 기술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하는 돌 쌓기 기술


간다라의 석공들은 수세기에 걸쳐 같은 방식의 돌 쌓기를 고수하였다. 장인들은 전통을 고수고자 하였지만 오랜 돌 쌓기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주 작고, 느린 변화였지만 수세기에 걸 누적된 변화였기에 전체를 아울러서 보면 시대에 따른 기술의 변화 러나며, 이를 시기별 양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돌 쌓기 기술은 특히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기원전 2세기 이전에는 조적 기술이 다소 조잡하였는데, 횡으로 배열한 큰 석재도 균일하지 않다. 또한 틈을 메우는 데 사용된 돌도 크기가 커 여전히 틈이 많이 남아있다. 1~2세기에 이르면 큰 석재들의 열이 나란해지고, 틈을 메우는 돌의 크기가 다소 작아진다. 2~3세기가 되면 명확한 변화가 생긴다. 틈을 메우는 석재가 벽돌과 같이 납작해진다. 3세기가 되면 틈을 메우는 석재가 매우 조밀하게 가공되어 석재간의 공극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간다라식 돌 쌓기 기술은 점차 조밀하고 튼튼한 구조로 발전했다.


(좌) 시르캅 유적의 외벽, (우) 탁실라 박물관에 전시된 조적 기술의 변화 모형, 위쪽으로 갈 수록 조적기술의 발전이 눈에 띈다.


이러한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고대도시 시르캅의 성벽은 기원전 2세기에 쌓기 시작해서 기원후 1세기까지 이어졌다. 변화의 양상이 뚜렷했던 300년 간의 기술변화가 하나의 성벽에 모두 담겨있어, 기술변화를 이해하기 좋다. 한편, 탁실라 박물관에는 돌 쌓기 기술의 변화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 두었는데 간다라의 조적 기술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 참고할 만하다.



돌 쌓기 기술을 염두에 두고 유적을 살펴보자


돌 쌓기 기술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간다라 유적들을 살펴보면 유적들이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일 유적 내에서도 먼저 만들어진 부분과 나중에 추가된 부분의 차이가 눈에 띈다. 


다르마라지카 유적, 위치에 따라 사용된 조적 기술의 차이가 확인된다. 스투파의 조적 기술, 기단과 내부의 돌 쌓기 기술에서 명확한 차이가 확인된다.


또한 수리된 부분에 대해서도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간혹 무너진 석축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 간다라의 고대 석축기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유적을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간다라 돌 쌓기의 매력에 빠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석축의 연결부 흔적을 통해서 개축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좌) 피플란 유적, (우) @ 유적
무너진 석축들 (좌) 바말라 승원 외벽, (중) 카라완 승원 승방 입구부, (우) 다르마라지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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