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Sep 14. 2021

남해의 기록

아부지 환갑 주간

올여름, 휴가 피크 기간을 살짝 피해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른 새벽, 눈곱만 띠고 향한 행선지는 남해. 말 그대로 남해군으로 향했다. 재작년 겨울에 다녀온 거제도와 통영에서 편안하고 맛있는 시간을 보냈던 터라 이번에는 그 옆의 남해군을 탐방하기 위해 약 6시간에 걸쳐 남쪽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거제와 통영은 굴을 먹으러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면, 남해는 다양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어 휴양을 위해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남해에 들어서기 직전 들린 곳이 있다. 클리쉐이긴 하지만 삼천포로 빠졌다. 응답하라 1994에서 성균이가 살던 그 삼천포는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도로가 복잡해서 길을 잘 못 타다가 삼천포라는 말이 나왔나 싶었다. 실제로 표지판이 헷갈려 길을 잘 못 들어 순천으로 갈 뻔했다. 하지만 삼천포항에 도착하니 한 번쯤 들릴만 하여 삼천포로 빠지나도 싶었다. 내리자마자 어촌마을 특유의 꼬리꼬리 한 냄새가 났다. 어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라 곳곳에 대형 냉동창고들도 보였다. 창고들 벽면에 페인트로 쓰여있는 대형 글씨들이 1980년대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게 했다. 항구에는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배경에는 산과 작은 집들로 어우러져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 마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등대 근처를 산책하며 사천 삼천포대교 너머로 보이는 남해가 더욱 궁금해져 기념사진 한 번씩 남기고 그 대교를 건너 남해군으로 넘어갔다.

삼천포항과 사천삼천포대교

남해로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하는 건 산과 구불구불한 구도로 였다. 섬과 섬 사이에 보이는 바다에는 멸치를 잡는 죽방들도 보였다. 그물이 아니라 대나무 말뚝으로 멸치를 잡는다고 한다. 남해 역시 바닷가 마을 특유의 꼬리꼬리 한 냄새가 났다. 온 마을, 아니 섬 전체가 어업에 종사하는 듯했다. 동시에 육지에서는 논농사, 무화과 농사 등을 지으며 살아가는 듯했다. 산세도 꽤나 높은 게 안개가 끼자 뉴질랜드의 원시림이 떠올랐다.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있는 자연의 느낌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들을 찾아가 보면 뒷배경에는 주라기 공원에 나올 것 같은 산들이, 앞에는 조약돌 해변이 펼쳐져 있다. 깔끔하게만 가꿔 놓으면 유럽의 어느 해변과 견주어도 좋을만한 최상급의 해변이 될 것 같은데 어업에 쓰이는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조금 안타까웠다.

항도몽돌해변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에 왔으면 '와, 완전 시골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제는 나도 시골에 살다 보니 '음,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마을의 개체수가 많았다. 굽이 굽이 해안 도로 코너를 돌거나 언덕 하나를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어촌마을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름 많이 사는 섬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집들의 형태도 특이했던 것이 보도보다 한 단 정도는 아래에 집을 지어 마을 구경을 하며 걸을 때는 거의 집의 지붕들과 마주 보며 걸었던 것 같다.

빛담촌마을

그 유명한 다랭이 마을과 독일 마을도 산책했다. 개발에만 치우친 관광지의 모습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직접 살면서 만들어진 마을 관광지라 더 인상 깊었다. 실제 사람들의 삶과 주거 양식들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바다와 바로 맞닿은 다랭이논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풍경이라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논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렁이가 기어 다니고 있다. 다랭이 논을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바다도 멋었었지만, 뒤로 돌면 보이는 다랭이 논을 품은 산세도 우리나라 옛 풍경화로 수묵 담채화가 유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저절로 설명되고 있었다. 비록 다랭이 마을 언덕의 경사는 가파랐지만 남해를 가면 꼭 가볼 만한 장소인 것은 확실하다.

여수 뷰를 품은 숙소에서 2박 3일간의 남해 여행은 이렇듯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흘러갔다. 아빠의 환갑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우리 가족들과 함께 했고, 세상 맛있게 바베큐에 와인을 곁들였다. 꼬리꼬리 한 바다내음마저 매력 넘쳤던 남해, 다른 계절의 옷을 입은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곳이다.

길냥이가 주인인 펜션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